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EURO 축구, 2010년 월드컵에 이어, 2012년 EURO 축구까지 스페인이 국제대회에서 연달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사람들은 파워 축구의 시대가 가고티키타카 축구의 전성시대가 왔다고 했다.
한때는 축구 전술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타깃맨)의 영향력이 거의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는데,
타깃맨에게 공이 전달되면 공중볼을 따내거나 힘과 피지컬로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을 이겨내고 스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주요 전술이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축구 전술도 다양해졌다.
빠른 공수전환과 밀착수비(영국), 힘과 조직력(독일), 다양한 전술과 빗장수비(이탈리아), 화려한 개인기의 삼바축구(브라질)...... 그리고, 공격수와 수비수의 구분을 줄이고 짧고 간결한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해가는 티키타카 축구(스페인).
격렬함을 흡수하는 유연함
축구는 네트 너머로 공을 보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공을 몰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크고 작은 접촉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더구나, 한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은 공은, 누가 더 공을 소유하기에 유리한 상황인지를 판단하기에 애매한 경우가 많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이고 한 발이라도 더 내디뎌서 공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각축전이 벌이지기 일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곧이어 공+상대선수+내가 삼위일체가 되어 뒹구는 순간을 직감하게 되고, 평소에 유연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곧바로 돌격에서 방어로 태세를 전환하여 위험을 비껴갈 수 있다.
여자들은 대체로 남자들보다 신체구조적(근력)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런 유연함을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 듯하다.
아기자기하고 운동량이 많은 여자축구
예전 직장에 있을 때, 조그만 실내체육관 2층에서 점심시간마다 남자들이 축구하는 것을 보다가, 몇몇 여자들도 의쌰의쌰 팀을 짜고 1층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원이 너무 적어서 남자들에게 몇 명 함께 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나름 바쁜 시간에 짬을 내서 운동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려는 것인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몇 개월 후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지원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서로 내려가겠다고 경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겨우 몇 개월 만에 패스를 주고받는 실력이 좋아졌을 리 없고, 공을 다루는 기술이 늘었을 리도 만무하다.
2010-2014 실내체육관 축구 멤버들
그때 남자들이 운동하는 것을 지켜보면, 조그만 실내체육관이라 해서 덜 부딪치거나 덜 세게 공을 차려는 시도나 노력은 없어 보였다.
한두 번의 강한 패스와 슈팅으로 상대편 골대를 강타하면서, 자주 부딪쳐 넘어지거나 엄청난 스피드의 공에 맞아 뒹굴면서 경기가 중단되는 시간이 많았다.
거의 매주 크고 작은 부상자들이 나왔고, 축구하는 직원들 얘기가 나오면 상사들은 한숨을 쉬었다.
여자들의 축구는 완전히 달랐다.
작은 실내공간이라 공을 세게 차지 않고도 연결이 잘 되었고, 공을 컨트롤하는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서로 자주 뺏기고 뺏기면서 쉴틈 없이 계속 뛰어다녔다.
실력이 쑥쑥 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패스 타이밍도 좋아지고, 위치를 잡아가는 움직임도 나아지면서, 아무 데나 공을 차고 우루르 몰려다니는 물고기축구도 점점 사라졌다.
부상 위험이 적으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운동량도 많은 여자팀과 운동하려는 남자들은 점점 많아졌고,
나중에는 해마다 12월에 한 번씩 남녀 혼성팀을 짜서 "크리스마스 토너먼트"대회를 열기도 했다.
2014년 직장을 떠나며...어딘가에서 지금도 즐겁게 축구하고 있을 그녀들
축구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
작전타임이 없다.
한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공의 흐름을 끊을 수 없고, 키퍼가 공을 들고 정지해 있는 순간에도 선수들의 허점에 따라 한순간에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게다가, 작전타임을 위해 11명의 선수들이 멀리서 뛰어왔다 뛰어가는 것은 엄청난 체력 낭비와 시간낭비 이기도 하다.
날씨장애물이 없다.
축구경기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추워도 웬만하면 중단되지 않는다.
비가 오면, 물기 묻은 축구공의 움직임이 더 예민해지고 더 많은 변수가 생겨서, 예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겨울에도 장갑 하나만 끼고 반바지 입고 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양보의 미학이 있다.
나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아낌없이 기회를 양보하는 대신, 나의 승리가 아닌 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공이 나랑 멀리 있어도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상대 선수들을 교란시켜, 동료에게 더 넓은 빈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양보와 배려를 모르는 사람은 축구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요즘 골때녀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여자 축구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이다.
어설프고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뛰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고, 함께 기쁨의 순간을 만끽하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여자들의 축구 응원문화가 활발해졌다면, 골때리는 그녀들 이후로 여자들의 축구 참여문화가 한 단계 수직상승한 듯하다.
움직이는 공을 발로 컨트롤하면서 적재적소를 찾아 적당한 속도로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내 공을 째려보며 득달같이 달려온 상대 선수가 앞을 가로막고 서있어, 편안한 동작의 기회마저 주지않는다.
순간적인 집중력, 넓은 시야, 강약 조절의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의도했던 곳으로 공이 잘 배달되거나 골망을 흔들게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라.
보는 것도 힐링인데, 실제로 그 순간의 주인공이 된다면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기쁨은 나누면 2배...11명이 함께 나누는 기쁨
에필로그
1. 어디로 갈지 막막하다면 인스타그램으로 가라. 살고있는 지역명과 여자축구 또는 풋살로 검색을 하면 자세한 정보가 쏟아질 것이다.
2. 방문할 팀을 정했다면 별도의 준비물은 없다. 축구화 없이 찾아가도 트렁크에 싣고 다니는 여분의 축구화를 빌려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