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과 대체 불가능함의 관계
대체되고 싶지 않은 마음,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공통된 욕구가 아닐까. 좋은 가족, 좋은 애인, 좋은 친구를 넘어 one & only one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욕구는 회사에서도 지속된다.
처음 이 감정을 느낀 건 스물셋의 여름이었다. 첫 인턴이 끝나기 한 달 전, 내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사람을 뽑을 공고를 냈다.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이 나간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괜히 섭섭했다. 심지어 같이 더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고사하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건 나였다. 그럼에도 내 자리가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 다른 사람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그 당시에는 나보다 좋은 사람을 찾지 못했다며 회사에서 채용을 포기했다. 팀장님과 사수님이 면접을 본 뒤 '00님이 역시 1등이야!'라고 외치며 들어오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안도감'과 '자괴감' 두 가지였다. 같이 일하고자 할 땐 거절해 놓고서는 자리가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고, 동시에 누군가의 불합격에 이런 이기적인 마음을 품는 다는데 자괴감이 들었다.
어찌 됐건 당시에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알게 됐다. 경쟁사회 속 참가자 1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회사에서는 누구의 자리나 대체 가능해야 한다. 사람의 공백이 생겼다고 회사가 망하면 애초에 비즈니스 모델 설계가 잘못된 거다.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그 당시의 내 자리도 누군가 대신하고 있다. 얼마 전 그 당시 관리하던 sns에 들어갔는데 나의 흔적이 남겨 있었다. 하지만 현 담당자의 색채가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렇다. 나는 완벽히 대체되었다. 회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란 믿음도, 내가 없으면 회사가 굴러가지 않을 거란 자만도 모두 완벽한 착각이었다. 다 굴러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여전히 회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길 원한다. 대단한 노예근성인 걸까? 아니면 아직도 현실을 깨닫지 못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리'는 대체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체 불가능함의 정의를 새롭게 해 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나를 대체 불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게 뭘지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순 취업을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스펙 쌓기이다. 나 또한 취업 전 HSK6급과 토익 900점 같은 점수가 나의 성실을 증명해줄 거라고 믿었다. 다양한 대외활동과 인턴 경험으로는 역량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거라 자부했다. 물론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 하지만 여긴 무한 경쟁사회 아니었던가. 이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 역시 많기 때문에 또 한 번의 one of them이 될 뿐 여전히 대체 불가능함의 영역으로는 가지 못했다.
이렇듯 생각이 '스펙'에만 머물러 있으면 넥스트 스텝으로 가질 못한다. 더 나아가기 위해 뭘 해야 할지 모른다. 토익 900점을 따고도 950점, 990점에 집착하게 된다. 대외활동이나 인턴도 한번 더 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걸로도 부족하면 디자인이나 코딩 같은 기술을 배워볼까도 싶다. 하지만 AI가 작곡까지 하는 세상에서 기술 또한 충분히 대체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대체 불가능함을 만들어준단 말인가.
짧은 경험이지만 나름 찾은 답은 '존재감'이었다. 팀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팀원뿐만 아니라 다른 팀 사람들이 나에게만 물어보는 영역이 있는가? 특별히 신임받는 분야가 있다면 존재감이 생기는데, 사실 거의 태도에서 기인된다. 하나를 하더라도 딱 1만큼만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이상을 해내는 사람이 있다. 사실 이런 존재감은 부재할 때 더 뚜렷해진다. 있으나 마나 한 대체 가능한 존재였는지, 아니면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는지 말이다.
누구의 자리든 대체 가능하다. 하지만 존재감은 그럴 수 없다. 그게 사람의 영향력이고 온기이다. 어쨌든 일은 사람이 하는 거니 말이다.
