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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Jan 30. 2024

아프지만 소소하게 살아가봐요

무엇을 좋아하세요?

"무엇을 좋아하세요?" 대외적인 자리에 나가게되면 듣는 소리 중 하나이다.

흔히들 의미없이 주고받는 'mbti가 무엇이세요?, 쉬는 날엔 뭘하세요?, 어떤 취향이세요?, 

취미가 무엇인가요?' 등의 타인과의 말을 트기위한 흔한 시작말이지만, 

내게는 말이 마냥 무겁지도않지만, 대충답하기엔 가볍지도 않은 그런 말로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피곤하게도 산다. 그냥 대충 대답하고 말지"

그러면 좋겠지만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인 나는 정말 말그대로 피곤하게산다.

아직도 내 취향 하나하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말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나는 스스로가 결점이 없어야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취향을 끼워맞추던 적이 있다. 저사람이 이부분을 싫어하구나. 그러면 이부분은 감추어야지

아니면 아 저사람이 저런걸 좋아하구나 그럼 다음에 맞춰주기위해 내가 저걸알아봐야지 같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바쁜시간에 남에게 끼워맞추기를 그렇게했다.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니가 오빠를 챙겨야해", "니가 장녀야", "엄마,아빠가 언젠가 죽더라도 꼭 오빠를 챙겨야한다", "그래도 니 형제잖니, 누가 챙기겠어", "너까지 그러면 안돼"같은 말들을 그렇게도 말해대셨다. 

마냥 어릴때는 말의 의미를 깊게 생각안할때라 "그래" 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순간을 뼈깊이 후회한다. 

성인이 될수록 말들은 나를 괴롭히는 족쇄가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괴롭히고 있기때문이다.

서로의 학교가 달라 졸업식에 안오셨을때도, 이유없이 지독히 저말들을 들어가며 공부를 했을 때도, 내가

하고싶은 일이 생겼을때도 이 말이 무게추처럼 딸려와 니가 다 이해해야한다며 말들이 내 목을 졸라대었다.

부모님에게는 오빠가 아픈손가락이니 내가 챙겨라 라는 말이겠지만, 이 말은 그 어떤 거부를 해도 해결이 안되는 말이었다. 혹여 오빠에게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니가 책임지지 않았던 탓이야. 그러게 연락한번이라도 더 하질그랬어"등의 말으로 부모님은 줄곧 나에게 의미없는 책망을 하셨다. 이에 대해 상담을 받기도, 부모님께 표현을 하여도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걸로 혈연을 끊겠다고?, 너야말로 정신 좀 차려, 가족이 제일이 되어야 하는거아니니?, 너는 어쩜 너 밖에 모르니?" 이성적으로는 안다. '그래 가족을 챙기는게 맞지, 그래

아픈 손가락이라잖아, 나라도 멀쩡해야지. 얼마나 힘들면 의지할 곳이 나밖에 없을까, 나까지 그러면 안돼'

나는 들어왔던 말대로 가족을 챙기기 위해선 내가 완벽해져야된다고 생각했으며, 그 이면에는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마음에 시달려 자주 아팠고, 취미마저 어느순간 하지못하는 순간이 오자 대학교때는 종강을 하면 

동기들의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는 등 사람을 만나길 마음으로도 상황적으로도 거부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여행을 가더라도, 휴학을 하더라도, 재학을 하더라도, 입사를 하더라도 우리가족에게 나는 나자신이 아닌 오빠를 책임지기 위한 정신적으로도 일적으로도 문제가 없어야하는 동생이었다. 


결과, 어느순간 되돌아 내 모습은, 나도 모를사이에 나도 모를 면으로만 가득차있었다.

우울삽화를 딛기위해, 생각을 덜어내기 위해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인 산책도, 책읽기도,

하물며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하던 일들도 분명 하면 기분이 좋아지겠지 라도 생각했던 취향,

취미 모두 남의 취향으로만 가득 찬, 향기라고는 하나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완벽에 대한 집착은 나를 자기암시로 가득 찬 사람을 만들었다.

우울이 좀 완화되나했더니,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사람의 모습이라니,

늪지대에서 벗어나니 뻘이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미쳐즐겼던 취미생활의 덕질메이트였던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는 부럽다. 니가 하고싶은게 분명하잖아. 꿈이라는게 있는게 멋있다. 너 되게 빛나보여"

아 그래 내가 저런 시절이 있었지, 그랬던 사람이지 참. 내가 그때 즐겨보던 애니메이션이 있으려나?하고

넷플릭스를 켜서 즐겨보던 애니메이션을 틀었다. 금요일에 틀었던 넷플릭스는 꼬박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꺼졌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힘들어진 가세를 정신적으로 책임지기위해서 내려놓은 취미생활을 다시 붙잡으니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주말이 지나갔으나, 그시절로 돌아가있는 듯한 몽글몽글함은 행복 그자체였다.

