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동업하는 사이를 꿈꾸며
책 <레버리지>를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저자가 반복적으로 말하는 '노예'같은 삶이 바로 '나'의 세상이었다. 심지어 그 삶을 즐기고 있던 장본인이었다.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좀 더 잘해보고 싶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이고,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강의도 듣고 책을 읽었다. 그러고서 나는 이 시대의 일꾼임이 틀림없다며 자부했다.
하지만 책을 보다 보니 커다란 지배구조에 예속되어 있는지도 모은채 살아가는 사람이 나 같아서 비참해졌다. 잠시 현타가 왔지만 이내 곧 깨달았다. 어차피 지금 당장 바꿀 순 없는 건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고민 끝에 결심했다. 어차피 노예가 될 거라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노예가 되겠다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실컷 레버리지 당해주겠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회사에서 건질 수 있는 걸 최대한 뽑아내겠다.
생각해보면 회사에 다니지 않고서 그냥 '나'로 시작했다면 하지 못할 일이 많았다. 회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단연 '돈'이다. 사무실과 기기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애플을 선호해서, 입사 후 처음으로 맥북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코로나 이후로 재택근무도 하고 있어 거의 개인 노트북처럼 활용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돈을 들이지 않고 사업을 할 수 있다. 매출 부서라 돈을 크게 쓸 일은 없지만, 가끔 새로운 기회가 올 때면 생각한다. '아싸! 회사 돈으로 사업한다!' 이건 우리 본부장님이 알려주신 마인드이기도 하다.
다음은 '동료'이다. 회사 밖에서는 큰 영향력이 있지 않은 이상 사람을 모으기 힘들다. 반면 회사에는 기본적으로 채용 시스템이 있다. 적으면 한번, 많으면 서너 번의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즉, 내가 사람을 모으지 않아도 나름의 기준을 거쳐 들어온 인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능력도 좋고, 인성도 좋고, 딱 맞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 하지만 같은 레벨이 아닌 이상 외부에서는 더 힘들다. 훗날 함께 일한 동료로부터 형성되는 네트워크도 무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콘텐츠'를 빼놓을 수 없다. 초기 스타트업을 제외하고는 어느 회사든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업계 내의 영향력과 지위는 일하는 나의 무기가 된다. 이전에 거쳐간 사람들이 만든 역사를 익히면, 혼자일 때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즉, 회사의 콘텐츠와 스토리를 등에 업고 개인이라면 실현하기 어려운 일을 펼칠 수 있다. 퇴사하면 결국 다 사라지는 허상이지 않으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실물만이 가치 있는 건 아니다. 더 넓은 세계를 보고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나의 세상이 한층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와 나는 서로 레버리지 하는 사이다. 그냥 일꾼을 넘어서 동업하는 관계가 되고 싶다. 나는 회사로부터 자본을 끌어와 하고 싶은 일을 펼치고, 회사는 나에게 월급을 주고 그 몇 배의 매출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어느 날 이 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만두거나 내쳐지는 상황이 될 거란 건 안다. 훗날 주니어 시절의 기록을 보며 가소롭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배워나갈 뿐이다.
그러니 저도 회사 좀 레버리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