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우 Nov 03. 2022

기억하기 위해 나는 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10월 마지막 주말에 남해 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낮에 보리암에 다녀온 뒤 사천 바닷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사천항을 거닐었다. 하늘에는 통통한 눈썹달이 걸려 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밤바람이 바다내음을 가득 품고 불어왔다. 그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항구의 불빛들이 잔물결 위에서 일렁였다. 내항에 길게 늘어선 낚싯배들은 산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아무리 고단한 삶이어도 살아있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사천항의 밤은 평안과 평화를 품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몸은 피곤한데 새벽까지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밤바다는 고요하기만 한데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잔 듯 만 듯 선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했다. 일어나 창문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내다봤다. 아침 해가 솟아올라 바닷물에 붉은 기둥을 드리우고 있었다.


일요일 여행 장소는 통영으로 정하고 퇴실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학생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잤느냐는 안부 인사에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엄마가 없어서 못 잤어?" 농담을 건넸는데 "응"이라는 진심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일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이태원 애들 때문이란다.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나는 "이태원이 왜?"라고 무심하게 물었다.


딸은 그날 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이태원의 상황을 새벽까지 지켜봤다고 했다. 너무 놀랐고 사람들이 불쌍했고 슬프고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며 울먹였다.

 

그제야 급하게 텔레비전을 켰다. 핼러윈으로 사람들이 몰린 이태원 해밀턴 호텔 부근에서 압사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참담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서울 한복판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전날 밤 뒤척이며 잠 못 든 이유가 잠자리가 바뀐 탓이 아니라 젊은 생명들이 스러지며 보낸 살려달라는 아우성이었음을, 그 사람들이 보낸 구조요청 신호가 온우주에 퍼져 내게로 왔던 것이었음을 알고 나니 리모컨을 쥐고 있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절박하고 처절하게 도움을 구했을지 그 심정을 생각하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때 사천항을 거닐며 바닷물에 일렁이는 불빛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눈썹달에 감흥하고 기온이 온화해서 산책하기 딱 좋은 날이라고, 참 평화롭다고, 날마다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고 나지막이 중얼거렸었다. 나는 그때 그 시간에 그랬었다.


도저히 여행을 이어갈 수 없었다. 목적지를 바꿔 지리산의 칠불사로 향했다. 조용한 곳에서 기도라도 드려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지리산 토끼봉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칠불사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서 오롯이 나를 만나기에 좋은 곳이다. 오래 엎드려 있기에도 좋은 곳이다. 칠불사는 내가 찾아간 이유를 안다는 듯 고즈넉한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애초에 지리산을 갈까 고민하다가 단풍철 인파에 치이는 게 싫어서 남해를 둘러보기로 하고 떠난 가을 여행은 결국 지리산에서 끝이 났다. 지친 마음을 덜어내고자 떠난 여행이었는데 참담하고 서러운 마음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리산의 이름은 '대지 문수사리 보살'의 '지'와 '리'자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우둔한 사람도 지리산을 다녀오면 현자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수로왕의 일곱 왕자를 깨우쳐 성불하게 했다는)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있어 사람을 깨우치게 한다는 뜻이 들어있다고 한다. 


지리산 자락 어디든 좋아서 무수히 발걸음을 했지만 여전히 어리석은 나는 참담함과 분노와 서글픔에 매몰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지금에야 기억을 더듬어 10월 29일과 30일을 기록한다.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기억는 것은 사랑는 것'이니까. 비록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그들의 희생과 *'작별하지 않'기 위해서.  

부상을 입고 치료 중인 분들이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한강의 소설

작가의 이전글 깊은 슬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