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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털풍뎅이 May 14. 2022

나의 애마 폐차기(2)

고집인가 궁상인가


코랭이를 타고 교외로 자주 나가게 된 것은 오히려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였다. 

육아는 아주 잠시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함, 그리고 끈기와 지구력의 싸움이다. 매끄럽고 보람찬 하루를 위해서는 아이와의 메인이벤트를 적절한 시간에 안배하고 스케줄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할머니 댁이든, 마트든 어디든 나가 콧구멍에 바람을 넣고 오는 것이 다음 한 주를 버틸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임신기간 내내 코랭이를 타고 다니며 입덧을 가장한 멀미와 씨름하던 아내는 ‘출산 후 식구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뒷문 있는 차가 편할 것 같다, 그때를 대비하여 차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말은 ‘이제  네 생각 좀 그만하고 철 좀 들라’는 이야기였다. 

코랭이를 사랑했던 필자는 눈치 없게도 아내의 이야기를 그냥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차 얘기만 나오면 의견이 갈라졌지만, 때마침 닥치는 육아의 돌발 상황이 화제를 돌리고 부부의 일치단결을 이끌었다. 일생일대의 난제를 마주한 부부에게 차를 바꾸는 일에 대한 토론 따위는 한참 나중에 해도 되는 일로 밀려나고 있었다. 


나름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편의 따뜻한 마음으로 뒷좌석에 베이비 시트를 장착했다. 

아이를 차에 태우기 위해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차에 등반해야 하는 것(코란도의 시트높이는 트럭이나 특수차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국내 최정상의 수준일 듯.)만 빼면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아내가 허리가 좀 아프다고 했…


그렇게 몇 해를 지내다 보니 아이가 스스로 차에 기어오르는 기적이 일어났다. 시트의 벨트만 채워주면 되니 한결 수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코랭이를 계속 유지해도 될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는데, 아이가 바른 자세로 앉아 있을 때는 괜찮지만 혹여(혹여는 무슨. 100%다.) 잠이 드는 경우에는 고개가 상하좌우로 춤을 추고 심한 경우, 몸 전체가 앞으로 쏟아지며 벨트에 매달리는 자세가 된다는 점이었다. 뒷좌석 등받이가 뒤로 좀 눕혀지기는 했지만, 편히 눕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뒷좌석이 뒷바퀴의 바로 위에 위치한 탓에 뒷좌석 승객에게는 노면의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차가 흔들리면 아이도 흔들리고, 차가 튀면 아이도 튀어 오르는 통에 바른 자세의 유지가 무척 어려웠다.(뒷좌석의 승차감이 특히 나쁘다는 얘기다.)

그래서 아이가 잠이 들면 한 사람은 꼭 뒷좌석으로 건너가 아이의 자세를 바로 잡아줘야만 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뒷좌석에 베이비 시트를 2개 장착했다. 

아내는 차를 바꾸기보다는 현실에 적응하기를 택한 듯 보였다. 잠들면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문제는 둘째도 마찬가지였지만, 고맙게도 이번엔 큰 애가 둘째의 자세를 바로 잡아주는 의젓한 오빠가 되어주었다.



육아와 자동차 생활은 결이 아주 다른 이야기이다. 유부남의 인생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과 후로 나뉘기 때문이다.
 몸부림쳐봐도 소용없다. 


오프로드 어드밴쳐? 동호회 모임? DIY? 
 다 덧없는 일이다. 욕망이나 취향 같은 것은, 그것이 평생을 꿈꿔온 자동차에 관한 것이라 해도 아기가 있는 유부남에게는 장착 불가능한 한가한 소리일 뿐이다.


혹, 뒷 유리에 ‘아기가 타고 있어요.’라는 푯말을 붙이고 뒷좌석 옆 유리에 온갖 판박이와 스티커도 도배된 코란도를 보신 적 있다면, 필자네 코란도를 보신 거다. 

