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까운 친척들이 리조트에 모였다. 각자 집에서 준비한 생선, 고기, 채소와 과일이 풍성했다. 그런데 맛있는 김치를 준비해 온다던 동생이 큰일 났다고 외친다. 그녀는 준비했던 다른 반찬들은 챙기고 김치만 깜박하고 그냥 온 것이다. 다행히 오이장아찌로 넘기긴 했지만, 아무리 반찬이 많아도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기가 힘이 들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 12월 초순에 김장했다. 지금처럼 배추 5~6 포기의 김장이 아니고 다른 집들처럼 100 포기나 많이 할 때는 200 포기를 했다. 잘 담근 김치를 장독에 집어넣으면 겨우 내 먹을 수 있는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김장하는 날은 식구 전체가 모이게 된다. 그날은 가족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는 힘든 날이었다. 마지막에 남은 배추에 양념을 친 겉절이와 삶은 돼지고기는 김장이 끝났음을 알리는 맛있는 저녁 반찬이 되었다. 가끔 시골에 사는 친척이 땅에 묻어 놓았던 김치를 가져오면 그 맛은 우리 집 김치와 달리 신기할 정도로 맛있었다. 땅속에 묻었던 김치는 장독대에서 겨울을 난 것과 확실히 맛이 틀렸다. 맛있는 김치는 발효시킬 때 낮은 온도가 좋다고 하니 겨울의 땅속과 김치냉장고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김만조, 이규태의 ((김치 견문록/ 디자인 하우스/2008)) 을 보자.
김치나 된장, 간장, 고추장, 젓갈 등을 ‘담근다.’라는 말에는 ‘삭힌다.’, ‘익힌다.’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유해균의 번식, 발육을 저지해 부패를 막고 유익한 미생물과 효소가 작용해 재료들이 담가진다. 이 과정에서 복합적 발효 작용이 일어나 독특한 맛과 향을 생성하는 음식으로 익는 것이다.
김치 발효의 유효 미생물은 기온이 낮을수록 활동이 원활해져 부패와 이상 발효를 막는다. 따라서 김치는 낮은 온도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나는 김치의 종류를 찾아보면서 이렇게 많은지 깜짝 놀랐다.
김치의 종류로는 배추통김치, 백김치, 총각김치, 보쌈김치, 나박김치, 오이소박이, 섞박지, 무청 깍두기, 굴깍두기, 열무김치, 짠지 무김치, 동치미, 총각무 김치, 고들빼기김치, 돌산 갓김치, 파김치, 동치미 등 이외에도 음식 재료에 따라 만든 김치들이 있었다.
배추와 무, 그리고 양념 중에 젓갈은 지방마다 조금씩 달라서 독특한 맛이 구분된다. 서울, 경기지방은 새우젓을 넣는데 김치가 익으면 시원한 맛이 났다. 그리고 전라도 김치는 여러 가지 젓갈 때문에 지방에 따라 독특하고 진한 맛이 났다. 이렇게 담근 김치를 다음 해 여름까지 먹곤 했다.
임경락은 ((흥부처럼 먹어라, 그래야 병 안 난다/2010/농민신문사)) 에서 김장에 대해서 이렇게 한마디 한다.
요즘은 김장하는 일은 어떻게든 간소하게 하려고 하고, 될 수 있으면 친정에서 얻어다 먹지 본인은 안 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님들이나 할머님들이 젊어서 김장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였으니 오히려 젊은이들이 맡아서 하거나 담가서 갖다 드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보통 집안 어른들에게 요리를 배우면 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다. 김치란 매우면 매운 대로 그만의 맛이 있고, 짜면 짠 대로 그만의 맛이 있다. 김치의 신맛은 신맛대로 맛있고, 단맛도 있으며 고들빼기김치같이 쓴맛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김치는 어떻게 담가야 맛있을까 해서 알아봤다. 제대로 기른 배추를 기준으로 소금을 절일 때는 언제나 살짝 절인다. 그리고 씻을 때 배추가 다시 싱싱하게 살아나면 그때 소금을 살짝 뿌려 다시 숨을 죽인다. 이렇게 웃소금을 더 넣어서 짠맛이 나도 짠 김치 그대로 맛있고 배추에서 나온 맛있는 국물이 많아져 싱싱하다고 한다. 김치 담글 때 고춧가루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저 빨갛게 버무리는데, 모든 채소는 양념을 많이 넣을수록 물러지게 되어있다. 고춧가루도 너무 많이 넣으면 무 배추가 물러져서 싱싱한 맛을 잃는다. 젓갈도 많이 넣을수록 김치가 빨리 물러진다. 가능하면 일찍 먹을 김치에만 젓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가끔 만나는 맛없는 김치맛의 이유가 고춧가루와 젓갈일 수가 있다. 김치 담는 용기는 항아리가 좋고 이를 땅속에 묻어야 제일이다. 날씨가 약간 따뜻할 때 김치를 담가 그 후 일주일 정도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지면 맛이 제일 좋다. 요즘은 항아리 대신 김치통, 땅속 대신 김치 냉장고가 대부분이다.
나는 익은 김치를 좋아한다. 잘 익은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는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가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김치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들이 있었다. 생김치를 계속 먹으려면 매일 김치를 담는 수밖에 없다. 그 일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익은 김치는 한 번 담가놓으면 떨어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 내가 아는 오리고기 식당은 매일 김치를 담가서 내놓는다. 손님들이 오리고기보다 김치 먹으려고 줄을 선다. 나는 그 집에 가서도 익은 김치를 따로 주문한다. 김치 담그는 솜씨가 좋아서인지 생김치나 익은 김치나 똑같이 맛이 좋다.
주위에 보면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꼭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김치를 좋아하도록 엄마의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우리의 건강이 매일 먹는 통 곡물밥, 전통 된장국과 유기농 김치와 아주 밀접함을 느꼈다. 좋은 음식 재료로 만든 한식이 내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여기 김치에 관한 시 한 편을 소개한다.
*김치
김기덕
하얀 속살 뽀드득 씻은 알몸의 여리던 가슴
예리한 칼끝에 쪼개져 쑤셔 박히던 짜디짠 소금 물통
간이 배어 적당히 세상맛이 들고
뻣뻣하던 줄기 부들부들 연해지거들랑
고춧가루 푼 비린 젓갈에 묻혀
숨 막히는 항아리 속 부글부글 끓어도 함께 끌어안고
사근사근 익어 한 겹 한 겹 쓰린 살을 비비며
새콤달콤 살다가 군내 나기 전에 빈 항아리만 남기고 가는 거라고
사시사철 밥상 위에 올라 삶의 입맛을 돋운다.
김만조, 이규태/((김치 견문록))/ 디자인 하우스/2008
김기덕((김치))/월간/시문학/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