아 그래 나 이런사람이었지, 티비로 애니메이션 보는 거 좋아했던 사람, 그림그리는거 정말 좋아했던 사람

한번 꽂히면 셔플만 주구장창 돌리며 곱씹어서 의미해석하는거 즐겨하던 사람, 영화 하나볼때도 애니메이션 하나 볼 때도 아이돌 뮤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제작자의 의도를 발견할 때면 쾌감을 느끼던사람, 미학적인걸 너무 좋아해서 디자인을 전공했던 사람. 무언가 만들어 내는 거 자체를 좋아했던 사람. 나 자신이 만들어내는 작품으로 주목받고싶어서 지금까지 디자인을 했던 사람. 


자신을 찾아가는 삶이란, 이전의 삶보단 수십배는 피곤했지만 달콤한 일이었다.

정해진 도로만 달리는 건 확실한 길이 있으니 룰만 지키면 되었지만, 나를 알아가는 삶은 짧아도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돌아가서 생각해보고 원인을 찾는 길이기에 힘겨웠고, 즐겁고 새로운 기분이었다.

'어쩌면 내가 성공하고자 바라왔던 모습들은 남들이 바란 내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고 확신이 되자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그리고 그동안 무시했던 부모님의 연락을 받았다.


꼬박 3개월만의 연락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왜 연락이 안됐으며 오빠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으셨다. 오빠가 친 사고에 대해 푸념을 하시며 여느때와 다를게 없이 "그래서 말인데 너가 오빠한테 말 좀 좋게해서 풀어봐.."라는 말에 곧이어 대답을 했다. "이 말이 용건이면 전화 끊을게 엄마. 나 더이상 자신이 없어 엄마. 나 사실 엄마한테 전화가 올 때마다 진이 빠져. 너무 힘들어. 내가 힘들어하면 엄마가 힘들어할까봐 내색조차 못했는데, 나 근데 정말 더이상은 힘들거같아. 꾹꾹참고 수백번 말해봐도 변함없는 대답을 나는 더이상 수용할수가없어. 

오빠는 오빠고, 나는 나야 엄마. 내 말에 생각정리가 되면 연락줘."하며 끊었다.


이렇게 일방적인 의사전달은 처음이었기에 내가 정말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진짜 내모습을 찾고싶었다. 이 모습에 안주하고 싶지도, 남의 대체재로 사는건 더이상 싫었다. 

그 타이밍에 회사에서 해고통보를 하였다. 일방적인 부당해고였으며 이로인해 사람관계로 마찰을 많이받고

힘들었다. 상황만 놓고보면 최악이 따로없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자기들 멋대로 부당해고하여

수익도 불안정하였으며, 가족에게도 의지할수없는, 상황적으로 매우 불안정하였으나, 너무나 후련했다.


그 전화로부터, 2주 후 부모님은 내게 밥 한끼하자며 만나자 하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삐뚠생각이다 싶지만, 부모님이 적어도 나만큼 아팠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너무 아팠고 외롭고 슬펐던 시간. 그렇게라도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그런 나쁜생각.

막상 만나니 타지생활 특성상, 나의 일반적인 통보로 반개월만에 만나뵌 부모님은 조금이지만 늙어가시는게 보였다. 한순간 조금 흔들릴뻔했지만 꿋꿋이 참고 밥을 한끼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시시콜콜한 얘기하며 회사때문에 바쁘다, 야근을 좀 많이한다. 라는 소리를 하고 애써 회피하려는 말 주제를 꺼냈다.

"생각해봤어?", "그래. 근데 엄마는 그렇게 니를 안대했다고 생각하는데, 니가 힘들다니 자제할게". "응. 그거면 됐다." 많은 변화가 있을 거란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담백하니 딱 예상대로의 말들이라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내 병에 대해서도, 생각에 대해서도 오히려 걱정하면 부담될 것 같았는데 이를 아신건지 딱 해당주제만 깔끔하게 얘기하고 서로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말그대로 자제한다의 정도라 아직도 오빠의 말을 대신 전해주길, 오빠를 책임져주길 바라는 말이, 마음이, 생각이 보여서 한번씩 내 자아에 대해 생각하게되면 힘들곤하지만, 깊게는 안빠지고자 하려한다.


내가 억지로 하고싶어서, 전공을 해서, 일을 해야해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바라는 길을 걷기위해 최대한

부정적인 생각, 감정에 안휘둘릴려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고있다. 

현재진행형이라 뭐하나 뚜렷한게 없지만,회사건은 이직 및 부업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설계중이라 혼돈 그자체이며, 가족관계도 아직 온전히 회복은 안되었지만. 더이상은 미련가지지 않기로 했다. 가족일은 도와줄 수 있는 선에서만, 내가 하고싶은 대로, 강제적인 것이 아닌 나의 판단으로, 나의 자아를 먼저 존중하기로. 

생각이 많기에 아픈 느낀다고 하던가. 단순하게 살기가 앞으로의 모토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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