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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스프리 Jul 14. 2024

"살다 보니 그래, 넘어질 수도 있지. "

어쩌다 찾아온 불청객, 호르몬양성 허투음성 B2기

2023년 5월 봄날이었다. 2주 전에 받았던 공단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가 우편함에 꽃 혀 있었다. 우편물은 2 통이었다. 하나는 일반 건강검진, 또 다른 하나는 암 검진 결과 통보서.


악성 종괴가 의심된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간단히 시술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직검사를 통해 충격적인 결과를 들었다. 출근해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직장에 병가를 제출했고 연차도 모두 사용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주 긴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태어나 처음 유방암을 만나는 순간. 29년 전에 뇌출혈로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당장 경북 의성으로 차를 운전하면 3시간 28분 뒤에 도착한다. 마음은 이미 엄마 산소 옆이었다. 하지만 수술 앞두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불안과 두려움이 가슴을 채우고,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무력함을 느꼈다.


입원해서 암 검사를 받기 위해 대학병원으로 갔다. 유방암센터 다학제 실에서 1:1 브리핑을 듣고, 난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김정아 환자분, 검사 결과는 뼈로 전이됐을 가능성과 림프절 전이도 의심됩니다.” 치료 과정을 듣고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나 앞이 깜깜했다.


검사 결과는 “수술 당일 간이(암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유방암 3기에서 4기입니다.” 질문을 해야 하는데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아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교수님, 뼈로 전이되면 생존율은 몇 프로인가요.?”“수술받고 항암치료만 받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담당 교수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결과로는 뼈로 전이 됐다고 하더라도 간이 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으니까요.” 수술 하루 앞두고 방사선종양의학과 처치실에서 잔뜩 겁에 질렸다. 그때를 회상해 보면 어떤 주사인지도 모르고  유방암 종양크기 검사 과정이라는 주치의 말만 들었다. 종양 의학과 주사실로 들어갔던 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방사선 조끼를 입고 온 간호사가 ‘따끔하니까 움직이면 더 아파요. 참으세요. 바로 놓겠다.’고 말했다. 신생아기가 맞는 크기의 주사를 보았다. ‘설마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 4개 정도면 금방 맞겠지?’라는 생각과 다르게 빗나갔다. 절규했다. 고통스럽다 못해 심장이 따가웠다.


유륜(감시 림프절 생검술) 주사를 맞고 방사선 종양 의학과 복도가 떠나가라고 울었다. 아프면 나만 손해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꼈던 날이었다. 유방암 수술받는 과정이 이렇게 지독한지 알았더라면 수술도 항암치료에 이어 방사선치료까지 모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1m도 안 되는 공포의 유륜주사(감시림프절 주사)를 유두에 맞기도 전에 이런 고통을 알았더라면 도망쳤을지도.

당사자가 아니면 그 고통을 알 수 없을 테니까.


“환자분 좌측 유방암으로 받은 분으로 2023년 7월 26일 좌측 유방 부분 절제술 및 감시 임파선 생검술 시행받았습니다. 환자분 추후 지속적인 치료 및 경과 관찰 필요합니다.”라고 진단서를 받았다.


처음에는 이 불청객과의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조차 모르겠다. 2년마다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았고 결핵 검사도 1년에 한 번씩 받아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전쟁 같은 4차 항암 치료의 흔적은 몸과 마음에 남았다. 피로와 통증, 두려움의 그림자는 종종 내게로 찾아왔다. 하지만 그런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2차 항암치료를 받고 기적처럼 통증이 없었다.

마침, 당진 문예 전당에서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 ”박위(위라클)와 함께하는 장애 공감 토크 콘서트를 다녀와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강연 내용은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진단을 받고 모든 일상이 멈추어 버렸을 때 느꼈던 감정과 퇴원 후 죽을힘을 다해 재활에 힘쓰던 과정을 촘촘히 기록하고 사진을 남겼던 영상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박위의 존재는 어떤 상황에서도 열정과 투지를 잃지 않고 전진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장애 공감 토크 콘서트에서는 장애인들의 일상적인 어려움과 도전, 그리고 그의 열정과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박위는 “나의 장애가 나의 인생을 좌우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회 간의 간극을 줄이는 데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또한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 캐치프레이즈로 38만 유튜브 채널 위라클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다양한 콘텐츠로 구독자들의 삶에 깊은 도전을 주고 있다.

당진 문예 전당에서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 ”박위(위라클)와 함께하는 장애 공감 토크 콘서트

 유튜브크리에어터로서 박위 님만의 깊은 철학이 있다. 조회수 1은 단순히 한 사람이 아니라 한 생명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이미 사명이 되었다. 좌절 가운데서도 절대 삶을 포기하지 않고 0. 000001%로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희망을 품고 앞으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나 또한 멈춰있던 일상에서 다시 취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터닝 포인트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3차 항암, 4차 항암 부작용으로 재입원을 해야만 했다. 3차 항암 때는 걷지도 못할 정도의 체력으로 바닥이 났다.


 심장초음파검사 이후에 심장 판막 출혈이 있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4차 항암 부작용은 혈관이 타들어 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부가 벗겨지면서 피똥을 싸고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 왔다. 혼자 그 고통을 감당해 내야 했다. 2023년 지옥 같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지났다.


2024년 1월 중순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표준치료만 끝나고 보니, 내 삶의 관점이 예전과 다르게 변했다.


무엇보다 종양제거수술, 항암치료, 방사능치료 20회 치료정들의 싸움을 벌이며 겪은 경험들이 나를 더욱 성장시켰다. 나 자신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나를 지키는 것이다. 온 우주의 중심에서 내가 있어야 소중한 아이들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암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삼 남매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첫째는 대입 준비로 분주하다. 기숙사 생활에 적응한 둘째는 전기기능사 자격취득 준비로 하루 부족하다 고 했다. ITQ 프로그램 자격증 취득을 목표하는 셋째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이다. 기특하게도 잘 살아내고 있다.


글을 쓰면서 슬기롭게 투병일지를 기록한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부푼 마음으로 눈을 뜬다. 어제보다 살짝 성장한 나는, 일어나 자리에 앉는다.


마음만 단단해지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을 쏟을 만큼 삶을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2023년 7월25일,공포의 유륜주사를 맞고  다음날 유방암 종양제거 수술이후 일주일 뒤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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