따로 시간을 내서 세차하러 가는 일 따위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고, 정말 놀랍게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기껏해야 주유쿠폰으로 자동 세차기에 들어가고, 큰맘 먹고 뒷좌석 과자 부스러기나 치우는 것이 최대한이었다.  

사실은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말했던 것처럼 코란도는 육아에는 적당하지 않은 차였던 것이다.


 늘 새 차인 줄 알았던 코랭이도 아이들이 만큼 나이를 먹었고 슬슬 거리에서 같은 차를 만나는 일이 줄어갔다.

어쩌다 차를 타고 다른 학부모들을 만날 때면 ‘어머! 우리 예전에 연애할 때 타던 차네요!’ 하며 반가워했다. 


 나이를 먹으니 이제는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던 코랭이가 왠지 ‘철딱서니 없음’의 상징처럼 보이는 듯하여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뱃살에 걸맞게 좀 중후하든가, 아니면 육아에 걸맞게 좀 안락하고 편안하든가. 차 바꾸자고 할 때 진작 바꿔볼걸.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평생의 신념인 듯 코랭이를 고집하다가  생각이 바뀌는 것이 면목없어 내색은 못했다. 

코랭이를 구매할 때 SUV라는 카테고리에 있는 자동차는 기껏해야 두세 종뿐이었다. 특이한 포지션 덕분에 코란도는 대형-중형-준중형-소형-경형으로 이어지는 ‘승용차 계급도’에서 조금은 비켜서 서있을 수 있어 내심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랭이를 보내면 어떤 차를 사야 하나'를 생각할 때마다 ‘자동차 계급도’가 떠올라 어느 계급으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돈 쓰면서 소모적인 고민을 하느니 코랭이를 계속 타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던가.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코랭이가 다시 선녀처럼 보였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차가 점점 더 레어템이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필자는 ‘오래된 전통을 사랑하는 깨어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 참말이다.)
 그렇게 또 몇 년을 코랭이와 함께 지냈다.


달까지 가보자


어느 날, 차라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던 둘째 녀석이 코랭이 얘기를 꺼냈다. 


“우리 마을에 코란도는 아빠 차 딱 하나야.”


“그런가? 아빠는 몰랐네.”

 모르긴. 알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얼마 전까지 보였던 이웃집 코란도도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던 터였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를 하려나 긴장하고 있는데,


 “코란도는 눈이 똥그래서 착해 보여. 덩치도 큰 게 꼭 아빠 같아. 착한 차, 이뻐.”


둘째의 이야기를 듣고는 혼자서 가슴 뿌듯해했다. 코랭이가 더 좋아졌다. 

함께 지낸 시간만큼 우리 가족의 흔적이 묻어 있었고 우리 이야기가 배어있었다.


또 어느 날은 한참 우주에 관심을 갖고 있던 큰 아이가 말했다. 

어느 과학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선생님의 차는 달까지 갔다고 하더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약 38만 Km 정도인데, 그 선생님의 자동차 주행거리도 드디어 38만 Km를 돌파했다고 하더라는 이야기였다.


 “우리 차 주행거리도 20만 Km쯤 되니까 얼추 10년쯤 더 타면 우리 차도 달에 가게 되겠네.” 


라고 대답했다. 

이왕 이리된 것, 우리도 코랭이와 달까지 가볼까 했다. 좋은 생각이라며 큰 아이도 맞장구를 쳐줬다.

그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 차의 주행거리가 마치 훈장처럼 느껴졌다.


달로 가는 길은 미세먼지에 가로막혀


혹, 누군가가 오랫동안 가까이 두고 사랑한 물건에 그 주인의 정령이 깃든다는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 고유의 파동을 가지고 있는데, 손때가 묻을 만큼 오랜 시간을 사용하면, 사물과 그 주인의 파동이 닮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휴대폰의 경우 이런 느낌을 명확히 받을 수 있는데, 같은 모델이라도 나의 휴대폰을 쥐었을 때와 타인의 휴대폰을 쥐었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핸들의 촉감, 회전각도, 전조등의 밝기, 깜빡이 소리, 엑셀러레이터의 깊이, 엔진 소리, 배기음, 내장재가 떠는 미세한 잡소리까지. 필자는 코랭이의 모든 소리와 진동을 느껴왔다. 18년 동안 23만 Km를 넘게 달려왔다.
 어느 한 가지 익숙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몸의 일부처럼 차와 내가 '일심동체’를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랭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필자와 가족을 어딘가로 데려다주었다. 어떤 날은 어딘가 고장이 나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큰 탈없이 지내왔다. 

