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된 효자
“내 걱정일랑 이제 하지 말거라. 늙고, 병들어 죽는 일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 아니겠니.”
“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아버지를 꼭 고치고 말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할 테니까 염려 마세요.”
옛날 어느 마을에 황 씨 성을 가진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한 황 씨는 한양에서 임금님을 가까이 모셨으나, 나이 드신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벼슬에서 물러나 깊은 산골 아버지가 계신 마을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내를 사랑하는 건 물론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부터 먼저 생각하는 그의 모습을 칭찬하며 ‘황 효자’라고 불렀다. 그런 사람들의 말이 무색하게도, 어느 날 아버지는 깊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여기가 김 의원 댁 맞습니까?”
황 효자는 산 두 개 넘어 산다는 김 의원을 찾아갔다. 이제까지 산삼이며, 녹용까지, 귀한 약재들이 모두 소용이 없었지만, 들리는 소문에 김 의원은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했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황 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산 너머 사는 그를 찾아갔다.
“망설이지 마시고 얼른 말해주세요, 뭐든 하겠습니다!”
김 의원은 용하다는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황 효자의 말을 듣고는 한참을 머뭇머뭇하고 있었다. 황 효자는 집에서 앓고 계신 아버지가 눈에 아른거렸는지, 어서 말해달라며 김 의원을 연신 보챘다.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크게 쉬더니, 김 의원이 말을 꺼냈다.
“아버님이 누런 개의 간 천 개를 하루에 하나씩, 천일 동안 달여서 드실 수 있도록 하시면 됩니다. 우선 시작하면 단 하루도 걸러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천일을 드셔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단 하루도 걸러서는 안 됩니다.”
김 의원의 처방을 듣고 황 효자는 그만 눈앞에 아득해졌다. 그냥 개도 아니고, 누런 개의 간을 어디서 천 개나, 그것도 매일 구해서 달여 드린단 말인가? 하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고칠 방도가 없으니, 황 효자는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저 앞에 김 의원을 만나기 위해 넘었던 큰 산이 보인다. 저렇게 큰 산을 넘으며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랴’ 생각했던 그였지만, 이제 넘어온 큰 산보다 더 큰 산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하여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이보시오, 당신에게 마침 이 책이 필요할 것 같소만.”
바로 그때였다. 새카만 옷을 입고, 큰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황 효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낡은 책 한 권을 황 효자에게 내밀며, 여기 적힌 주문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주문을 외면 호랑이로 변할 수 있다면서 얼른 천 개의 간을 모아 아버지를 살려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호랑이라니, 변신이라니! 나는 그런 요망한 방법 따위 사용하지 않겠소!”
황 효자는 처음에는 남자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집에 계신 아버지를 하루라도 빨리 일으키기 위해서 ‘어떤 방법도 불사하겠다.’ 말하지 않았던가? 잠시 생각하던 그는 ‘책이 사라지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으니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남자의 말을 새기며 품에 책을 넣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처음 며칠은 간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워낙 효자로 소문난 그였기에,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네 사람들이 누런 개를 잡아다가 황 효자 네로 가져다주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그리고 2주를 넘어가자, 황 효자네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뚝 끊겼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서 무한정으로 누런 개를 가져다줄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황 효자는 아내와 함께 옆 마을, 그 옆 마을에 수소문해보았으나, 그냥 개도 아니고, 누런 개를 콕 집어 구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점점 구해놓은 간은 떨어져 갔고, 마지막 남은 간마저 다 달여 아버지께 먹이고 나자, 황 효자와 아내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보, 걱정 말아요. 내게 좋은 수가 있어요.”
황 효자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서재 한편에 처박힌 책을 꺼냈다. 삿갓을 쓴 남자가 준 그 책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황 효자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급하게 책장을 넘겨 ‘호랑이로 변신하는 주문’이 나와 있는 부분을 찾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황 효자는 ‘밖에 누런 개 몇 마리를 누가 갖다 놓았다’는 아내의 호들갑에 시치미를 떼며 일어났다. 마음 한쪽에선 남의 집 개를 잡아왔다는 죄책감이 일어났지만, 김 의원 말대로 거뜬히 일어나실 아버지 생각에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한 번만 더 하는 거야. 한 번만 더!”
