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대감의 꿈
“뭐 이런 꿈이 다 있어?”
옛날, 아주 먼 옛날 일이다. 동해 바다에는 무려 700년을 살아온 멸치 대감이 있었는데,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갑자기 하늘 위로 휙, 올라갔다가 땅으로 뚝 떨어졌단 말이지. 그다음엔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눈이 갑자기 펑펑 쏟아지는 거야. 게다가 땀이 뻘뻘 나게 덥더니,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추워졌어. 그러고서는 잠에서 깼다네.”
날이 새자마자 대감은 가자미를 불러 꿈 이야기를 했다. 가자미는 ‘서해바다 망둥이 할멈이 꿈 풀이를 잘한다’며 데리고 오겠다고 말했다. 며칠 후 가자미가 망둥이 할멈과 돌아왔다.
“오호라, 이는 필시 용 꿈이라네!”
망둥이 할멈은 무릎을 탁 치며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일은 용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며, 용이 조화를 부리면 눈이 내리고, 그러다 보면 더웠다 추웠다 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겠냐.’고 그럴싸하게 꿈풀이를 했다.
‘흐흐, 내가 용이 된단 말이지?’
기분이 몹시 좋아진 멸치 대감은 자신을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은 가자미는 까맣게 잊은 채 ‘망둥이 할멈을 위해 진수성찬을 내오라.’고 명령했다. 그걸 가만히 보고있던 가자미는 기분이 상해서는 입을 삐죽 대며 말했다.
“용이 된다고? 웃기는 소리, 그건 어부에게 잡혀 죽는 꿈이야!”
그 말을 들은 멸치 대감은 언성을 높이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가자미가 대꾸하기를,
“하늘로 올라갔다가 땅으로 내려왔다는 건, 낚싯줄에 걸려 휙 올라갔다가 땅으로 떨어진 걸 말하는 거야. 눈이 내렸다는 건 반찬에 쓰려고 석쇠에 올려 구우면서 소금을 뿌렸다는 말이지. 더웠다 추웠다 한건 잘 익으라고 부채질한 거 아니겠어?”
대감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가자미의 뺨을 쳤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가자미의 눈이 한쪽으로 몰렸다. 그 모습을 본 낙지와 꼴뚜기는 깜짝 놀라 슬그머니 눈을 빼서 꽁무니에 감췄다.
이 광경을 보고 박장대소하던 새우는 허리가 꼬부라졌고, 망둥이 할멈은 펄쩍펄쩍 뛰어 집으로 도망쳤다. 망둥이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니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 한국 전래 동화 중 ‘멸치 대감의 꿈’ -
“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누군가가 내가 잘해준 것을 기억하지 못할 때, 혹은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호의를 베풀었는데, 오히려 나에게 불쾌함만 줄 때 우리는 서운함이나 섭섭함을 느낀다. 가슴은 텅 빈 것처럼 공허해지고, 이내 기대했던 마음은 실망으로 가득 차오른다.
멸치 대감의 꿈 이야기를 듣고 망둥이 할멈은 ‘용이 될 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같은 꿈을 가지고 가자미는 ‘어부에게 잡혀 죽는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왜 정 반대의 꿈 풀이를 한 걸까? 서운했던 거다.
‘이는 필시 용 꿈이라네!’ 말해준 망둥이 할멈에게 진수성찬을 내리는 멸치 대감의 모습을 보며, 가자미는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부탁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망둥이 할멈을 모시고 왔으니까, 그 고생을 한 자신에게도 분명 융숭한 대접이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대접은커녕 ‘고맙다’ 말 한마디도 없던 멸치 대감을 보며 가자미는 서운함을 넘어 분노까지 느꼈던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꿈은 죽을 꿈’이라는 식의 꿈 풀이를 말했을 리 없으니 말이다.
어젯밤 꾼 꿈을 통해 미래를 알고 싶어 했던 멸치 대감처럼, 우리 역시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이리저리 애써가며 미리 보려 애쓴다. 다가 올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태도는 분명 지혜로운 태도다.
하지만, 미래에만 몰두하다 보면 기꺼이 먼 서해 바다까지 가서 망둥이 할멈을 모시고 온 가자미처럼 내게 선의를 베푸는 누군가를 섭섭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먼 저편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뿐만 아니라, 지난날 누군가가 내게 베푼 어떤 호의를 떠올릴 수 있는 기억도 필요하다.
프랑스혁명 운동가였던 Jean Baptiste Mathieu가 말한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이란 마음에 새겨둔 기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