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푹푹 빠졌다. 구글맵으로 어떤 숙소가 괜찮은지 보려했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발로 찾았다. 같이 온 여행객들에게는 알혼섬에서 제일 좋은 숙소를 안내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여덟시까지 그 숙소 로비에서 모이자는 말을 전하고 나왔다. 숙소에서 나오자 알혼섬은 이미 어두워졌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는 별이 상당히 잘 보였지만 눈 앞을 밝혀주진 못했다. 전기공급이 약한 건 둘째치고 가로등 따위도 적은 섬이라 아이폰 빛에 의지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모래밭 위를 걷고 있고 신발에는 어느새 모래가 잔뜩 들어왔다.
초등학생 때 신발에 들어간 모래를 자주 털었다. 아파트 앞에 놀이터가 있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그네 옆에 던져두고 저녁식사 전까지 놀았다. 특히 당시 단짝이었던 병윤이와 놀이터에 깔린 모래를 손으로 휘저으며 조개 껍질을 모으며 놀곤 했다. 그리고 각자 발견한 조개껍질 중 가장 강해보이는 것을 내세워 조개싸움을 했다. 엄지를 껍질 안쪽 움푹 들어간 곳에 대고, 바닥에 놓인 상대방의 조개를 짓누른는 방식이었다. 두 껍질 중 깨지지 않은 쪽이 이긴 걸로 했지만, 결과가 나왔을 때는 매번 엄지에 붙어있는 조개껍질보다 바닥에 조각난 껍질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객들에게 안내한 숙소에서 멀어지니 그보다 작은 숙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발 속 모래는 점점 많아져 신경이 쓰였지만, 당장 신발을 벗어 모래를 털어내긴 쉽지 않았다. 우선 들고 있는 아이폰보다 조금 더 큰 불빛을 내는 숙소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걸어갔다. 나무로 된 2층집이고 문 앞에는 개 한마리가 있었다. 한국에 있는 새봄이가 생각났지만 빨리 신발을 벗고 싶어 숙소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람 없는 복도에 인사를 던졌을 때 오른쪽에서 주인 할머니가 나왔다. “저 하루 묵고 싶은데요”라고 말하니, 할머니는 대답 없이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할머니는 “차?” 라고 물어봤다. 다만 “네”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전기포트를 들어 따뜻한 물을 검은 유리잔에 따랐다. “레몬? 우유?” 라고 다시 물었고, 나는 아까보다 빠르게 “레몬이요”라고 말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홍차에 우유를 넣어 즐겨 마시지만, 나는 우유보다는 확실히 레몬이 좋다. 할머니가 냉장고에서 레몬을 꺼내 곧바로 썰고는 내 유리컵에 빠뜨렸다. 그제야 나는 차를 한모금 마시고 1박에 얼마인지 물었다. 할머니는 “방에 상관없이 2,500루블 (한화로 약 40,000원)” 이라고 말했고, 나는 아침에 신사장님이 준 3,000루블을 만지작 거리다 할머니에게 건냈다.
“숙소에 남은 방이 없어서 네 방은 못 구했어. 지금 성수기라서 그런가봐” 라며, 신사장님이 건내준 돈이다. 아침에 신사장님은 이정도면 충분할거란 듯이 1,000루블 지폐 세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알혼섬 숙소에 도착해 여행객들에게 방배정을 해줄 때, 불이 들어오지 않은 방을 몇 개 봤다. 아직 입실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구나 싶었다. 각자에게 정해진 방을 안내하고 “짐만 두고 로비로 오세요”라고 말했다. 짐을 두고 나올 여행객들을 기다리기 위해 보다 먼저 로비로 나와 앉아있었다. 그때 벽에 걸린 가격표가 보였다. 일박에 약 10,000루블(160,000원)이었다.
할머니는 잔돈 500루블과 베갯잇, 담요, 수건을 한번에 건냈다. 왼손으로 500루블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는 오른손과 가슴을 이용해 안았다. 그대로 방으로 올려가려 했지만, 할머니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도로 의자에 앉았다. 할머니에게 받은 폭신한 것들을 의자 옆에 내려놓고 유리잔에 남은 홍차를 홀짝였다. 한국인이 러시아는 웬 일인지/ 무슨 공부를 하는지 등등 차근차근 궁금증 해소를 도왔다. 대화가 멈추고, 주방에 켜있던 티비소리가 더 크게 들려올 때 의자에서 일어나 방으로 움직였다. 아, 아직 모래를 털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현관쪽으로 갔다.
밤새 생각보다 잘 잤다. 침대에서 일어나 간단히 씻고, 숙소 할머니에게 떠난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여행객들이 머무는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해 여행객들이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면서, 로비에서 판매하는 기념품을 구경했다. 네르빠 인형, 러시아 모자가 있었지만 그 중 바이칼이 그려진 파란색 볼펜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마침 주머니에 500루블이 있었고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볼펜을 만지작 거리다보니 여행객들이 다 모였다. 다들 잘 잤냐는 안부를 서로 물었다. 그때 여덟시가 됐고 “버스로 이동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 같이 한 버스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