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도 시동을 걸고 있다
그동안의 메모가 모두 지워지고 새로운 것들을 채우는 지금 내 마음은 공허가 아닌 기대로 찬다.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고 세 번의 이별을 경험한 지금 나에게 다가올 것들도 결국 흐르는 것들임을 깨닫는다.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때로는 아프나 자주 숙명처럼 여겨진다. 위기 속에 새로운 자아를 경험했고 존재들의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작년 이맘때의 나는 어떠했을까. 그 시절의 내 감정을 기록한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나는 이제 그때의 감정들을 더 이상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아마도 나는 그가 없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데에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했겠지.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희망을 품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마음 아파하며 눈물 흘렸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시간은 흘렀고 나의 존재는 여전하다. 유한한 삶이 아닌 무한한 삶이 주는 것들을 만끽하는 지금 희망 안에 살아간다. 여행하며 걷고 사랑하는 이의 존재들에 감사할 수 있는 내가 좋다. 그가 없는 삶은 어쩌면 내가 맞이해야만 했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내면의 자아를 깨지 못하고 불면 속에 밤을 지새우던 나의 영혼을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해 준 그. 육체가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나는 그에게 감사할 것이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나를 자주 애태우고 울게 했던 그에게 주던 나의 사랑은 ‘줌’이 아닌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던 어떤 것’이었다. 그 불씨는 오랫동안 식지 않았다. 인생의 전반에 그러한 사랑을 또 경험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할 만큼 강렬하고 깊던 그것이 이제는 없다. 시간의 흐름 속에 감정의 파도 속에 이끌려 새로운 것이 되어 내게 왔다. 우정과 그 언저리 어디엔가 남아있는 끌림, 허나 이 또한 식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마음이란 변하기 마련인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부터 뜨거운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이 유난히 힘든 올해의 여름엔 나에게 어떤 것들이 찾아올까. 강렬하게 데워지고 있는 대지처럼 내 인생도 시동을 걸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길었던 고독의 끝자락은 이제 빛을 향해 나아간다. 이 느낌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