그리고 앞으로 10년을 더 코랭이와 함께 하며 달까지 가보려는 원대한 계획을 하루하루 실천 중이었다.
 

그런데 달에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다. 

미세먼지로 인해 최근 급격히 나빠진 공기 질 때문이었다. 미세먼지 저감 정책의 일환으로 노후 경유차 등급제가 시행되었다. 우리 차는 5등급에 당첨되었고 미세먼지 경보가 있는 날엔 운행이 제한되었다. 미세먼지는 대부분 중국발이라던데,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미세먼지 저감대책은 더욱 강력해져서, 서울시는 사대문 안을 녹색교통 지대로 정하고 5등급 차량의 도심 진입을 금지했다. 평일 새벽 6시부터 저녁 9시 사이, 그리고 주말과 공휴일에 5등급 차량의 도심 진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적발되면 벌금이 45만 원이라고 했다.(지금은 조정이 되었는지 홈페이지에 10만 원이라고 안내되어있다.) 


2020년 겨울부터는 더더욱 강화된 미세먼지 저감대책이 시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겨울철, 그러니까 12월부터 3월까지 서울시내 ‘전역’에서 5등급 경유차의 운행을 금지하는 계절 관리제를 시행한다고 했다. 

2020년 12월에는 서울시부터 시작하고 곧이어 경기도, 수도권 전 지역, 대도시 등으로 확대 시행될 것이라고 했다. 

1년 중 4개월 운행금지라니. 좀 심각했다. 저감장치를 부착하든, 조기폐차를 하든 뭔가 해야 했다.  

동호회에는 재산권의 침해라며 막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눈총을 맞는  분위기에 차를 처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매연 저감장치를 알아보았지만 코란도와 무쏘 등 쌍용자동차에는 장착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예전에 몇 군데에서 개발한 적은 있지만, 더 이상 저감장치를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좋을까 걱정스러웠다.


회자정리: 함께여서 행복했고 다시는 못 보겠지


달까지 가려면 앞으로 10년은 더 타야 할 텐데, 지금 상황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1년에 넉 달을 운행하지 못하는 차를 유지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합리해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노후 경유차 퇴출 정책은 점점 더 강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후 경유차가 정말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면 코랭이를 더 이상 운행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개인의 고집(?) 혹은 이익을 위해 공동체에 폐를 끼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달까지 가겠다는 목표는 중단하고 코랭이와 작별하기로 마음먹었다. 


정 떼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젊은 시절의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코랭이를 보내기로 마음먹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자동차를 폐차하는 것이 좋겠다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코란도를 보면 아빠 생각난다며 유난히 코랭이를 좋아하던 둘째가 섭섭해했다. 그냥 폐차하지 말고 주차장에 세워두면 안 되냐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설득했다. 



 폐차를 마음 먹고 폐차장에 전화를 해보았다. 

신분증과 통장사본 등 간단한 서류만 준비해두면 보조금 신청부터 폐차, 말소까지 원스톱으로 다 처리해주겠다고 해가 가기 전에 얼른 맡기라고 했다. 
 

추억이 배어있는 나의 오랜 친구 같은 자동차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해치우기만 하면 되는, 돈벌이.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돈벌이가 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마음은 먹었지만, 쓰레기 치우듯 하루 만에 덜렁 치워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근사한 이별여행까지는 아니어도 괜스레 감상에 젖어 쌓인 추억을 정리하고 긴 시간 군소리 없이 필자와 함께해 준 녀석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는 해주고 싶었다.


 오랜만에 ‘가득’ 주유를 했다. 

