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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Mar 03. 2022

떡 하나 주었다가 떡하니 죽지 않으려면

해님달님

* 잔인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빠, 엄마는 대체 언제 오실까? 나 배고파...”

“벌써 밖이 저렇게 깜깜한데 아직도 안 오신 걸 보면 오늘 많이 바쁘신가 봐.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산속 작은 초가집, 사이좋은 오누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진즉 엄마가 들어오셨을 시간인데, 아직 엄마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여... 여기 있습니다!”


   평소처럼 장터에서 떡을 판 아이들의 엄마는 산 고개를 넘다가 그만 호랑이를 만나고 말았다. 호랑이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배가 고프니 바구니에 담은 떡을 전부 다 내놓으라고 말했다.


   엄마는 ‘오죽 배고팠으면 고기만 먹는 호랑이가 떡을 달라고 할까’하는 생각에 호랑이가 불쌍했다. 망설임 없이 호랑이에게 떡을 바구니 채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 고개를 하나 더 넘자 저 앞에 뭐가 서 있었다. 아까 만난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마치 오누이의 엄마를 처음 만나는 것처럼 시치미를 뗐다. 흉측스럽게 삐죽삐죽 튀어나온 발톱을 꺼내며 ‘어멈, 가진 걸 다 내놓으면 순순히 보내드리지!’하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떡을 주었던 탓에 이제는 가진 옷을 전부 벗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잎사귀를 여럿 따서 간신히 몸을 가린 채 집을 향해 뛰어가는데, 또다시 호랑이가 나타났다. 시뻘건 입 사이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호랑이는 ‘팔 한 짝을 주면 보내주지!’하고 말했다.


   팔 하나로 어떻게 밥을 하고 떡을 파냐는 말에 호랑이는 그런 일은 팔 하나로 충분하지 않냐며 성을 내었고, ‘주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며 억지를 부렸다. 하는 수 없이 팔 하나를 내어 준 엄마는 그다음 고개에서 기다리고 있던 호랑이에게 나머지 팔 한쪽뿐 아니라, 다리 하나까지 내어주었다.


“그 남은 다리도 내게 주소!”


   다리 하나로 힘겹게 뛰어 집으로 향하던 엄마에게 호랑이는 또다시 나타나 입에 피를 묻힌 채로 남은 다리마저 달라고 요구했다. ‘다리 하나마저 가져가면 어떻게 집에 가냐’는 엄마의 물음에 ‘몸뚱이를 굴려 공처럼 굴러가라’고 대답하며 이번에도 호랑이는 우악스럽게 입을 쩍 벌리고 버텨 섰다.


   하는 수 없이 호랑이에게 두 팔과 다리 모두를 전부 내어준 어머니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에 힘든지도 모르고 열심히 몸을 굴렸다. 어느새 집 앞마당까지 왔는데, 거기 호랑이가 떡하니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을 생각했다면 집으로 오지 말았어야지, 낮에는 남자아이 잡아먹고, 밤에는 계집아이 잡아먹었소!”


   피로 얼룩진 호랑이의 이빨 사이에 끼어 있는 건 분명 떡을 팔아 아이들에게 입힌 설빔이었다. 호랑이의 말을 들은 엄마는 그만 원통함과 충격에 싸여 죽고 말았다. 오누이를 불쌍히 여긴 옥황상제는 낮에 잡아먹힌 오빠를 해로, 밤에 잡아먹힌 동생은 달로 만들어주었다.


- 한국 전래동화 ‘해님달님’ -



“저, 혹시 이것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제껏 지내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작게는 연필이나 지우개부터, 크게는 돈까지.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주며 산다.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연하다는 듯 더 큰 것을 요구하는 뻔뻔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선 넘는 파렴치함은 점점 커져 선의로 도움을 준 누군가의 삶에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두 남매의 엄마에게는 사실 호랑이에게 떡을 줄 의무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고픈 호랑이에게 떡을 주었다. 호랑이는 떡을 먹고 만족하지 못했다. 엄마의 옷은 물론 두 팔다리까지 먹어치우고, 거기에 모자라 엄마의 사랑스러운 두 남매까지 집어삼켰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빼앗아 놓고 나서도 오누이의 죽음을 마치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곧장 달려온 엄마의 잘못인 듯 이야기하는 호랑이의 모습은 악의 화신 그 자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부탁을 들어주는 일을 그 자체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움 주는 그 일을 나 자신까지 희생해가면서 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아프리카 태생의 작가 Bessie E. Head의 말처럼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파렴치한 모습으로 자꾸 요구하는 호랑이 같은 사람에게는 단호한 거절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떡 하나 주었다가 떡하니 죽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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