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에디슨의 뛰어난 사업가적 능력이 없었다면 그의 발명품들 중 어떤 것들은 훨씬 더 늦게 세상에 등장했거나, 연구를 이어갈 돈이 없어 아예 발명되지 못한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2차 산업혁명시대의 미국에서는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특허활동을 적극 장려했으며, 에디슨은 특허를 매각하여 종잣돈을 마련하거나, 특허를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면서 연구개발 사업을 키워갈 수 있었다.
국가정책이 제대로 작동한 전 세계적 우수행정사례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전구를 개량하고 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송전함으로써 일상생활 속에 전구를 정착시켰고, 축음기, 영사기, 장거리 통신 전화 등 개인의 삶과 사회적 문화 수준을 수직 향상시킨 위대한 발명가이자 사업가였다.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은 휴대용 라디오나 TV가 나오기 수십 년 전에 이미 "앞으로 사람들이 걸어 다니면서 보고 듣는 세상이 올 것"을 예견했었는데,
세계적인 예술가와 발명가 모두,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행복이나 즐거움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에디슨은 일생을 통해 1093개의 특허를 획득했으며, 아직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 소유자(개인)로 남아있다.
에디슨의 인생에 커다란 오점을 남긴 니콜라 테슬라와의 만남
에디슨연구소에 취직하려는 테슬라를 위해 그의 고용주가 써주었다는 추천서를 보면,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아주 훈훈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훌륭한 사람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에디슨 당신이고 다른 한 명은 이 젊은이입니다"
이런 추천서를 받았다면 어깨에 힘주고 거만한 얼굴로 사장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곧이어 벌어졌던 에디슨과 테슬라의 혈투를 생각하며 추천서를 다시 보면, 두 개의 태양이 하나가 되기 위한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복선으로 깔려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사후적 고찰의 나쁜 예...^^)
테슬라가 취업 2년 만에 에디슨연구소를 그만두고 1인 회사를 세웠던 1886년부터, 에디슨과 테슬라의 본격적인 전류 전쟁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교류 vs 직류" 전쟁은 매우 잘 알려진 유명한 일화이다.
이미 전기산업계의 기득권이었던 에디슨은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테슬라의 시장 진입을 막았다고 하며, 그 와중에 테슬라의 "교류"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사형집행 전기의자는 에디슨의 최악의 발명품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1893년 만국박람회장의 25만 개의 전구를 교류전류로 밝히게 되면서, 두 사람의 진흙탕 싸움은 사실상 테슬라의 승리로 끝이 났다.
테슬라의 "교류"가 에디슨의 "직류"를 이긴 것은 교류가 더 우수한 송전방식이어서가 아니라, 발전시설이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장거리 송전에 더 유리한 교류가 표준이 되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과 함께, 풍력, 태양열, 태양광 등에 의해 생산된 전기를 근처의 주변 도시로 공급하는 소규모 발전시설도 함께 성장하고 있어, 앞으로는 에디슨의 "직류"방식이 다시 표준이 되는 세상이 올 지도 모르겠다.
특허소송 전략으로 압박했던 에디슨과 기술 공유 전략으로 응수했던 테슬라
에디슨의 언론플레이에도 불구하고 대세가 점점 테슬라에게로 기울자, 에디슨은 특허소송 카드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당시, 테슬라의 사업 파트너)를 압박했다.
에디슨은 전기 관련엄청난 양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테슬라 측이 사용하는 기술과 유사한 내용의 특허를 찾아내어 특허침해 소송을 걸고,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에디슨의 특허소송에 대해 테슬라는 교류 전기 관련 모든 특허 기술을 일반에 공개하는 전략으로 응수했다.(사실, 여기에는 다른 썰도 있는데, 테슬라가 특허를 자진 공개한 것이 아니라, 에디슨의 압박이 웨스팅하우스를 굴복시켜 어쩔 수 없이 특허를 포기했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테슬라의 기술 공유 전략은 에디슨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결정적 한방이 되었다.
기술이 모두 공개되어 누구나 사용 가능하게 되자, 교류 방식이급속히 확산되면서 "표준"이 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특허는 발명가의 피와 땀을 보호해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대기업이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여 소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막는 무기로 사용하거나, 연구개발 노력 없이 특허만 사들여 침해 소송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특허괴물을 양산할 수도 있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다.
에디슨은 130년 전에 아주 일찌감치 특허제도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모두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남겼다.
에디슨의 사업가적 능력과 테슬라의 정신세계를 모두 뛰어넘은 일론 머스크
▶ 머스크의 사업 스토리 : Blaster - Zip2 - X.com - Paypal - SpaceX - Staklink - Tesla, Inc
머스크가 12살에 직접 코딩을 해서 500달러를 받고 팔았다는 비디오 게임 Blaster, 23살의 머스크를 수백억 청년사업가로 등극시킨 인터넷 회사 Zip2, 동료들과 X.com 설립 후 인수했던 전자결재 회사 Paypal...그리고, 2003년부터 시작된 머스크의 우주사업 SpaceX 와 인공위성 사업 Stalink까지...
뛰어난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머스크의 성장 스토리는 에디슨을 떠오르게 하며,
머스크가 전기차를 처음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전기차 산업의 성장과 대중화에 큰 업적을 남긴 점에서도, 에디슨의 전구 스토리와 많이 닮아있다.
▶ 우주를 꿈꾸었던 니콜라 테슬라와 일론 머스크
인류의 화성 이주계획을 이야기하는 머스크를 두고, 머스크가 화성인일 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니콜라 테슬라도 어려서부터 우주인과 미확인 비행물체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테슬라가 전기공학에 몰두했던 이유도 우주인과의 교신을 위해서였고, 행성 간의 교신이나 우주 탄생의 비밀을 연구하면서 무선통신을 발명하게 됐다는 썰도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추측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테슬라와 머스크 두 사람 모두 지구를 넘어 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정신을 가진 천재임은 분명한 것 같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뛰어넘어 화성 이주 계획을 세우고, 민간 우주여행의 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 기술을 모두 공개하고도 테슬라가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자동차는 사람들의 생활필수품이지만, 새롭고 좋은 물건이 나왔다고 해서 내일 당장 바꿀 수 없는 고가 용품인 데다, 사는 것 못지않게 유지 방법도 중요해서 사회적 인프라의 영향을 크게 받는 특수성도 가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2014년부터 테슬라모터스의 모든 특허를 공개했다.
이미 자동차산업계의 기득권인 휘발유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산업의 파이를 키우고, 충전시설 등의 인프라를 확장시켜 차량 유지에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머스크의 전략은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처럼 대성공을 거둔 듯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전기차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고, 배터리나 충전 관련 사업의 발전 역시 피부로 와닿을 만큼 큰 변화가 있었다.
물론, 특허 공개와 기술 공유가 항상 윈윈 전략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쟁자들을 무임승차하게 하고,우리 기술을 토대로 더 나은 제품을 출시하게 되면 순식간에 시장으로부터 밀려나는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
머스크는 차의 크기와 무게를 줄여 속도나 주행 거리를 향상시키거나, 한 발 앞서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이는 등, 엄청난 연구개발 투자와 효율적인 경영전략을 통해 기술 공개의 위험을 과감히 돌파해가며 여전히 업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