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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누 Mar 26. 2023

어떤 세계가 와도 이해를 멈추지 않기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



내게 SF 하면 떠오르는 것은 디스토피아였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불리는 세계관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그 세계에서 인류는 서로를 의심하고 죽이거나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에 맞서 피를 흘리고 부서져갔다. 

그런 의미에서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내게 SF 소설의 편견을 깨준 책이다. 자극적이고 일차원적인 요소들이 아닌 상상력들로 가득했고 진부한 SF의 설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것은 '이해'라는 키워드였다. 


반면에, 내가 보고 듣고 기억했던 미래의 이야기들은 이해보다는 대부분 미지의 것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을 가진 서사였다. 가령, 적대적인 종족과의 전쟁 대부분은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안 했던 것이었고, 서로가 가진 문명의 우열을 논했다. 이런 협소한 SF적 세계관을 가진 덕에 솔직히 기대를 크게 안 하고 읽은 책이었다.


다양한 수식어구를 떠나 일단 재밌었다. 문과인간인 내게 과학적 원리나 세계관이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없었다.오히려 참신한 설정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미시적인 미래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한 편 한 편의 여운은 짙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세기를 뛰어넘는 그리움과 꺾이지 않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고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는 완전함과 불완전함, 정상성과, 비정상에 대한 질문을 내게 남겼다. <감정의 물성>은 오히려 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서 더 몰입할 수 있었고 <관내분실은> 그냥 좋았다. 가장 가까이 있으며 가장 이해하기 사람이 여전히 엄마이기에, 우리 엄마 역시 내 존재로 인해 세상과 단절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엄마를 이해해요"라는 그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읽는 재미와 읽고 난 후의 여운을 둘 다 잡는 책은 흔치 않다. 그래서 내가 단편 소설집을 추천할 때마다 꼭 한 번씩은 추천하는 책이었고, 후속 소설집인 <방금 떠나온 세계>도 이미 읽었다. 김초엽 작가의 글은 단단함 속에 따뜻한 느낌이 있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너무 취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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