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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Jun 23. 2022

해 보지 않으면 해 보지 못한다

돼지가 된 성자

“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줄로 알고, 내 말에 따르게.”


인도 어느 마을에 덕망 높은 성자가 살았다. 여느 날처럼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가부좌를 틀고 고요하게 명상을 하던 그는 무엇인가 본 듯 흠칫 놀라 눈을 번쩍 뜨고는, 큰 소리로 제자들을 불렀다.


“스승님, 저희가 어떻게 그런 짓을...”

“어허,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네.”


   제자들은 스승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말인즉, 성자가 명상을 하던 중, 다음 생애에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를 보았는데, 하필 그게 돼지였다는 거다. 인도 사람들은 돼지를 불결한 짐승 취급하는 지라, 성자는 그 환상을 보고 몹시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제자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죽으면 저기 저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검은 암퇘지의 네 번째 새끼로 태어날 걸세. 이마를 보면 붉고 커다란 점이 있을 테니, 알아보기도 쉬울 게야. 돼지로 사는 건 상상도 하기  싫지만, 운명인 걸 어찌하겠는가? 하지만, 돼지로 사는 건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겠으니, 자네들은 날카로운 칼을 가져와 돼지로 다시 태어난 나를 찔러 죽이게. 망설이지 말고, 단번에 해야 해!”


   계속되는 만류에도 ‘반드시 죽여 달라’고 신신당부하는 스승의 말을 못 이긴 제자들은 모두 엉엉 울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과연 며칠 후 성자는 자신이 수행을 하던 나무 밑에서 평소와 같이 가부좌를 튼 채로 명을 달리했다.


   처음에는 스승의 말을 차마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었지만, 사흘째 되던 날 검은 암퇘지가 여덟 마리의 새끼 돼지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돼지치기의 집으로 달려가 물었다.


“이보시오, 여기 검은 암퇘지가 새끼를 낳았다는데, 맞소?”


   갑자기 찾아와 ‘돼지가 새끼를 낳았냐’고 묻는 남자들의 말에 돼지치기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꾸했다. 그리고 성자의 수제자였던 이가 돼지우리를 들여다보니, 과연 이마에 크고 붉은 반점이 있는 새끼 돼지 한 마리가 어미와 따로 떨어져 제자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스승님. 과연 말씀대로 돼지가 되셨군요. 그러면 저희는 말씀하신 대로 더 늦기 전에 스승님을 편히 보내드리..."


   수제자의 가슴팍에서 날카로운 단도가 나오는 그 순간이었다. 칼을 뽑은 그 제자는 물론, 나머지 제자들도. 아니,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돼지치기까지, 거기 있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붉은 반점을 가진 그 돼지가 별안간 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냐, 잠깐! 날 죽이지 말게! 칼을 집어넣어!”


   너무 놀라 손에서 칼을 떨어뜨린 수제자를 다시 한번 똑바로 쳐다보며 새끼 돼지는 말을 이었다.


“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게. 자네들 모두에게 날 죽여 달라고 부탁할 때는 내가 사람이었는지라, 돼지의 삶을 전혀 몰랐어. 막상 돼지가 되어보니, 생각 외로 몹시 좋다는 걸 깨달았네. 나는 그냥 이대로 살겠으니, 자네들은 그렇게 알고 돌아가게.”


- 인도 우화 중 ‘돼지가 된 성자’ -


“글쎄... 딱히 뭐 없는데.”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다. 딱히 대답할 게 없었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었으니, 즐길만한 것도 없었던 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두꺼운 안경을 쓴 탓에 맘 놓고 운동을 할 기회는 애초에 없었다.


   안 하다 보니, 못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대학생이 되도록 자기소개서에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공놀이 하나 취미라고 적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취미에 대한 질문은 학생 꼬리표가 떨어진 뒤에도 지겹게 나를 따라다녔다.


“취미 하나 가져보는 게 어때요?”


   20대 후반이 다 되도록 취미 하나 없던 나에게 첫 일터에서 만난 그분은 내게 취미를 권했다. ‘남들이야 술 담배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지만, 우리야 그럴 경우가 없으니 건강한 취미 하나쯤 가져보는 게 좋다’는 거였다.


“글쓰기 한 번 해보려고요.”


   내가 선택한 건 글쓰기였다. 사람들은 꽤나 의아해했다. 나 역시 상상조차 못 한 취미였다. 거의 매일 A4용지로 3장 이상 글을 써야 하는 업무 환경에 놓인 내게 글쓰기는 그야말로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히 후배의 소개로 도전하게 된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글을 쓰게 되면서, 김정주 작가의 쓰고 뱉다 수업을 통해서, 글쓰기는 내게 더 이상 버거운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취미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 성자가 처음 자기가 돼지로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삶에 대해 걱정했던 것처럼, 나도 취미를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 글쓰기를 해보기로 결심했을 때 사실은 걱정이 앞섰다. 그때까지 글쓰기는 내게 노동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자가 돼지로서의 삶에서 즐거움을 발견했던 것처럼, 나도 취미로서의 글쓰기에서 기쁨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써야 하는 글뿐만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쓰다 보니 세 개의 글쓰기 플랫폼에서 연재를 하게 되었다.


   쓰기를 멈추지 않다 보니 1,600명이 넘는 구독자들 앞에  글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내 글이 올라간 일도, 신문사에 기고했던 경험도 쓰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없었을 거다. 쓰는 일은 쓰기도 했지만, 그만큼 달콤하기도 했다.


   ‘취미 따위 알게 뭐야’ 생각하며 해 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썼던 모든 글들은 세상에 나와 밝은 해를 보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글쓰기를 취미로 갖지 않았더라면,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내게 버거운 노동 그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이었던 Franklin D. Roosevelt의 부인 Eleanor Roosevelt의 말처럼 매일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하나 씩 해 보라. 손해 볼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아서 햇빛을 보지 못한, 해 보지 않아서 해 보지 못한 당신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기억하라, 해 보지 않으면 해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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