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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평언저리 Oct 10. 2022

영화에 별점 매기는 게 어때서?

한 평론가는 영화에 별점 매기기를 적극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별점이 '그 영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한다'면서 맹렬히 비판했다. 나 역시 별점 문화에 대해 한편으로는 재밌어 하고 또 한편으로는 찝찝하다. 영화에 주는 별점은 곧 그 영화를 이해한 만큼 나에게 주는 별이라고 생각한다. 별을 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두 가지다. 이 영화가 정말 내 마음에 (안) 들었나, 혹은 내가 이만큼 밖에 이해를 못 해서 이것밖에 못 주나? 별점은 영화 쪽을 향하는 동시에 나를 향한다.


  왓챠피디아(Watchapedia)는 자신이 본 영화에 별점을 주고 평을 작성하기에 알맞은 시스템이다. 내가 이 어플을 즐겨쓰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러나 별점 혹은 한줄 평, 이동진 평론가의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영화에 주었던 별점을 아무 때나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지루하게 본 영화가 오늘은 흥미롭고 내일엔 인생 영화가 될 수 있다. 이 반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영화도 있다. 나에게 <셀레브레이션>은 후자다. 처음 봤을 때의 새로움과 충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N번을 감상하면서 드러난 몇 가지 단점이 별점을 깎을 명분으로 충분했다. 나에게 <하나 그리고 둘>은 전자다. 집에서 봤을 때는 중간에 화장실 가고 물을 마시고 하다보니 이 진득한 영화에 집중하기가 벅찼다. 에무시네마에서 세 번째로 감상했을 때 나는 단전에서 올라오는 울컥함을 느꼈다. 인물들의 인생사를 지켜보다가 마지막에는 문득 내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걸작. 첫 감상 때 준 별 세 개에서 단번에 만점으로 올렸다(별 다섯 개가 만점이다).


  이렇게 한 영화를 몇 번 씩 보면 첫 감상 때의 소감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영화를 한 번 본 뒤로 접한 적이 없으면 첫 감상에 내린 평가가 그 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전부가 된다. 좋은 영화는 몇 번을 봐도 그때마다 다르게 보인다. <하나 그리고 둘>을 처음 보고 말았다면 그 영화에 재미 없다는 꼬리표를 평생 붙였겠지만, 지금은 이 영화를 좁은 식견으로라도 만천하에 알리고 싶다. 설령 다음 번에 재감상할 때는 그 전의 감동을 못 느끼더라도.

 

  세상에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가 아닌, 흥미로운 영화와 지루한 영화만이 있다고 생각한다(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변용). 전자의 이분법보다 나는 후자의 이분법을 선호한다. 전자는 인간 마음에 내재된 편견이 작동한 탓에 그 영화를 단정하기 쉽다(이 영화를 더는 안 볼 가능성도 크다). 반면 흥미로움과 지루함은 보는 사람의 감정과 체력에 따라 현저히 다르다. 택배 상하차를 뛰고 누가 벨기에 산(産) 다큐멘터리를 멀쩡히 볼 수 있을까. (여기서 하나 짚고 가자면, 지루하기 때문에 나쁜 영화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그렇게 표현해야만 했던 감독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혹은 보는 사람의 감정과 체력이 안 받쳐줬기 때문일 수도) 기쁜 날에 다시 본 인생 영화가 재미없어서 기분이 안 좋아질 수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핸드폰을 켜 그 영화의 별점을 올리거나 내린다.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감독의 의견에 동의 안 한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이 좋다. 한 영화에 대한 변심을 나는 별점으로 드러낸다.


  별점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한다는 말은, 아직 안 본 영화의 감상 여부를 평론가가 준 별점에 좌지우지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 만약 그렇다면 평론가의 점수를 보지 말고 먼저 영화관을 가자(표값이 아깝다면 할 말은 없다...). 그 영화가 주는 매력이 나를 붙잡는다면 그만큼의 별점을 주자. 그리고 그 영화가 계속 생각나고 다시 보고싶다면 다시 보자. 그때마다 별점은 바꾸면 된다. 한 영화에 대한 별점은 얼마든지 유동적일 수 있다. 별점을 주는 건 영화를 본 사람 마음이니까. 사람 마음은 언제나 바뀌지 않는가.



배경 사진 출처 : criteri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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