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결 Nov 18. 2022

이유가 있는 이별이었음을

위대한 사랑이 찾아들기 전의 어둠을 견디는 당신에게




한여름밤의 , 동상이몽.

지난여름 이별을 마주한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꿈만 같았다. 매년 여름 독일에서 들어온 나와 당신이 함께 보낸 여름밤의 찬란한 별들보다 더 꿈만 같았다. 더 이상 내 손을 잡지 않고 눈을 마주 보지 않는 당신의 얼굴은 정말로 믿기지 않는 꿈이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학업을 끝내지 않고 당장 들어온다면’,. 나를 해치는 이러한 생각들은 하루에도 수십씩 찾아와 나를 괴롭혔고 후회로 쌓인 그림자들을 씻어내기 위해 나는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냈다. 허나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당신을 마주할 때의 기억들이었다. 내 기억 속 당신과 더 이상 웃음을 보이지 않는 얼굴로 마주한 당신은 내게 여전히 동일한 순수한 그 시절의 소년이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품어주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당신이 변했다는 사실과,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 말을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아픔을 승화하는 .

이별의 아픔은 한순간에 잦아들지 않았다. 나는 자주 서점에 가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읽었다. 이는 소중한 여름을 침대에 누워 아깝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었다. 이미 수탄 이별을 겪은 후 새로운 삶을 창조한 다양한 이들의 조언과 인연과 삶에 대한 순리 법칙을 말하는 학자들의 가르침은 가히 나를 빠른 시간으로 회복시켰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이처럼 훈련으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첫 번째 순간이었다. 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이 찾아들자 나는 그를 더 이상 붙잡지 않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내가 바라보던 그 시절의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시간과 세월 앞에,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 내가 그랬듯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주하면 무너지는 나는 약자.

이런 수많은 노력과 자기 관리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 순간 나는 무너졌다. 당신은 여전히 다정했고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게 예전과 같은 행동을 보였다. 이는 분명 당신이 주의하지 않은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도 나는 그런 모습들에 또다시 희망을 가졌다.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관계는 모호해졌고 나는 이별과 멀어져 갔다. 당신은 그저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나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들로 나를 대했던 것이다. 내가 진정한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 지난 뒤였다.



후회 없이 매달리고 나니 찾아온 .

미련하리만큼 많이 붙잡았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아본 이 경험은 내 인생에 정말 드물고도 값진 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그가 인생에 새로운 도전들을 할 때면 여전히 마음이 떨린다. 하지만 더 이상 붙잡고 싶지 않다. 나는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그가 돌아온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한 정신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보다 나를 더 사랑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세상을 믿기 때문이다. 신은 내가 평생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시련을 선사하길 원치 않으신다. 그는 나에게 최선의 것을 주기 위해 오늘도 다양한 방법으로 내게 찾아온다. 세상은, 사람들은,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와 뜨는 저 태양은 나를 응원하는 최고의 조력자이다. 지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의 세상인 것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나를 떠난 것은 그래야만 했기 때문에 떠나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얻어낸 나의 비워짐은 새로운 사랑을 향해 더 크고 깊게 자리 잡았다. 나는 위대한 사랑을 받아들일 자격을 가진 것이다.



그래, 이유가 있는 이별이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결말을 사랑하기로 했다.

이유가 있는 이별. 그렇다. 사랑하지 않는 것도 이유, 우리가 떨어져서 지내야만 했던 것들도 이유 그리고 어리고 미성숙한 우리가 지쳐버린 것도 그 이유. 모든 이유들 속에 우리는 이제 각자의 길을 간다. 7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한 세상이었다. 그 시간들은 나를 만들었고 내 인격을 새로이 창조했으며 삶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을 선물했다. 소중한 당신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 가운데 가장 놀라운 만남이었으며 앞으로도 당신은 내게 고마운 이로 존재할 것이다. 당신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지금, 나는 여전히 느리지만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더 이상 원망하지도 않는다.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닌 우리의 결말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삶은 축복이기에. 우리의 아픔은 빛나는 성장이 될 것이기에. 해가 뜨기 전의 새벽에 서 있는 우리는 그저 뜨는 해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