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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Dec 02. 2022

잡초를 뽑으며

관계를 생각하다

사람들은 흔히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가 온 뒤 땅은 그렇게 빨리 굳어지지 않는다. 다시 굳어지기 위해서는 땅속에 스며든 빗물이 다 빠져나갈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비가 온 뒤 땅은 오히려 헐거워져 있다. 단단히 뭉쳐있던 흙이 스며든 빗물에 의해 불어난 만큼 틈이 생기고 부드러워진다. 그때 흙은 식물의 뿌리를 움켜쥐는 힘도 약해져 있다. 그래서 비 온 뒤가 잡초를 제거하기 가장 좋을 때이기도 하다.

비가 온 뒷날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호미가 땅 속 깊이 들어간다. 마른땅에 호미질을 할 때보다 훨씬 힘이 덜 든다. 풀뿌리까지 캐내는 일도 어렵지 않다. 그것을 알고 난 뒤부터 나는 비가 온 뒷날이면 마당의 풀을 뽑곤 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관계에 비가 내리고 있다면, 그 비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이기도 하다. 내가 키우고자 했던 화초가 무엇이었는지, 내 마음 화단에 심고 싶었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볼 때이기도 하다. 그 관계에서 내가 의도했던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이 자라고 있다면 그것을 계속 키울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잡초인지 아닌지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의도했던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마음밭을 황폐하게 하지 않는다면 두고 볼 일이다. 지금은 잡초이지만 다른 것들과 잘 어울리고 마음밭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야생화가 될 수 있으니 속단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밭을 무질서하게 만들어 그동안 자신이 가꿔왔던 다른 화초를 못살게 군다면 뽑아내야 한다.  


지난해 나는 내 마음밭에 새로운 풀 한 포기를 심었다. 그것은 기존의 내 가치관과 내 마음속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 풀이 처음 내 마음속에서 자라기 시작했을 때 나는 새로움을 느꼈고 흥미를 가졌었다. 그것은 내게 즐거움과 활력을 주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풀은 내 마음밭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켜왔던 것,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 내가 가치를 두고 살았던 어떤 것에 대해 고루하다며 비웃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위선이라고 일갈했다. 그 풀이 내 마음속에서 자라남에 따라 나는 내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화는 나를 자주 흔들어놓았다. 예전 같으면 그냥 참고 지나갈 일도 그러지 않게 됐다. 맞서고 싶었고 나를 주장하고 싶어졌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갈팡질팡, 자책감에 시달렸다.


자책이 어떻게 사람의 무릎을 꺾고 자리에 주저앉히는지, 마음밭이 얼마나 황폐해져 버리는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분명 제거해야 될 잡초인데도 뽑아내지 않고 연연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염두할 일은 관계에 비가 내릴 때, 마음이 헐거워져 있을 때, 자라고 있는 잡초를 제거하기 쉽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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