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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Feb 17. 2022

똑같으면 똑같다.

개와 고양이


“아이고, 몹시 가엽구나... 저기, 이 잉어 얼마요?”


한 마을에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마음씨 착한 할머니가 살았다. 하루는 강에 나갔다가 어부에게 잡힌 큰 잉어를 보았다. 할머니는 눈물 흘리며 눈을 껌뻑 거리는 잉어가 불쌍했다.


   결국 할머니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진 돈을 다 털어 잉어를 사서 강에 풀어주었다. 녀석은  감사의 표시를 하려는 듯 이리저리 춤추듯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물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나는 게 아닌가?

“할머니, 정말로 고맙습니다. 사실 나는 동해 용왕의 막내아들입니다. 나를 구해주신 대가로 이 용궁 구슬을 드리겠습니다.”

   뽀얀 얼굴의 동자로 변한 잉어는 자신이 용왕의 아들이라며 작은 아이 주먹만 한 파란 구슬 하나를 내밀었다. 이 구슬은 보통 구슬이 아니었다.


   손으로 쓰윽 비비며 ‘집!’이라고 말하면 커다란 기와집이 생겼고, 다시 비비며 ‘쌀!’이라고 말하면 만석꾼 부럽지 않은 쌀가마니가 창고에 그득하게 되었다. 용궁 구슬 덕분에 할머니는 부자가 되었다.

“여기 신기한 구슬이 있다면서요? 구경 좀 할 수 있나?”


   옆 마을에 사는 욕심쟁이 할머니가 소문을 듣고 마음씨 착한 할머니네 집에 찾아왔다. ‘구슬 좀 보자’는 말에 착한 할머니는 용궁 구슬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욕심쟁이 할머니는 구슬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몰래 가짜 구슬과 진짜를 바꿔치기하는 게 아닌가?

“아유, 내 정신 좀 봐! 막내아들이 오늘 우리 집에 온다고 했는데!”

   욕심쟁이 할머니는 진짜 구슬을 감추고서는 달아났다. 그리고 그날부터 착한 할머니 집은 다시 조금씩 가난해졌지만, 마음씨 좋은 할머니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어느 날 이 모습을 지켜보던 고양이가 개에게 말을 꺼냈다.

“개야, 아무래도 저번에 그 할머니가 수상하지 않니?”

“그러게, 고양이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둘은 욕심쟁이 할머니 집으로 가서 진짜 용궁 구슬을 가지고 오기로 했다.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옆 마을 욕심쟁이 할머니 집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개와 고양이가 찾는 구슬은 보이지 않았다.

“하, 도대체 구슬은 어디 있는 거지? 고양이야, 우리 그냥 집으로 가자.”

“아휴, 이놈의 개가 뭐라는 거람. 잠깐만 기다려봐.”

   고양이는 헛간에 냉큼 들어가 우두머리 쥐를 붙잡고는 ‘용궁 구슬을 찾아내 오지 않으면, 모두 잡아먹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쥐들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져 집 이곳저곳을 뒤지더니, 파랗고 큼지막한 구슬을 가지고 왔다. 분명 착한 할머니가 받았던 용궁 구슬이었다.

“와, 고양이야! 우리가 구슬을 찾았어.”

“그래, 개야. 이제 우리 얼른 가서 할머니에게 구슬을 드리자!”

   아까 만났던 강가에 도착하자, 고양이는 입에 구슬을 물고 개에게 다시 업혔다. 한참 강을 건너던 개는 고양이가 혹시 구슬을 놓칠까 싶어 ‘구슬 잘 물고 있냐?’고 물었다.


“아이 참, 구슬 물고 있는대 자꾸 말 시키면 ㅇ…”


   입에 구슬을 물고 있어서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인데, 개는 그것도 모르고 초조한 마음에 자꾸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하는 수 없이 대답을 하기 위해 고양이가 입을 열자, 구슬은 강물로 빠지고 말았다.


“아휴, 몰라! 저까짓 구슬 알게 뭐람?”

   개는 툴툴거리며 집으로 혼자 돌아가 버렸고, 고양이는 어쩔 줄 몰라 날이 저물도록 강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꼬르륵’ 하고 배꼽시계 우는 바로 그때, 고양이는 물에 떠밀려온 커다란 물고기를 발견했다.

“아유, 맛있겠다!”

   너무나 배가 고팠던 고양이는 단숨에 물고기를 콱 물고는 뭍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물고기를 한껏 문 고양이의 이빨에 뭔가 딱딱한 것이 부딪히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보니 푸른빛을 내는 그건 분명 용궁 구슬이었다.

   구슬을 가지고 온 고양이 덕분에 착한 할머니는 다시 부자가 되었고, 고마운 마음에 할머니는 고양이를 집 안에서 애지중지하며 기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고양이는 집 안에서, 개는 집 밖에서 서로 좋지 않은 사이가 되어 산다고 한다.

- 한국 전래동화 중 ‘개와 고양이’ -


“둘이 똑같으니까 싸우지!”

   다른 남매에 비하면 사이가 좋았던 나와 동생이었지만, 이따금씩 다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회초리를 가져오라’하시며 꼭 한 마디를 하셨는데, 나와 동생이 똑같기 때문에 다툰다는 말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왜 재랑 똑같은데?’ ‘아닌데, 쟤가 더 잘못했는데?’ 생각하며 씩씩대기 일 수였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둘이 똑같으니까 싸우지.’라는 말의 의미를 말이다.

   서로의 입장은 서로 고려하지 않고, 나만 생각했다. 양보 대신 내 고집만 부리니 결국 싸우고, 다투게 된 거다. 나와 동생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다른 모습이었다면, 싸우고 사이가 나빠질 일은 애초에 없었을 거다.

   개와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다. 착한 주인 할머니의 구슬을 되찾아 오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그걸 찾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개는 고양이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입에 구슬을 문 고양이에게 자꾸 ‘구슬 잘 물고 있냐?’며 말을 시킨 것부터 시작해서, 그 물음에 대답하다 고양이가 구슬을 강물에 빠뜨렸을 때 버럭 화를 내며 집으로 혼자 돌아간 것까지. 개는 고양이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좋을 대로 행동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는 잘못이 없는가 하고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다. 강물에 빠진 구슬을 찾아 집으로 온 건 고양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과정을 고양이가 혼자서 다 해낸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할머니에게 ‘개도 구슬을 찾느라 고생했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마음 착한 할머니는 분명 개에게도 고양이에게 한 것만큼 감사의 표시를 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개가 고양이를 미워할 일은 없었을 거다. 그럼 개와 고양이의 사이가 나빠질 일도 없었겠지.

   자기 입장만 고수하는 사람 앞에서 양보하고, 뜻을 굽히는 건 미련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Dale H. Carnagey의 말처럼, 싸움을 해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양보한다면 기대한 것 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이전에나, 지금도 우리는 똑같기 때문에 싸운다. 미래에도 어쩌면 똑같기 때문에 싸우고 있을지 모른다. 이 다툼의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달라지는 것,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뿐이다. 똑같으면, 계속 똑같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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