이후 절대로 호랑이가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누런 개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결국 황 효자는 아버지와 아내가 잠든 틈을 타 그렇게 몇 번을 더 호랑이가 되어 누런 개의 간을 구해왔다.
“여보, 괜찮으세요?”
황 효자의 아내는 몇 번이고 간을 구해오는 남편이 대단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밤새 이리저리 고생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 효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 포악한 성격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만 했던 입에서는 어느새 담기도 어려운 욕지거리들이 튀어나왔다. 뿐만 아니라, 길 가는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는 건 예사요,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만 보면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남편이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황 효자의 아내는 밤이 되자 마지막 하나 남은 개의 간은 자신이 옆 동네 최 씨 아저씨 댁에서 받아오기로 했으니, 오늘 밤은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 효자는 마치 사나운 호랑이와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몇 번을 계속 말하게 하는 거야? 이 년이 정말!”
라며 사랑스러운 아내를 또 한 번 윽박질렀다. 그 모습을 본 황 효자의 아내는 마음속에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섰고, 남편의 뒤를 캐보기로 했다. 어느새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고 둥그런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나가는 황 효자를 따라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아내는 까딱하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품 안에서 빛바랜 책을 하나 꺼낸 남편이 무어라 중얼거리자, 집채만 한 호랑이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 요망한 책만 없으면 되겠지!”
호랑이로 변한 남편이 담장을 넘어 사라지자, 아내는 놀란 가슴을 누르며 한참을 생각한다. 잠시 후 마당에 널브러진 낡은 책을 주어다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불을 땐 아궁이에 불쏘시개인 양 집어넣었다. 마치 먹잇감을 집어삼키는 맹수의 아가리처럼 아궁이는 책을 집어삼켰다.
“어? 책이 어디 갔지?”
새벽이 되자, 호랑이로 변한 황 효자는 천 번째 누런 개를 물고 집으로 도착했다. 평소와 같이 마당에 개를 내동댕이친다. 무엇인가 찾는 듯하다.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것, 책이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황 효자가 물어온 천 번째 누런 개의 간은 아버지의 병을 싹 낫게 했지만, 사라진 아들 생각에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는 결국 죽고 말았다. 황 효자의 아내는 이 모든 것이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자책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 완전히 호랑이가 되어버린 황 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매일 마을을 서성이다가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그만 죽고 말았다. 그날 저잣거리 한 구석에는 커다란 호랑이 가죽이 보란 듯 걸려있었다고 한다.
- 한국 전래동화 중 ‘호랑이가 된 효자’ -
“뭐 어때, 일만 잘 풀리면 그만이지.”
목표한 바를 위해 무엇이든 할 기세로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목표를 위해 도전하는 모습이야 높이 사지만,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라는 식의 태도로 무엇이든 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숭고한 가치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건강을 되돌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한 황 효자의 의지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정말 무엇이든 다한 게 문제였다.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남의 집 개들을 함부로 해친 건 물론이고, 사랑하는 아내의 말에 폭언까지 일삼는 그의 모습은 호랑이 그 자체였다. 어쩌면, 황 효자는 책이 아궁이에 불탔을 때 호랑이로 변한 게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만 나으면 그만이지.’ 생각했을 때 이미 변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
독일의 철학자 Friedrich W. Nietzsche는 명분을 해치는 가장 비열한 방법은 잘못된 주장으로 명분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황 효자의 효도가 이와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효도라는 명분은 좋았지만, 결국 잘못된 방법으로 효도를 하려 했으니 말이다.
중요한 가치나, 목표를 위해 노력을 다하는 것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것 자체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치와 목표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태도는 분명 인간답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길 원하는 당신이, ‘알게 뭐람?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생각한다면, 그런 ‘그만이지’하는 마음은 이제 그만 두기 바란다. 이루고자 하는 일이 아무리 숭고한들, 방법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원하는 그 소중한 무언가를 스스로 짓밟는 꼴이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