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개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 기존의 상식을 뒤집고 '그거 아니에요' 하는 말은 귀를 틀어막고 들은 척도 않는다.
1500년경 중반만 해도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교황청과 종교계는 자신이 밟고 선 행성을 중심으로 온 우주가 돌아간다고 굳게 믿었다.
이런 신념을 무너뜨린 건 코페르니쿠스와 뜻을 같이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종교계는 여전히 완고했다. 그를 종교 재판에 회부한다. '지동설 주장을 포기하라' 겁박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말년을 집에 갇혀 쓸쓸히 보냈지만, 갈릴레이는 번복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우리를 중심으로 온 우주가 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동물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사람 목소리까지 흉내 내는 앵무새를 보며 ‘똑똑한 새다’ 생각한다. 돼지는?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몸이 퉁퉁하니까. 사과가 ‘내 얼굴’에 비유될 때, 돼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된다.
‘돼지 같다’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퉁퉁하고 뒤뚱거린다. 왠지 종일 먹기만 할 것 같다. 편견이다. 돼지는 똑똑하다. 양돈업자들은 돼지가 밥 주는 사람을 알아보고 개가 그러는 것처럼 따라오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고 말한다.
진리라고 굳게 믿는 무엇이나, 상식으로 생각하는 당연한 것들은 언제든지 뒤집히거나 바뀔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배스킨라빈스 31이다. 우선, 이 브랜드의 이름은 ‘베’스킨라빈스 31이 아니라 ‘배’스킨라빈스 31이다.
이 아이스크림 가게에 대해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건 뒤에 붙은 숫자, 31과 관련 있다. ‘배스킨라빈스 31의 아이스크림 종류는 31개’라는 거다. 정말일까? 정답은, ‘아니오’다.
2021년을 기준, 메뉴는 총 45개. 매장마다 판매하는 종류는 상이하지만 대부분 전부를 구비하고 있지는 않다고. 그렇다면 31은 메뉴 개수와 상관없다는 말인데, 굳이 왜 31을 붙였을까? 소비자 기만인가? 아니다.
31은 한 달을 뜻한다. ‘한 달 내내 새로운 맛을 선사하겠다’는 뜻으로 31을 붙였다. 배스킨라빈스는 ‘매일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호불호가 가장 많이 갈리는 건 뭘까? 민트 초코 아닐까?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나온 짧은 영상이 생각난다.
대기실에 준비된 아이스크림을 보더니 활짝 웃는다. RM은 처음엔 이걸 피스타치오 맛이라고 생각했다. 이내 멈칫하더니 제작진을 향해 "(피스타치오) 맞아요?" 묻는다.
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다. "세상에, 민트 초코야! 난 민초가 싫어!" 영어로 온갖 불평을 쏟아내며 소리치는 RM의 모습으로 영상은 끝난다.
그는 ‘민초’에 대한 반감을 늘 강하게 표현해왔다. ‘반민초파’다. 민트 초코 맛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말. 반면 함께 멤버로 활동하는 정국과 제이홉의 경우 아이유, 수지처럼 대표적인 연예계 ‘민초파’다.
민트 초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모습이 얼마나 흔한지, 이런 우화가 있다. 비쩍 말라버린 늑대 한 마리가 나오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지 오래다. 깡마르다 못해 살가죽만 남아 뼈의 윤곽이 다 드러나 보인다. 가련하게도 먹을 것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헤매고 헤맨다. 개를 만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신과 확연히 다른 개의 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지켜본다.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다. 털에는 윤기가 흐른다. 갑자기 부아가 치민다. 충동적인 건 아니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늑대는 본래 개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뒤를 밟고 싶다고 생각한다. 단숨에 저 목을 물어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했다가는 개가 아니라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기가 죽었다. 잔뜩 말린 꼬리가 말해준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개에게 다가간다. 연민인지, 경멸인지 개는 얼굴을 찌푸린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지?” 늑대가 묻는다. 찌푸렸던 아까의 표정은 연민이 아니라 경멸이었다. “네가 그런 꼴을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그런 꼬락서니가 된 거야.”
‘차라리 목을 물어뜯을 걸’ 생각했지만, 이제라도 비참한 신세를 버리고 자기 친구가 되라는 개의 말에 늑대는 귀를 세웠다.
"멍청이야, 자유로운 척 허세는 그만 부려. 이제라도 제대로 살고 싶으면 내 친구가 되어야 한단 말이야." 거만하게 뚫린 입으로 나불대는 개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냐’고 한 번 더 묻는다.
"아, 그거? 간단해. 적이 나타나면? 짖어! 거지가 나타나면 쫓아내! 식구들에겐? 당연히, 배를 보여. 순하게 굴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아,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 주인을 즐겁게 해주란 말이야. 꼬리 흔드는 걸로 퉁 치려고 하지 마. 어림도 없으니까. 이것만 잘 지켜. 그러면 모든 게 다 네 거야!"
마지막 말이 그를 완전히 홀렸다. 순한 양이라도 된 듯 순순히 개 뒤를 따라간다. 잘 따라가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춘다. 어라? 개 목덜미 주변 윤기가 흐르는 털이 없다. 털이 빠진 자국이다.
"야, 너 목에..."
"목에 뭐!"
유독 목이라는 말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뒤돌아 자신을 쳐다보는 개에게 묻는다. '목에 털 빠진 자국은 대체 왜 생긴 거냐'라고.
당황스러움이 자리를 채운다. "아무것도 아니야." 끊어내는 면도날 같은 말에 확신을 가지고 대꾸한다. "거짓말!"
"아마, 목걸이 자국일 거야."
개는 마지못해 '집에 있을 땐 묶여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습관이 되면 이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솔직하게 말하지 말아야 했을까? "너는 상관없을지 모르지. 그렇지만, 난 아니야." 미련 없이 떠나는 늑대를 보며 개가 했을 생각을 우리는 모른다.
- 라퐁텐 우화집 중 ‘늑대와 개’ -
안락함을 포기하고 자유를 선택한 늑대는 미련한 걸까? 자유를 포기하고 안락함을 선택한 개는 멍청한 걸까? 늑대는 미련하지 않다. 개도 멍청하지 않다. 각자 선택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어휴, 그런 걸 왜 먹냐? 차라리 뜨끈한 국밥 든든하게 먹고 말지."
"아 먹을 줄 모르네! 그렇게 초장 잔뜩 찍으면 회 맛이 안 나요. 회 맛, 모르는구나?"
내가 보기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이해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이 선택한 것, 타인의 선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을 옳다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선택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다 걱정해서 이러는 거야' 이야기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지 마라. 남의 선택이 어쩐지 불편하다면, 그 사람에 대한 걱정보다 '내가 옳다'는 생각이 한 발자국이라도 앞선다면, 인정해야 한다. 오지랖이다.
끝으로 남의 선호나 선택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게 시원하게 일침 놓은 문장을 가지고 글을 마무리한다. '아이폰 쓰는 사람 – 정상. 갤럭시 쓰는 사람 – 정상. 아이폰 쓴다고 갤럭시 까는 사람 – 비정상. 갤럭시 쓴다고 아이폰 까는 사람 – 비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