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그들의 "나" 중심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모습은 이방인으로서의 나의 존재감을 가끔씩 확인시켜주곤 했었다.
"내 생일인데 다 모여줄래?"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앉아있으면, 자기 생일이라 케익을 만들어왔으니 휴게실로 오라는 메신저 쪽지가 날아올 때가 있다.
아침 커피 모임에 달달한 케익은 반가운 소식이고, 축하 덕담도 오가면서 여느 날보다 웃음이 만발한 하루가 시작된다.
가끔씩은, 며칠 후에 자기 생일파티를 하니까 참석여부를 알려달라는 쪽지를 받을 때도 있다.
서프라이즈 파티를 할 때도 있고 배우자가 만들어 준 케익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생일을 위해 직접 케익을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축하는 분위기가 그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보였다.
나에게는 어른이 되면서 잊혀져간 문화 중 하나가 생일 초대인 듯 싶다.
"나이 먹는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스스로 축하씩이나", "해마다 오는 생일이 별거인가, 뭐하러 주변에 그런 얘기를"
내가 나를 챙기는 것보다 서로를 챙겨주는 문화가 더 완벽해 보이기는 하지만,
혹시, 나이를 먹어 가면서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일 자축을 떠나, 원하는 것을 주저 없이 실천하는 능동적인 태도는, 나를 위한 삶을 만들어감에 있어 꼭 필요한 길잡이이다.
파티의 주인공은 바로 나
어느 주말 저녁에 친한 동료의 저녁 초대를 받고 집으로 갔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다른 동료들이 와 있겠지 생각했는데, 왠열... 한두 명 빼고 다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만 홀로 낯선 사람이 아니고, 서로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같은 사무실 동료들, 출퇴근 버스에서 마주치다 친해진 사람들, 고향 향우회에서 만난 친구들, 그 사람들의 남친/여친들까지....
워낙 이런 파티에 익숙해서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불편해하거나 어색한 얼굴로 앉아있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호구조사와 함께 대화가 시작된다.
음식 하나를 놓고 각자의 나라나 고향의 독특한 레시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타향살이 타국살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생각지 못했던 이런저런 좋은 정보를 서로 주고받기도 한다.
파티 호스트가 깔아준 판에서 다 같이 그냥 이 순간을 편하게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축하하기 위한 모임에서도 타인의 감정을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결정할 때가 많다.
초대받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잘 아는 사람들인지, 서로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심지어 라떼는, 결혼이나 이사 집들이를 할 때, 이번 주는 직장동료들, 다음 주는 학교 친구들.... 몇 번에 걸쳐 주말마다 손님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배려는 아름다운 문화이다.
그런데, 수단이 되어야 하는 "배려"에 너무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면, 배려가 목적이 되어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고 형식만 남게 되기도 한다.
내가 행복하고 즐길 수 있어야 배려도 빛날 수 있다.
당신은 내 환송회에 초대되었습니다!
전 직장에서는 사람들이 이직할 때마다 본인이 직접 환송회를 준비했다.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을 결정해서 연락을 하고, 사내 카페나 식당을 예약해 둔다.
처음에는 이런 셀프 환송회가 왠지 삭막한 문화처럼 느껴졌지만,
환송회에 몇 번 참석을 해보니, 형식적인 사람들이 모여 형식적인 겉치레 인사가 오가는 자리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훈훈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에게 간단한 다과와 함께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고 떠나는 아름다운 마무리도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서로 달랐지만 이제는 조화가 필요한 시대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와 동양의 집단주의 문화의 시작은 아주 오래전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생태적 환경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
서양의 기원으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남들과의 협력이 필요한 농업보다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어업, 사냥, 목축, 무역 등의 경제활동이 중심을 이루게 되면서, 집단보다는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중시되고, 개개인의 자유, 권리, 능력, 성취 등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한 서양인 사고의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반면 동양의 기원인 고대 중국은 넓은 땅으로 이루어져 있어 주변 사람들과의 공동작업이 필요한 농경이 발달하였고, 개인보다는 집단과의 협력을 중요시 여기며, 논쟁이나 대립보다는 합의를 찾아가는 중용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단절된 세상에서 그렇게 다름이 쌓여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로의 문화에 스며들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삶과 문화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어떤 면에서는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개인화되어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이방인이라는 단어도 없어지거나, 지구 밖의 다른 행성인을 표현하는 용어가 될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