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당신은 없다.

농부와 언 뱀

by 쓰는 인간



작은 교실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녀석들은 안경을 쓰고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블라우스 차림의 선생님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반 묶음 머리 위에 살포시 얹어진 빨간 리본 때문일까? 아니었다. 발그레한 아이들의 두 볼처럼 빨간 봉숭아 물이 든 선생님의 손끝은 그림을 향하고 있었다.

"자, 여러분 이게 뭘까요?"

아이들은 팽팽한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머리를 쥐어짜 봤지만, 얼굴에 힘을 준다고 해서 질문에 대한 답이 튀어나오는 건 아니었다. 그때, 두꺼운 안경을 쓴 하얀 얼굴의 더벅머리 소년이 손을 들고 말한다.

"선생님, 그건 꽃의 수술이에요. 그리고 저건 암술인데, 암술과 수술이 우리가 먹는 맛있는 과일을 만들어줘요."

"와아!"

친구들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대신 하얀 얼굴이 이제는 발그레 변한 소년에게 선생님은 물었다. "00인 어디서 이 그림을 본 적이 있나요?" 나지막한 소리로 소년은 대답했다. "우리 아빠 서재에 있는 두껍고 글씨 많은 책에서 봤어요."


어려서부터 책이 좋았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데, 필자는 여든이 되려면 아직 멀었고, 더욱이 세 살에 뭘 버릇으로 들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든은 물론이고, 죽기 전까지 꼭 놓치고 싶지 않은 습관이 있다면, 독서와 글쓰기다. 글쓰기는 취미로 붙인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독서는 꽤 오래전부터 필자가 사랑했던 일이다.

"그땐 그저 너희들이 책을 읽고 넘기는 걸 보는 게 좋았어."

어머니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필자와 동생에게 책을 사주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원 없이 책을 읽었다. 온갖 내용을 다 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더 볼 책이 없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정도 되었을 남매가 얼마나 고매한 지식을 쌓았겠냐마는, ‘책 또 사주세요’ 조르기엔 이미 아이들도 눈치가 늘었다. 결국, 필자는 감히 선을 넘었다.

"아빠 회사 갔으니까 괜찮아."

아버지 방에 들어간 어린 시절의 필자는 무슨 책인지도 몰랐지만, 그저 온갖 책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버지 서재에 있는 온갖 책을 읽었다.

제대로 꽂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버지는 다 아셨다. 퇴근을 하신 아버지가 서재에 들어가셨다가 다시 나오시더니 "여보, 혹시 내 서재 청소하셨어요?" 물으셨다. 어머니는 아니라고 하셨다. 다음은 우리였다.

‘아, 큰일 났다. 혼나는구나’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지도 않았는데. 그저 이름을 부르셨을 뿐인데, 옆에 있는 동생까지 눈물 콧물 다 적시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당황한 얼굴로 남매의 빨간 볼을 닦으시며 '괜찮으니 책은 얼마든지 보고 제자리에만 꽂아 두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애초에 혼내시려던 것이 아니라, 기특한 마음에 칭찬을 하시려던 거였다.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고, 동생과 합법적으로 서재에 들어가 마음껏 책을 읽었다. 만화책도 있었지만, 글씨만 빽빽하고 두꺼운 책도 있었다. 뭐, 아무렴 어때, 상관없었다. 그저 책이 좋아서 그것마저 툴툴대지 않고 읽었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백과사전이었다. 세상에, 아무리 책이 좋았어도 그렇지 어린 시절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백과사전을 ㄱ부터 ㅎ까지 주야장천 읽었던 거다.


어린 시절 빨간 리본을 달고 꽃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려던 선생님 대신 ‘이건 수술이고요, 저건 암술이에요’ 말했던 날의 배경은 이랬다. 아는 게 나와서, 봤던 게 나와서 말했던 거다.

그게 무슨 사전이든, 펼쳐보면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가 가득하다. 사전은 어떤 단어를 설명하고, 의미를 규정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봤던 꽃은 물론이고 온갖 것들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 있다.


현대인에게도 사전이 필요하다.



현대인에게도 사전이 필요하다. 아, 잠깐. 서재에 들어가서 먼지를 털 필요는 없다. ‘현대인에게 사전이 필요하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규정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표현한 거니까.

"야, 너 뭐 나왔어?"
"나 이번엔 ENFP네. 저번이랑 좀 달라. 너는?"
"나는 ENTP야."

"아, 목말라. 나 음료수 한 입만."
"어? 너 혈액형 뭔데?"
"나 B형이야."
"헐, 안돼. 나 A형이야. 침 섞이면 우리 죽어."

MBTI는 물론이고, 그전에 혈액형 별 성격 분석 같은 것들이 유행을 탔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나는 ~형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신을 ‘라벨링’ 하고픈 욕구가 고개를 든 거지. 요즘이라고 다를까?

필자는 유튜버 겸 트위치 스트리머인 ‘송사비’님을 좋아한다. 그녀의 방송을 보는 건 글쓰기와 더불어 필자의 몇 안 되는 낙이다. 팬카페도 가입했다. 이하의 짧은 이야기는 팬카페 ‘사비상사’에서 있었던 실제 에피소드를 각색한 것이다.

'새로운 테스트!'