그래서 조금 말을 바꾸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과도 같다. 스펙, 기술로 우열을 따지면 끝도 없다. 하지만 내가 있던 자리에 확실한 존재감을 남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내가 없어도 흔적이 남을 만한 일들을 벌려야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먼저 나서서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뜯어고친다면? 그게 팀 전반에 사용된다면? 내가 없더라도 그 시스템은 유지될 것이다. 새로운 B2B 계약을 체결한다면? 내가 없더라도 지속적인 매출은 계속 들어올 것이다. 이런 형태로 곳곳에 존재감을 남기는 거다. 자리는 대체될 테지만 계속 회자되며 영향력은 남아있을 것이다.
매년 업무 리뷰를 작성한다. 이때 기본 업무는 절대 적지 않는다. 기본 업무라고 하면 흔히 '운영성 업무'라고 한다. 팀이 있으면 개개인의 롤이 있다. 보통 그 롤이란 '꼭 해야 할 일'을 말한다. 안 하면 일에 지장이 있는 업무들이 있다. 업무의 기반이 되는 일들이기 때문에 해내야만 한다. 하지만 한다고 칭찬받지는 않는다. 그 직무를 맡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난이도가 낮게 느껴지고, 그만큼 일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숙련자가 되는 것이다.
숙련자가 되면 업무 시간 중 여유가 생기게 된다. 이때 여유를 즐기고 그 자리에 머문다면 숙련자의 상태로 남게 된다. 여기서 차이를 만드는 건 '프로젝트성 업무'이다. 주어진 일 외에도 스스로 미션을 만들어 내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숙련자에서 전문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보통 개인 성과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난다. 운영성 업무가 포함된 기본을 '잘' 하는 건 기본이고, 프로젝트성 업무로 낸 성과까지 있어야 진짜 존재감이 나타난다. 업무 리뷰도 늘 이렇게 시작한다. '기본 000 업무 외에도 1) 000 2) 000 3) 000의 성과를 냈습니다.'
사실 가끔 현타가 올 때도 있다. 솔직히 기본 업무만 잘해도 회사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나만의 일과 영역을 만드려고 노력한 덕분에 어느 조직에서든 계속 같이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고, 후에 다시 연락이 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뛰어난 능력이나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다. 맡은 기본은 충실히 행하고, 플러스 알파로 '내 것'을 만들려는 시도가 전체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는 곧 나만의 존재감과 영향력으로 이어졌다.
자리는 대체되지만 잔상은 계속된다. 마돈나의 자리는 이미 몇 세대에 걸쳐 여러 가수들이 대체했다. 그럼에도 '마돈나'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지울 수 없다. 아무리 팀 쿡이 애플의 이익 창출에 기여하고 있더라도, '잡스'라는 두 글자가 주는 압도감을 이길 순 없다. '이효리' 또한 노래나 춤으로 한국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순 없지만, 계속해서 가요계는 물론 방송 전반적으로 영향력이 큰 존재이다.
결국 나만의 존재감을 만들어야 한다. 회사의 특성상 온전한 내 것이라고 할만한 것을 만들어내긴 어렵다. 어쨌든 회사의 콘텐츠, 자본, 네트워킹 덕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없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은 기어코 만들어 내야만 한다. 평생직장도 아닌데 뭐하러 그런 주인의식을 가지는 건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회사에 목숨과 영혼을 걸라는 게 아니다. 나와 회사는 서로 레버리지 하는 사이이다. 회사에 있는 동안 자본을 활용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 여기서 또 자문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다니는 곳은 대체 가능한 회사인가?'
회사도 개인을 선택하겠지만, 개인도 회사를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회사에 주인 의식을 가지는 대신, 커리어에 주인 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지금 내게 도움이 되는 곳과 아닌 곳을 구별하게 된다. 내 커리어의 주인이 된다면, 회사는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일할 수 있다. 회사의 성장은 덤일 뿐이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 살아가며 나만의 존재감을 만들자.
여전히 배울 게 너무 많은 주니어지만, 일에 대한 태도는 늘 진지한 편이다. 이왕 직장인이 된 김에 제대로 일 하고, 제대로 존재감 남기고, 제대로 인정받는 일꾼이 되겠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굴러가겠지. 하지만 날 잊지는 못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