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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땡 Aug 22. 2020

사랑을 받는다는 것

김땡이의 20년 8월 21일.

오늘은 아버지한테 특별히 감동받은 날이었어요.


저녁에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조금 늦게 집에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집에 가는 길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땡아, 오늘 몇 시쯤 와?"


저희 집은 통금시간이 엄격한 편이라 이런 전화는 매우 익숙했어요.

평소 같은 전화인가 보다,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곧 집에 도착한다고 대답했죠.


그런데 아버지가 전화한 이유가 따로 있더라고요.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집에 가려면 별도의 통로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통로가 너무 어둡고 제가 가본 적이 없는 쪽이어서 무서워할 것 같다고

아버지가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더라고요.

남자친구와 일찍 헤어지기 싫어서 미적미적 집에 가던 저는 아버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단 말에 허겁지겁 집에 갔어요.

집 근처까지 오니 아버지가 정말 아파트 입구에 서있더군요.


"아빠,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언제 오냐고 전화로 물어보지 그랬어!"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한 마음에 괜히 더 큰소리를 냈어요,


"전화하면 네가 불편할까 봐. 그리고 어차피 이때쯤 올 것 같아서.."



돌아보면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기숙사 학교를 다니는 저를 매주 꼬박꼬박 차로 픽업해주고,

혹여나 제가 아침을 거를까 봐 가족 중에 제일 일찍 일어나서 혼자 밖에서 아침거리를 사 오곤 하셨죠.

비 오는 날에는 대중교통 타는 거 불편할 것 같다고 웬만하면 어디든 직접 데려다주려고 했어요.


저는 사실 아버지의 그런 호의들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아버지의 그런 호의들이 나를 온실의 화초처럼 만들 것 같아 늘 경계하고 선을 그었죠.


"아빠, 나는 아빠가 그렇게 해주는 거 별로 좋지 않아."

"아빠, 신경 안 써도 돼. 내가 알아서 할게."


아버지의 호의 앞에서 굳은 얼굴로 이런 말을 남기는 날들이 이어졌어요.

그렇게 20여 년의 시간이 지났고, 어느덧 저는 스무 살이 훌쩍 넘은 꽉 찬 성인이 되었죠.

그런데 그동안의 수많은 거절 속에서도 아버지의 호의는 변하지 않았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 시간 동안 어렴풋이,

'우리 아버지는 상대방을 위해 뭔가를 해주는 걸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거절한 것과 같은데... 상처 받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오늘

언제 올지도 모를 딸내미를 계속 밖에서 기다리면서도 혹여나 불편할까 봐 쉽게 전화도 못하고,

혹시나 이렇게 기다린 것이 또 딸내미를 불편하게 하진 않았을까 신경 쓰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되었어요.


왜 이제야 이런 것들이 보이는 걸까요?


주는 사랑을 기꺼이 받는 것이 부모에게 기쁨이라는 것을.

그것이 하나의 효도일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아요.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마찬가지로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편한 저이지만 이제는 주는 사랑을 거절하지 않고 그냥 받는 연습을 조금씩 해보려고 해요.


"아빠, 난 괜찮아."가 아닌

"아빠, 정말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도록, 조금씩 노력해볼 거예요.

늦었지만 아버지에게 기쁨을 돌려주는 딸이 되고 싶어요.


이 글은 아버지가 읽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딸내미 팬이라고 종종 제 글을 읽곤 하시거든요.

너무 무뚝뚝한 딸이라 괜스레 더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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