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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Oct 25. 2021

흔적, 생의 무게

플라워 카페에서 꽃다발을 선물로 받았다. 원하는 꽃을 하나하나 골라 꽃다발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유리병에 꽂힌 수많은 생명들 중 몇 가지 생명만을 고르는 것이 어려워, 꽃을 포장해주시는 분께 맡기다시피 했다. 과연 이 꽃들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권리가 내게 있을까. 많은 꽃들 사이에서 보다 마음에 드는 꽃을 선택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다만 나는 이기적이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품에 안긴 꽃다발을 보며 기뻤다. 이들의 짧은 생을 더욱 줄여 내 기쁨과 뒤바꿨다.


내 방에는 식물이 많지만, 화병은 없다. 얼마나 긴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꽃들이 살 만한 집을 마련해주고 싶어 이천 원짜리 값싼 유리 화병을 샀다. 언제부터 붙어 있었는지 모를 커다랗고 네모난 스티커, 그 위에 인쇄되어 있는 가격. 거리를 걸으며 손톱으로 모서리를 긁어냈다. 조심조심 떼어내면 끈적한 흔적 없이 떼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뾰족한 끝부터 살살 떼어보는데, 자꾸만 가느다랗게 찢어져 안쪽의 엷은 종이가 드러난다. 붙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티커일수록 흔적이 덜 남는데,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걸지도 모른다.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끈적한 자국을 손가락으로 문질렀지만,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사건은 대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사건의 순간이 지나간 후에도 완벽하게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리 화병에 붙은 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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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진심이었다. 과제를 할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눈을 뜰 때에도, 다른 사람의 언어를 건네받을 때에도, 나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에도. 그 무엇도 가볍게 흘려보낼 수 없어서, 마치 모든 일이 인생에서 단 한 번만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인 것만 같아서, 세계를 등에 진 아틀라스처럼 나를 내리누르는 무게 아래에 살았다. 순환하는 세계, 순환이 이루어져 가벼워지는 세계를 동경하며. 삶의 중력으로 인해 나는 쉽게 무너진다.


모든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면 사는 게 얼마나 피곤할까. 나는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아냈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린 시절에는 하수구 뚜껑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저걸 밟는 작은 행동이 나의 일상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전혀 다른 세계로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고민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지, 저 하수구 뚜껑을 한 번이라도 밟고 지나갈지. 내가 떠난다면 언젠가 가족들이 보고 싶어 지지는 않을지. 이제는 안다. 하수구 뚜껑을 밟는다고 판타지 세계나 저 어딘가로 떠나게 되는 일은 없다는 걸. 하지만 그런 습관은 그대로 남아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겁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만약 내가 받지 못한 이 한 통의 전화가 상대방에게는 정말 중요할지도 모르는 마지막 순간의 전화라면? 만약 다른 사람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나의 생각을 읽고 그 생각에 상처 받는다면?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생각을 통제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더 이상 행동할 힘이 남지 않았다.


나는 사는 데 그다지 재능이 없다. 밥을 왜 먹어야 하는지, 건강함이란 무엇인지,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돈은 왜 벌어야 하는지, 세상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온통 이상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뒤집힌 세상, 물구나무를 선 채 걷는 사람들. 학교가 끝난 저녁 시간대에 종종 운동장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운동장에 누워 하늘을 내려다본다. 하늘을 밑에 두고 머리를 풀밭에 누인 채 허공을 걷는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로 떨어질까 잔디를 움켜쥐었다.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땅에 발을 붙이고 걷는 걸까. 찰나의 순간 미끄러져 하늘로 떨어지는 일도 없이. 그러다 누군가 나를 보았다. 내게 물었다.


너는 왜 물구나무를 선 채 걸어?


그제야 깨달았다. 이상한 건 나라는 걸. 거꾸로 걷고 있던 건 나라는 걸. 그러나 나는 물구나무를 설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걸을 수가 없었다. 가벼운 걸음걸이를 가질 수가 없었다. 발버둥 치며 연습했다. 손을 하늘에 디디고 발을 땅에 올려놓은 후 걷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내가 될 수 없다면 적어도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지니고 싶었다. 좋은 사람, 좋은 친구, 삶에 익숙한 사람. 사람. 사람. 삶. 니체는 말했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삶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사랑에 익숙해졌다. 사랑에 익숙해져서 삶을 내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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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은 꽃다발을 말렸다. 살아있을 때는 마스킹 테이프로 벽에 붙이면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던 꽃들. 잎과 줄기가 전부 바싹 말라 풀이 죽은 후에는 테이프의 무게에 저항하지 못한 채 벽에 고정된다. 생의 무게란 이토록 무겁다. 나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아래로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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