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가 프로필을 찍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언젠가부터 바디 프로필 촬영을 포함한 프로필 촬영이 온 국민 프로젝트처럼 되어버린 세태를 보며 왠지 모를 청개구리 같은 반감(?)이 있었는데, 깨작 운동해 놓고 #오운완 해시태그를 걸고 SNS에 보란 듯이 올려대는 게 솔직히 꼴 보기 싫었다.
너도 나도 찍어대는 발레 프로필도 그랬다.
발 끝 포인트도 안 되면서 꼴에 포인트슈즈를 신고 프로필이랍시고 우아한 척 찍어대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보기 싫었는지.
그래서 자기 객관화가 철저한 나는, 프로페셔널한 수준이 아니라면 저런 건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었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지만.)
그랬던 내가 요가 프로필을 찍었다.
사실 요가 프로필을 예약한 건 100% 충동적.
시작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였다.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일에 너무 시달려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던 요즘, 뭐라도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분출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물론 평일에도 요가를 하고 있지만 주말에도 이너피스가 몹시 필요한 상태였기에 주말 원데이 클래스를 검색하던 와중 오붓 요가(Obud yoga)의 '요가와 프로필 촬영'이라는 스페셜 클래스를 발견하게 된 것.
호기심에 살펴보니 요가 수업 한 타임과 수업이 끝난 후 몇 가지 요가 포즈로 촬영을 진행하는 패키지 상품 같은 것이었는데, 놀라운 건 이 것이 단돈 9만 원이었다.
9만 원이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수업도 듣고 사진도 남기는데 이 금액이면 해볼 만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수십만 원 깨지는 게 프로필 촬영이니까.
아무튼, 비용을 보고 나니 '한 번 해 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오랫동안 수련해서 원하는 경지까지 올라간 후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 프로필을 찍을 수 있는 날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고, 회사 스트레스로 인한 만성 질환으로 갈수록 몸이 더 망가지고 늙고 병들어갈 것 같았기 때문.
내 인생에 가장 젊은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라는 명언이 불현듯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지금 가장 젊은 순간에 뭐라도 남겨 놓자.
그래서 바로 수업을 예약하고 약 일주일 후 바로 촬영을 가게 되었다.
수업을 예약하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그래도 프로필 촬영인데 너무 준비할 시간도 없이 충동적으로 예약했나?'였다.
그렇지만 9만 원인데 뭐.
'부담 없이 사진 좀 찍고, 결과가 못 나오더라도 요가 수업도 들을 수 있으니까 일단 못 먹어도 GO다.'
라며 ENTJ인 나는 숨겨놓은 F 성향을 발휘해 일단 저질러버렸다.
수업과 프로필 촬영이 있는 당일 아침.
너무 부담이 없었는지 아침도 챙겨 먹고 유튜브도 보면서 여유를 부리다가 지각을 했다.
사실은 시간을 딱 맞춰서 갔는데, 스튜디오 앞 길이 상수도 교체로 공사 중이라 처음 가는 마을의 좁은 골목길에서 차를 몰고 빙글빙글 돌다 보니 늦어버린 것.
변명하자면 그런 이유였지만..
아무튼 도착하니 이미 수업은 진행 중이었다.
머쓱하게 중간에 합류해 간단한 빈야사 움직임을 이어갔다.
요가 수업은 딱 몸을 푸는 정도로 끝났다.
이어서 포토타임.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나는 1 빠로 찍겠다고 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15분 정도의 짧은 촬영 시간이었는데 다행히 수업을 진행해 주신 요가 선생님과 사진작가님이 친절하게 동작도 계속 봐주고 포즈 코칭도 잘해주셔서 생각보다 더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느꼈던 점은,
우선 몸이 덜 풀려서 평소보다 동작이 덜 나와서 아쉬웠다는 것.
평소 수련하던 것보다 훨씬 짧고 난이도가 이지한 수업이었고, 스튜디오 자체는 정말 좋았는데 난방을 거의 안 한 상태라 너무 추웠다.
근육들이 너무 오그라져있었던 상태로 동작을 하려니 평소에는 잘 되던 것들도 잘 안 됐다.
그리고 무리한 고난도의 자세보다 자연스러운 동작들이 사진으로 찍었을 때 훨씬 잘 나온다는 것.
나는 야심 차게 핀차 자세를 찍어보겠다고 도전했으나, 가끔 컨디션 좋을 때나 성공하던 핀차가 낯선 환경에서 몸이 덜 풀린 상태로 될 리가 없었다.
결국 실패 ㅋㅋ
나중에 결과물을 받아보니 화려한 동작보다 무리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찍힌 사진들이 더 좋았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해야지 갑자기 엄청난 걸 하려고 하면 오히려 어색하게 찍힌다고 선생님도 얘기했다.
그러니까.
뭐 하러 잘 되지도 않는 핀차를 하겠다고 용을 써서 시간을 날렸나.
아무튼 이쯤에서 풀어보는 결과물들.
이번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점은, 프로필 촬영에 대한 나의 인식이 아묻따 부정적이었다는 것과 그것이 오만함이었다는 것.
사실 프로필 촬영을 예약하고 나니 전혀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수련할 때의 마음가짐도 꽤 달랐었는데, 평소보다 더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되었달까?
이런 특별한 이벤트 하나가 평소 똑같이 흘러가는 루틴에 변화를 가져다주고, 상당히 모티베이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 촬영을 해보고 나니까 더 열심히 해서 다음번엔 더 제대로 프로필 촬영을 해보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다들 이래서 하나보다.
내가 강사처럼 완벽하고 잘해야만 프로필 촬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초심자도, 요가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
그냥 그것을 즐기고 동기부여가 될만한 스페셜한 추억하나를 남길 수도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몸이 안 풀려서 동작이 잘 안 나왔다는 핑계를 댈 필요가 없을 만큼 더 열심히 수련하고 연습해서 내년에는 더 멋있고 마음에 드는 프로필 사진에 도전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