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깨닫게 된 적자생존의 진리
“예로부터 이런 말이 있다 이 말이야...”
고등학교 1학년 사회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수업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셨다. 누가 쫓아오는 건 아니었다. 그럼 갑자기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으셨던 걸까?
선생님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시더니, 아주 급하고 현란하게 푸르다 못해 녹조보다 더 짙은 칠판에 하얗고 노란, 빨갛고 파란 분필로 판서를 해나가기 시작하셨다.
칠판이 꽉 차기까지 분필이 칠판에 부딪혀 나는 소리만이 교실에 퍼졌다. 이윽고 판서를 마친 선생님은 우리에게 말했다. ‘적자생존’이라고.
사회 시간에 웬 적자생존? 그분이 우리에게 한 말은 ‘살아남기에 적합한 무언가가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문장이었다.
“지금부터 열심히 필기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백날 천날 디다 보기만 하면은 남는 게 없어요! 알았나? 적어라 이 말이야! 적자, 생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가슴속에 유독 사무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이제야 ‘적자생존의 진리’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적지 않았다. 보통 글감이나, 쓰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메모를 하는 편인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던 거지?
“어... 뭐였더라?”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금방 까먹는다.’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돌고 돌아 가슴까지 사무친다. 쓰려고 했던 주제가 뭐였는지, 어떤 글감을 가지고 쓰려고 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 머릿속엔 메모하는 펜만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언제든 빡빡 밀어 지워버리는 지우개도 함께 들어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내 마지막 글이 작년에 멈춰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적자생존’의 원리를 잊고 있어서였다.
적자, 생존.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적지 않으면 사라진다. 적자, 생존. 적는 일이, 쓰는 행위가 생각만 살리는 게 아니라, 나를 생생하게 살게 할 거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나는 약 한 달간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체득했다, 적자생존을. 이제 잊지 않으리라. 생생한 건 목소리뿐 인 나의 선생님, 당신이 옳았습니다. 인생은 정말 적자, 생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