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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Apr 07. 2022

기대기만 하면 기대할 수 없다.

이름 이야기

“무슨 일로 이 시간에 나를 찾아왔는고?”


옛날 탁샤실라(Taksasila, 지금의 파키스탄 간다라 지방에 위치한 도시)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승이 있었다. 그는 오백 명의 제자를 거느렸는데, 그중 ‘죄가 있다’라는 뜻의 바세(Base)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바세는 나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자기 이름이 거슬렸다. 왠지 좋지 않은 이름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 같았다. 결국 그는, 밤중에 스승을 찾아가 새 이름을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승은 빙그레 웃으며,


“그래, 자네가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좋은 이름을 찾거든 내게로 다시 찾아오게나. 그 이름을 자네의 이름으로 삼아주도록 하지.”


   하고 말했다. 바세는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보따리를 싸들고 길을 떠났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가 큰 성에 도착했을 때, 마침 성문이 활짝 열리더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이들이었다.


   곡소리를 내며 화장터로 향하는 그들을 빤히 보던 바세는 가까이 보이는 사람 하나를 붙잡고는 죽은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가 가르쳐 준 이름은 ‘수명이 길다’였다. 바세는 깜짝 놀라 말했다.


“이름이 ‘수명이 길다’인 사람도 죽습니까?”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사람은 이름이 ‘수명이 길다’든, ‘수명이 짧다’는 다 죽기 마련인 것을.”


   이후 성 안에 들어간 바세는 어느 집의 주인이 여자 노예 하나를 때리며 벌어온 돈을 자신에게 바치지 않았다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 남자에게 바세는 여자 노예의 이름을 물었다. 그녀의 이름은 ‘재물을 모으다’였다.


“이름이 ‘재물을 모으다’인 사람도 품삯을 바치지 못하는군요?”

“이보시오, 이름은 이름일 뿐이요.”


   깜짝 놀란 표정을 한 바세에게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여자 노예를 뒤로 하고 바세는 성 밖으로 나왔다. 길을 조금 더 걷다가 이리저리 서성이는 사람을 만났다. 바세는 그에게 다가가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은 ‘길을 알려주다’입니다.”


   바세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길을 알려주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길을 잃다니, 이것 참 이상한 것 아닌가? 그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길을 알려주다’는 말했다. 이름은 그냥 이름일 뿐이라고.


“그래, 돌아왔는가? 이제 그대를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지 말해 보거라.”

“스승님, 저는 ‘바세’로 남겠습니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스승은 그의 말을 듣고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이름이 ‘수명이 길다’인 자도 죽고, 이름이 ‘재물을 모으다’인 사람은 가난하다네. ‘길을 알려주다’도 자기 길을 잃고 헤매니, ‘죄가 있다’는 돌아와서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네.”


- 고대 인도 설화집 자타카 중 ‘이름 이야기’ -


“이제부터 내 인생은 꽃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 한다. 현대인에게 그건 명문 대학이나, 대기업 같은 것들이다. 고대 설화 속 주인공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세가 자기 자리를 떠난 이유는 ‘좋은 이름’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기가 가진 ‘죄가 있다’라는 이름 대신 좋은 이름을 얻으면 나쁜 일에서 벗어나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문 대학이나 대기업이 그 자체로는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것처럼, 좋은 이름도 역시 그 자체로는 이름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좋은 이름도, 명문 대학도, 대기업도 그것 자체로는 그 이상의 기댈 무엇이 되어주지 않는다.


   로마의 역사가였던 Cornelius Nepos가 말했던 것처럼, 나의 운명과 나의 미래를 결정짓고 만드는 것은 내 삶을 책임져 줄 수 있을 것 같은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우리는 각자가 자기의 손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만든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억하라. 제 아무리 대단하고, 든든해 보일지라도, 거기에 무조건 기대기만 해서는 좋은 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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