차들이 별로 없는 자유로를 달리고 포장이 안된 험로도 달려보았다. 진흙탕 길 물웅덩이도 피하지 않고 네 바퀴 굴림으로 내달렸다. 하얀 차에 돌이 튀고 진흙이 튀었다.
 그동안 한 번도 못해본 오프로드 모험, 이제야 해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18년 전, 새 차였던 우리 차 코랭이와 18년 더 젊었던 필자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올라왔다. 그냥 기계일 뿐인데,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차라는 것이 애물은 애물인가 보다 했다.

긴 시간을 가까이 두고 함께 하면, 그것이 사물이라 할지라도 감정이 싹트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은 인간에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고민했던 시간에 비하면 폐차 절차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조기폐차를 진행하려면 나의 차량이 조기폐차 대상 차량인지, 그리고 보조금 지급대상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자동차 환경협회에서 그것을 확인해주는데,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지 말고 자동차환경협회에 전화하여 문의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조기폐차 지원금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급이 되는데, 1월부터 당해연도의 예산이 집행되므로 연말쯤 되면 소진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가 등록된 관할 시도의 자치단체에 문의하면 예산이 남았는지 확인해준다.


자동차환경협회에 정해진 서식 <보조금 지급대상 확인서>를 작성하여 보내면 며칠 이내에 나의 차가 조기폐차 대상 차량인지 확인하고 연락을 준다. (주로 문자메시지로 연락이 오는데, 산정된 보조금도 함께 알려준다.)


그 문자메시지를 받은 후 2개월 이내에 관허 폐차장에 입고하고 폐차를 진행하면 된다. 



5등급 노후차를 폐차하게 되면 받게 되는 돈이 두 가지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해주는 조기폐차 지원금과 폐차비(고철값)가 그것이다.


조기폐차 지원금은 조기폐차 대상 차량의 폐차가 진행되면  법으로 정해진 지원 금액을 2~3개월 이내에 차주의 통장으로 바로 입금되므로 크게 신경 쓸 것이 없다. 
 그런데 고철값이라고 불리는 폐차비는 폐차장마다 금액이 조금씩 다르다. 2003년식 뉴 코란도를 기준으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폐차비가 최저 30만 원부터 최고 45만 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알루미늄 휠이 장착된 차량의 폐차비는 조금 더 비싸게 쳐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혹, 조기 폐차를 계획하시는 분들은 아무 데나 맡기지 마시고 자동차환경협회에서 보내주는 관허 폐차장 리스트를 참고하여 고철값은 꼭 비교해보시길 권한다.


필자의 코랭이는 위의 과정을 거쳐 2020년 11월 셋째 주에 폐차장에 입고했다. 

폐차장에서 기사님이 나오셔서 차를 가져가셨다. 기사님께 자동차 열쇠를 건네는 것으로 18년간 필자와 함께했던 코랭이를 보냈다. 


멀어져 가는 코랭이의 뒷모습을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며 눈물이 찔끔 날 뻔했지만, 꾹 참았다. 


그저 그런 고물차의 폐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사춘기 시절 한눈에 반해버린 풋사랑이었고, 십수 년 만에 훨씬 예뻐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가슴을 뒤흔든 첫사랑이었으며, 18년을 함께 지낸 아주 오랜 친구 같았던 자동차와의 이별 이야기이다.


미련은 어김없이 헤어짐의 순간을 훼방 놓지만,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꿈에서 깨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받아들일 만큼은 어른이 됐다. 추억을 담은 마음은 과거를 넘나들지만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 필자와 인연을 맺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코랭이가 다음번엔 더 좋은 차로 태어나 더 좋은 인연을 만나기를, 그래서 더 좋은 일에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가늠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꿈을 꾼 듯 코란도의 마지막 뒷모습이 아련하게 남는다. 
 아마도 그 아련함은 자동차 그 자체가 아니라, 어쩌면 지나가버린 젊은 날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아닐까. 그렇다면 오늘은 훗날 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궁금해졌다. 


이제 새 차를 알아보러 가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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