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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an 21. 2022

최고의 자유는 바로 선택할 자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나름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에 남아있는 게 별로 없는 기분이다. 삶의 고비마다 책이 주는 위로에 힘입어 버텨냈었는데도 말이다. 내게 가슴 벅찬 위로를 주고 다시 발걸음 내디딜 용기를 주었던 책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가슴 밑바닥을 어보지만 책들의 부재만 느낄 뿐이다.


책도 시절 인연이 있다는 말이 맞나 보다. 요즘 책을 읽고는 있지만 마음은 겉돌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책 속 마음에 드는 문장에 빠져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하고 유난을 떨며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았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아주 맛있는 밥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책상 위에 다 읽고 올려놓은 책 수가 늘어가도 돌아서면 허한 기분이 들었다. 20년 넘게 걸어오던 길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놓쳐버리고 허둥대고 있느라 어떤 책을 읽어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잡아줄 것은 오직 책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계적으로 책 읽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만났다. 이 책은 저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가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과 그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놓지 않고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인간 정신의 존엄성을 기록한 자전적인 체험 수기이다. 또한 그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이룩한 정신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까지 소개하고 있다.


*수용소에서의 삶, 굶주림과 추위, 잔혹한 노동,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생사의 갈림길에서 지속적으로 받는 운명의 도전* 가운데서도 끝까지 견뎌낼 수 있었던 원동력, 그것은 삶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프랭클 박사는 말한다.


마음 아파서 책 읽기를 멈추게 하는 곳이 많지만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책 앞머리에 있는 고든 W. 알포트 교수의 추천의 글 때문이었다. 그중 다음 구절이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을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삶을 지탱해 나갈 근원적인 힘을 장착한다는 것과 같다.

삶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실존을 위한 자양분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것과 같다.

삶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인생 항로의 나침반을 지니는 것과 같다.


나의 경우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줬던 것은 단 하나, 내가 가진 소명감이었다. 그 소명감이 삶의 존재 이유가 되어 주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지금껏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명과 책임이 없었다면 나는 진즉 무너져버렸을 것이다. 살아보니 결국 그 소명이 나를 지탱해 준 뿌리였으며 거센 바람을 막아준 바람벽이었다.


배우고 공헌하는 삶. 이것이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명이었다.  배움을 놓지 않을 것. 배운 만큼 공헌하는 것. 배움을 통해 변화하는 나를 느끼고 공헌을 통해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것.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고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갖는 것으로 견고한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걷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지금 내 마음은 허무와 공허로 가득 차 있다. 구석진 곳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다. 웃음 뒤에도 쓸쓸함이 밀려온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렇기에 프랭클 박사의 이야기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내게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 같은 것이다. 이제 이 가로등에 의지해 걸어보기로 했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지금 이때 내게 와준 프랭클 박사의 책이 시절 인연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프랭클 박사와 함께 내 길을 찾는 여행을 계속해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는 늘 내 선택을 믿었고 지금도 내 선택을 믿는다.


추가하는 글: * 부분을 읽을 때는 영화 "피아니스트"가 떠올랐다. 화면을 가득 채웠던 슈필만의 고통이 오버랩되면서 수용소에서의 참혹한 삶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래 영상은 폐허가 된 게토에 숨어 있던 슈필만이 독일군 장교에게 들킨 후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이다. 굶주림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을 그의 연주가 처연했었다.


https://youtu.be/WoTm4iM03X8

#영화 "피아니스트"

#쇼팽

# 2020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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