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전이었다. 마침내 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몸이 견디지 못하고 탈이 나고 말았다. 나를 위한 결정을 너무 미룬 게 잘못이었을까. 망막 속 핏줄이 터졌고 갑자기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곳이라면 피를 닦고 지혈하면 될 텐데, 망막은 그럴 수 없는 부위였다. 수술도 약도 없이 그저 시간이 흐르길, 몸이 스스로 치유 능력을 발휘해 잘 아물 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될 거라고는 상상해보지 않았다.
어디를 보든 까맣고 동그란 점이 따라다녔다. 마치 눈 속에 암막 커튼이 쳐져 있는 것처럼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길이, 하늘이, 간판이 뿌옇게, 아니 까맣게 보였다. 영원히 이런 상태로 살게 될까 무서웠다.
까만 점은 피가 고인 상태를 의미했다. 매일 아침 정상인 반대쪽 눈을 가리고 ‘오늘은 점이 조금 줄어들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테스트했다. 책을 한 장 펼쳐보고, 창밖을 한 번 쳐다보다 ‘별로 달라진 게 없구나’ 하고 실망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한쪽 눈으로 보는 세상은 정말로 불편했다. 초점이 잘 맞지 않아 두통이 생기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갈 때는 항상 긴장했다. 그래도 나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때로는 최악의 시간이 최선의 시간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은 역설적으로 내게 ‘나다운 삶’을 생각해 볼 기회를 선물해 주었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또다시 미뤄두었을 가장 가치 있는 고민 -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 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빠르게 결정하고 앞으로만 나아가던 삶에서 느리지만 뒤를 돌아보고 옆도 살펴볼 줄 아는 삶으로의 전환이었다.
나는 그 시간이 감사했다. 노안으로 글자를 읽기 어려워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도서관 한편에 왜 큰 글자 도서들이 놓여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라디오에 이렇게 다양한 음악과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한지 미처 몰랐다. 좋아하는 책을 읽는 대신, 들을 수도 있다는 걸 수많은 오디오북을 통해 배웠다. 괜히 쓰지도 않을 기능에 혹해 무거운 걸 샀다며 구박받던 내 노트북은 요즘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터치스크린 기능 덕분에 자유자재로 화면을 키우고 줄이며 아픈 눈을 대신한다. 무엇보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마를 더 알아가고 있다. 가장 큰 기쁨이다.
한동안 나를 괴롭히던 까만 점은 다행히 점점 작아지고 있지만, 시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일과 삶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살아온 과거의 내가 남긴 일종의 훈장이랄까. 어릴 때 멋모르고 장난치다 생긴 상처가 아직 흉터로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추가로 출혈이 발생한 곳이 없고 드디어 고여 있던 피가 다 빠졌다는 것이다. 이제 막혀있던 시신경이 원활히 회복하길 바라는 일만 남았다. 좋아질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저 좌절해 있을 수만은 없다. 천천히, 느리게 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맑은 세상이 눈앞에 찾아와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