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지 Jan 25. 2024

아프지만 소소하게 살아가봐요

우울증이 조울증이 되는순간

우울증이 조울증이 되는순간

"이번 이주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상담실 문을 열고 앉으면 안부차 건내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다.


그때마다 항상 "음..네 이번주도 잘모르겠어요" 로 말을 시작하며 짧은 상담을 시작한다.

뭐 그럭저럭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으면 그 이 주는 괜찮은 주

기분 조절이 안되다 못해 우울의 늪에 잠식되다싶이 힘들었던 주는 우울한 주

대부분이 우울한 주지만, 주로 두가지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 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병원은 상담을 하고자가는게 아닌

죽지는 못하고, 이대로 살자니 고통스러우니 가는 곳이다.



작년 11월 마지막 주는

정신과에 다닌지 3년, 의사선생님께선 지켜보고 진료차트, 검사결과를 다 봤을때

우울증이 아닌 조울증2형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조울증이 진료의 차도가 더 더딜수도 있다며

조금이지만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위로를 하셨던 주다.

남들이 보기에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저런 말을 듣다니, 참 애처롭다' 라고 할수도 있겠다 싶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만약 남이 그런상황이었다면 '애처롭다' 생각했을 것 같다.

아이러니 하게도 3년전 중증도의 우울증이다. 라고 선고를 받을 때도,

3년후 조울증이다. 라는 선고를 받을때도 똑같이 반응을 했다. "아 그런가요."

무감정스럽다 해야할 지, 생각이 없다 해야할 지. 내 일이지만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반응이었다.

그냥 의사선생님이 그렇다니 그런거구나, 언제 나을지에 대한 생각도 약물이 바뀔거라는 것도,

병명이 바뀐것도 정말 무미건조하게 다가왔다. 정신질환자체가 오래앓다보면 뇌 내가 손상된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래서 그런가 예전엔 걸핏하면 울고 아프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돌 한개라도 호수에 집어던지면 물에 잔상이 생길텐데도, 이토록 고요할 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무덤덤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고나오면서 친구에게 전화가 왔길래 말했다. 

평소 나와 소통을 자주하던 친구였기에, 우울증을 같이 앓았던 친구이기에

얘기거리가 생기기라도 한 마냥 "야 나 조울증이래, 웃기지않냐?" 웃긴 상황이 아닌데도

친구에게 농담삼아 말했다. 친구는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말투로 "어?, 어 그래..? 너 괜찮아?" 라며 당황하며 대답하는순간 내가 생각했던 반응이 아닌데, '이런반응이 나올정도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친구가 반응을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하는 것 같아서 "야 나 괜찮아, 약먹는 거 하루이틀이냐. 점심밥이나 추천해줘" 라며 대화를 환기했다. 통화로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면서도, 친구가 당황스러워 하는 순간이

생각이 나  무감각하게 느끼는 내가 한순간 스스로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그후로 한 달이 지나는 시간동안 평소와도 같이 우리집 강아지와 산책을 하며, 재택근무로 일을 하며,

이런저런 취미생활을 하며 잔잔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조울증으로 병명이 바뀌며 리튬등의 약물이

추가, 교체가 되어 기분이 한결 편안해졌고 생각이 멈추지 않아 뇌가 하루종일 부정적인 걸로 뒤집혔던

하루하루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12월의 마지막주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모여 밥이라도 한끼 먹자, 라는 대화가 나와 가족들끼리 만나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요즘은 괜찮냐라고 말하기에 "뭐 그냥그래, 병명이 바뀌어서 약이 바뀌어서 그런가. 전보단 덜 다운돼" 라고 하니 내가 정신과에 다니는걸 몰랐던 오빠는 니가 왜 정신과에 다니냐 했고,

엄마는 조울증으로 바뀌어 약이 추가됐다는게 놀랬는지 "약에 의존하지말고, 생각을 바꿔봐봐,

바깥활동도 좀 늘리고, 사람도 좀 만나고, 약이 추가됐다니 더 걱정이다. 그 병원은 괜찮은거 맞니?, 

약에 식욕돋구는성분 좀 빼달라고 해" 등의 말이 우다다다 오갔다. 하나하나 대답하며 설명하기

귀찮고, 엄마나름의 걱정이기에 "그래그래, 괜찮아. 나 지금 열심히 일하고 살잖아. 얼마나 생산적이야?" 라며 해당 주제에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속으로는 이 약들이 없으면 오히려 나는 더 안좋아 질 것이고, 으레하는 의지의 문제 라는 말 하나하나 반박하고 싶었지만 3년동안 말을 해도,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입장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간극이라는게 있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대충 대답하기로 넘기고 밥먹으며 부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관광을 시키고 돌아와서 강아지와 산책하고 놀다가 간만에 생각의 충돌을 또 마주하니 뇌 내에서 '야 거봐, 너는 아직도 이해받지못해' 와 같은 생각이 오가며

꼬박 주말동안 홀로 부정적인 생각에 또 휩싸여 앓아누웠었다.


조울증이란 그런 것 같다.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감정조절 하나 안되는 스스로에 대해 혐오, 이해받지 못한다는 씁쓸함,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들, 그리고 꺽이는 나

작년 초 나는, 내년의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로 소비와 모든 일을 저질렀으며

지금은 하나하나 수습해가는 2024년을 보내고 있다.


어느하나 일 없는 사람없지만,어릴 때 당한 성폭행, 겉은 평온한 듯 했으나 속은 피폐했던 우리 집 속 책임져야한다는 책임감, 가스라이팅, 성인이 된 후의 성폭행, 대학교 시절내내 당한 한 친구로 인한 괴롭힘, 스타트업 회사를 다니며 부당해고로 이어지는동안 당한 가스라이팅과 협박, 가족구성원이 당한 보이스피싱.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고 아직도 왜그랬는지

이해하나 안되는 일들 투성이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미운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생각도 많이해보았다. 아니 확실하게는 내가 정신과에 다니는걸

인지하는 기간동안 수십번, 수백번을 되묻고 생각했던 것이다.


살고싶은 이유보다 죽고싶은 이유가 더많지만

나를 바라보고 옆에서 같이 있어주는 반려견을 생각하니, 도저히 그 선택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내가 죽더라도 내 반려견이 무병장수하여 무지개다리를 언젠가 잘 건널때까지만 살기로 일단은 정했다.


내 반려견이 보다 행복하려면

내가 과거에 매달려 있어서도 안되며, 더 좋은 집으로, 더 많이 놀수있도록, 더 맛있는걸 먹을 수 있도록 하려면 적어도 지금의 나보다는 내가 더 좋은환경으로 바뀔필요가 있어야 하니까.

과거에 매몰되어있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꿀려고 해도 안바꿔지는 상황또한 많겠지만

내 곁에는 내 소중한 반려견이 있으며,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람또한 있으니

앞으로는 내가 행복해지기위해 하고싶은 일을 찾아가는 시간으로 보내도록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