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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원의 초고들 Oct 09. 2023

그런데 명소가 되었다

연락선이 다가왔다. 건너편에 위치할 때 작아보였던 배가 눈 앞까지 다다르니 엄청나게 거대했다. 배는 조용히 선착장에 정박했고, 거칠고 무거워 보이는 강철 문을 양 옆으로 벌렸다. 문이 열리자 배에서 사람들이 내려왔고 각자 동행끼리 뭉쳤다. 서로를 찾은 무리는 선착장 내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서 배에 있던 자동차가 한 대씩 땅으로 내려왔다. 큰 버스는 없고 작은 차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 우아직이 있었고, 나는 냉큼 그 차를 가리키며 “저 차입니다. 우리가 알혼에서 타고 다닐 버스입니다.”라고 말했다. 우아직은 터덜터덜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회색 시멘트 바닥으로 굴러내려왔다. 눈에 익숙한 엠블럼을 단 자동차 사이에서 보니, 저 차를 누가 탈까 싶다.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이 보였다.


승선할 때는 자동차부터 배 위로 올라갔다. 더 이상 자동차를 실을 수 없을 때, 나와 스물 다섯 명의 여행객을 포함한 사람들이 배에 걸어 올라탔다. 평소에는 작게 보이던 자동차가 배 한 가운데를 하나,둘 차지하니 어째 이전 보다 조금 더 커보였다. 구조물이 적은 중심부를 차지한 자동차들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배 가장자리에 섰다. 덕분에 우리는 연락선이 알혼섬에 도착할 때까지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있었다. 아까 호숫가에서 배를 기다리며 봤던 호수는 참 맑고 잔잔했는데, 배 위에서 호수를 내려다 보니 짙고 어두웠다. ‘맞다. 세상에서 제일 깊은 호수였지’. 순간 생각지도 못 했던 긴장감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생겼고, 재빨리 여행객들이 위험하게 행동하지 않는 지 살펴보았다.


여행객들이 갈매기에게 간식 주는 모습을 조마조마 지켜보니 어느 새 배는 알혼섬에 도착했다. 배가 다시 한번 강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휴대폰을 들어 육지에서 건네 받은 번호를 입력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반대편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여기, 여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우리는 배에서 걸어 내려왔다. 사람들이 캐리어를 끌며 소리 지른 사람에게 걸어가는데, 반대편 땅에서 보이지 않았던 흙먼지가 잔뜩 일기 시작했다. 알혼섬은 포장되지 않은 섬이라 시멘트가 없었고 대신 흙바닥이 레드 카펫 역할을 했다. 꽃가루 대신 모래 알갱이를 흝뿌리며 우리는 우아직 쪽으로 이동했다. 주차장에는 우아직 네 대가 준비되어 있었고, 한 대당 일곱 명씩 올라탔다. 트렁크가 없었기 때문에 가장 적은 인원이 탑승한 차에 캐리어를 실었다.


오랜만에 앉아 이동을 하다보니 긴장이 풀렸을까, 차에 올라타기 전에 해야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든 여행객이 타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했다. “우아직은 원래 러시아에서 군용 차량으로 생산된 차량이에요. 보이는 것처럼 값비싼 차종은 아니에요. 그래도 튼튼하고, 또 수리가 다른 차들보다 용이하다고 해요. 그래서 알혼섬에서, 자동차 정비소가 없는 이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우아직을 타고 이동해요. 그리고 이동하는 길이 조금 불편하죠? 여행객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도로를 포장하지 않는 이유는 법 때문이에요. 러시아에서 법으로 알혼섬 내 공사를 제한하고 있어요. 알혼섬 환경에 유해한 행위나 공사를 할 수 없습니다. 마을에 도착하면 보시겠지만 대부분의 숙소도 나무로 지어졌어요”.


네 대의 우아직이 차례차례 숙소 앞에 멈췄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숙소 앞에 섰고, 나는 “각 방에 짐을 두고 나오세요. 곧 바로 투어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십분 뒤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여행객들이 하나둘 모였고, 방에 짐을 두고와서 그런지 얼굴이 편해보였다. “오늘 저희는 알혼섬 북쪽을 관광할 거예요. 이동시에 우아직이 많이 흔들릴 수 있으니 차량 내 손잡이를 꽉 잡아주세요”라는 말을 건내며 차에 올라탔다. 예상대로 우아직은 덜컹거렸다. 그리고 첫번째 명소에 도착했다.“악어 바위입니다” 호수 중간 쯤에 뽈록 튀어나온 두 바위 덩어리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여행객들은 “오, 진짜네~”라는 동의와 함께 호숫가로 걸어갔다. 두번째 명소는 사자 바위였고, 세번째는 사랑의 언덕이었다. 


그렇게 세 시간이 넘는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손을 씻고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뜨거운 물은 적당하게 나눠 쓰셔야 합니다”라 말하고 방으로 이동했다. 침대에 툭 앉아 오늘 보았던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알혼섬 북부를 관광하며 보았던 사자 바위는 보통의 바위보다 뾰족뾰족한 모양새를 가진 바위였다. 사랑의 언덕은 단순히 두 방향으로, 하트 모양으로 갈라진 언덕이었다. 누군가 보기에는 그저 그런 바위 덩어리이며 언덕이었다. 그런데 명소가 되었다. 배를 타기 전에 섬이 아닌 육지로 터덜터널 굴러내려오던 우아직도 떠올랐다. 그때는 우아직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관광 내내 알혼섬을 날아다녔다. ‘아, 결국 모든 쓸모는 우리가 만드는 거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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