다른 팬카페도 이런지 모르겠지만, 송사비님의 팬카페 ‘사비상사’에는 스트리머에 대한 글을 포함하여 각종 포스팅들이 올라온다. 그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각종 테스트다.

어제는 일하던 중 따분해서 들어간 팬카페에 새로운 테스트가 올라와 있었다. ‘연애유형’에 대한 테스트였는데, 제일 먼저 그걸 가져와 본인의 결과를 올려놓은 분의 포스팅이 눈에 띄었다.

"어, 이게 완전 나잖아?"

‘와, 진짜 완전 공감 ㅋㅋㅋㅋ’ 댓글을 적어놓고 링크에 들어가 테스트를 해봤다. 결과는? 그분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피식 웃고 나서 캡처를 한다. 댓글 알림이 와서 확인했다.

다른 분이 '어라, 회원님은 결과가 저랑 완전 상극이시네요?'라는 댓글을 달아놓으셨더라.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하죠(끄덕)'라고 대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그분은 ‘저도 이쪽이 더 비슷해 보여요’라며 짬뽕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시더라.

그러고 보면 그 말이 맞다. 어떻게 사람이 외향적이기만 할까? 어떤 날은 외향이었다가, 또 내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이 있다. ‘나는 천상 O형이야’ 생각했는데, '너 B형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있다.

어느 누가 ‘딱 이런 사람’일까? 이렇기도 하면서 또 저렇기도 한 것이 우리 아닐까? 누군가를, 또 무엇을 규정하고 ‘이건 이거야’ 말하기 어렵다는 거다. 이솝 우화에 보니 이런 이야기가 있다.



겨울철에 뱀이 추위에 뻣뻣해진 것을 보고 농부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가슴에 품었다. 뱀은 몸이 따뜻해지자 제 본성으로 돌아가 은인을 물어 죽였다. 농부가 죽어가며 말했다. "나는 벌 받아 마땅하지. 사악한 자를 불쌍히 여겼으니."



- 이솝우화 중 ‘농부와 언 뱀’ -


우리는 당연히 받아들인다. '뱀은 나빠.' '뱀은 농부를 물었어. 아니, 불쌍해서 품어줬더니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휴, 농부 참 불쌍하다. 자기 딴에는 뱀이 불쌍해서 한 일인데, 그 일 때문에 죽다니.' 심지어 우화조차 이미(인용한 우화는 필자가 수정 없이 올린 번역본이다.) 뱀을 ‘사악한 자’라고 말한다. ‘뱀이 은인을 물어 죽였다’고 말한다.

글쎄, 과연 정말 그런 걸까? 지겹도록 필자는 다시 묻는다. 잘 생각해보라. 당신이 뱀이라면 어떨까? 어떻게 할까? 깜짝 놀라 당연히 눈앞에 있는 것을 콱 물어버리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또 농부의 착한 행동을 미련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말하자면, ‘야, 너는 착해’ ‘야, 쟤는 나빠’ 손쉽게 말하고 규정하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볼만 하다는 말이다. ‘뱀은 징그러워서 싫어요’ 하실까 봐 다른 예를 또 하나 들고 왔다. 네덜란드의 작가 프레데릭 반 에덴이 쓴 ‘어린 요한’에 나온 '버섯 이야기'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산책을 나갔다. 길을 가다가 길섶에서 버섯 무리를 발견했다. 바라보던 아버지가 버섯 하나를 가리켰다. "얘야, 저건 독버섯이란다!" 그 소리를 듣고 독버섯으로 지목된 버섯은 충격을 받아 그만 기절했다. 옆에 있던 친구 버섯이 그를 위로하며 "너는 늘 내 곁에서 다정하게 대해준 고마운 친구야!"라며 달랬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자기를 딱 찍어서 독버섯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달래도 안 되자 그 친구 버섯이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그건 사람이 한 말이잖아!"

‘나는 산에 안 가요’ ‘버섯 보면서 뭐라고 말한 적 없어요’ 말씀하신다면, '버섯' 대신 사람을 바꿔서 넣어보면 어떨까? 언 뱀은 그저 깜짝 놀라 방어 수단으로 콱 물었을 뿐이다. 버섯은 그저 버섯으로 거기 있었을 뿐이다.

한쪽 편에서만 뭔가를 판단 할 때, 뱀은 사악한 독사가 되고, 친절한 나의 친구 버섯은 사람을 죽이는 독버섯이 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뭐 어디 버섯이나 뱀 뿐이겠나. 지금까지 ‘댕댕한 인문학’을 충실히 읽어오셨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터. 그래,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사람은 딱 떨어지는 수학공식 같은 게 아니다.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판단 할 수 있을까? 옆에 보이는 저 사람이 'a+b=c' 같은 수학 공식처럼 보인다면, 아직 안 늦었다. 병원부터 가라. 아니, 그 사람 말고 당신 말이다.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 오죽하면 누구는 ‘소우주’라고 말했을까? 어쩌면 그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서 보았던 사전은 나폴레옹의 것과는 다르게 ‘불가능’ 대신 다른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게 대체 뭐냐고? 알려주겠다. 아버지의 서재 속 사전에는, 그러니까 이제 내 것이 된 그 사전에는 그 이름이 없다. ‘당신’이 없다. 그래, 당신은 그 어떤 것으로 규정 할 수 없는 신비다.

이전 13화인생이 고달픔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