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목표요? 바뀐다고 큰일 안 나요.

박쥐와 족제비

by 쓰는 인간

푹 자고 일어났다. 아직 불을 켜지 않아 어둡다.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고 밤새 무슨 연락이 왔나 확인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내용의 메시지들이 대여섯 개쯤 보인다. '새해 복이라고?' 진짜다. 새해다. 그냥 잠들었다가 깼을 뿐인데, 2020이 도망하고 2021년이 왔다.

"허, 뭐 했다고 1년이 벌써 다 지나갔어?" 중얼거리며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연다. 부엌 불을 켜고 커피를 내린다. 커피 향이 거실까지 가득하다. 잔에 커피를 따라 마셔야 하는데, 다 내려진 것도 잊고 한참을 생각한다. '또 무슨 목표를 세우나...'

새해가 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새해 다짐’이나 ‘목표’를 세운다. 어떤 사람은 '올해는 꼭 금연한다!' 호언장담하고, 다른 사람은 "여보, 나 올해는 술 좀 줄이려고..." 말을 꺼냈다가 "줄이긴 무슨, 끊어야 돼. 당신은! 알아?" 잔소리를 듣고 본전도 못 찾는다. 결심의 모습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작심삼일’ 아니, 작심'삼초'가 되어버리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저만 이래요?


눈이 오던, 비가 오던, 바람이 불던 그냥 꾸준히 하는 태도는 '칭찬이나 박수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지만, 상황에 따라 결정을 조정하고 번복하는 일은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당나라의 시인 이백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으면 할 수 있다”는 어떤 노파의 말을 곱씹으며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위대한 시인이 되었다. ‘마부작침’이라는 사자성어는 여전히 이백이 보여준 태도를 칭찬한다.

반면, 이런 경우도 있다. 쇼미더머니4에서 랩퍼 산이와 함께 프로듀서로 나왔던 버벌진트는 가사 실수를 했던 한해가 아니라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블랙넛을 떨어뜨렸다.


이후 논란이 일자, 두 사람을 따로 불러 결정을 번복한다. 승자와 패자가 한순간 바뀌어 버린 이 어처구니없는 이슈는 버벌진트는 몰라도 ‘번복진트’는 알게 만든 사건이다.

노파가 정말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백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다. 버벌진트의 판정 번복은 오히려 승자가 된 블랙넛이 그 자리에서 불꽃 디스 랩을 하게 만드는 웃지 못 할 장면을 만들었다. 랩퍼만 우스꽝스러운 꼴이 된 건 아니다. 여기 ‘번복의 대명사’로 알려진 동물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박쥐 한 마리가 땅에 떨어졌다. 박쥐는 족제비에게 붙잡혔다. 죽임을 당하려는 순간 박쥐는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족제비는 "모든 새는 우리 적이야. 나는 너를 살려 줄 수 없어."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박쥐는, "나는 새가 아닙니다. 쥐라고요."라고 애원했다. 족제비가 가만히 살펴보니 얼굴 모양새가 쥐와 사뭇 비슷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래?, 흠, 그렇구나" 하고 박쥐를 보내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어느 날, 그 박쥐는 다른 족제비에게 다시 붙잡혔다. 또 떨어진 거다. 박쥐는 이번에도 ‘살려 달라’며 애원했다. "안 된다, 난 쥐는 살려두지 않아."라고 족제비가 말했다. 그러자 박쥐는 "난 쥐가 아니라 새입니다."라고 말했다. 족제비가 가만히 보니 쥐라고 하기에는 날개가 달린 것이 영 이상했다.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응?, 그렇구나" 하고 보내주었다.



- 이솝우화 중 ‘박쥐와 족제비’ -


'비겁한 박쥐' 혹은 '외톨이가 된 박쥐'보다는 덜 알려진 우화다. '날짐승과 길짐승의 싸움에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던 박쥐가 결국 짐승들 모두에게 미움을 받아 동굴로 쫓겨났다'는 이야기와 줄거리는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분명 있다. 박쥐는 여기에서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짐승이라는 이미지다.

글쎄, 이랬다저랬다 한 박쥐를 비난 할 사람에게 필자는 묻고 싶다. '아무렴 죽는 것보단 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일리아스만 읽고 오딧세이아를 읽지 않은 사람은 그 위대한 영웅 아킬레우스가 오딧세우스를 그토록 부러워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 내용이 궁금하신 독자는 ‘영웅을 위한 나라는 없다’ 19화를 참고하시라.)

박쥐는 상황에 따라 나은 선택을 했을 뿐이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삶을 선택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본능이다. 박쥐는 그저 상황에 맞추어 좋은 선택을 했을 뿐이다. 소설가 김탁환 씨는 이런 말을 했다.

“삶은 모순입니다. 15살, 25살, 40살의 나는 각각 다른 존재이지요. 그 삶을 자세히 보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인생을 격정적으로 돌파하는 사람은 1년 전의 자기 말을 부정합니다. 한 인간의 삶을 그릴 때는 모순되고 비약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단절의 순간, 그 순간을 짚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은 모순입니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15살, 25살, 40살의 나는 각각 다른 존재이지요’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리라 생각한다.


‘그 삶을 자세히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 내가 계획한 대로, 그러니까 '5년 후에' 혹은 '10년 후에 나는 이런 모습이 되어 있을 거예요.' 라고 말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일종의 예방 접종 아닐까?

봉준호 감독의 그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았다면,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다’라는 문장이 가진 의미를 알 터. 지나온 2020년 이미 배우지 않았나, 세상은 그리고 우리의 삶은 애초에 예측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은 언제나 라이브’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때로는 우직하게 직진하는 대신 유연하게 턴을 해주는 것도 가끔은 괜찮지 않을까? 초지일관의 자세로 새해의 며칠을 달려온 당신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자세로 계속해서 바꿔나가는 태도는 비겁함이 아니라 지혜라는 것을. 그러니까 혹 옆 사람이 작심삼일, 아니 작심삼초를 하거든 그냥 웃어주어라. 결심, 그거 좀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어지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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