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터진 물건 27
여기서도 저기서도 미움을 받아 외톨이가 된 고양이는 혼자 돌아다니다 신기한 집 하나를 발견했어.
"어, 이 집은 텅 비었네. 이런 집에는 들쥐들이 살지 모르지. 야옹야옹" 조금 신이 났어.
엄마를 찾고 있던 아기 쥐는 자기를 보고 말하는 것 같아서 놀라 얼른 숨었어.
어디 한번 볼까? 어? 그런데 문 앞에 예쁜 물고기 한 마리가 있지 뭐야.
저 놈 맛있게 생겼는 걸 싶었지만 혹시 친구가 될 지도 모르지? 먼저 말을 걸었지.
" 안녕, 물고기야. 이 집은 누구 집이야? 야옹 "
하지만 물고기는 멍한 눈으로 아무 대답도 않는 거야.
" 벙어리야 뭐야, 왜 나랑은 이야기가 하기 싫은 거야? 너도 나를 무시하는 거야? "
가까이 가보니 파란 물고기 바짝 말라서 벽에 딱 붙어 있었어.
아하, 그래서 말을 못 하는구나.
실망했지만 점점 호기심이 발동한 고양이는 -
이 집 안에는 뭔가가 분명히 있을 거야.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지.
"큼큼 어디서 생쥐 냄새가 나는데?" 눈을 굴리며 두 귀가 바짝 세워졌어.
아이쿠나, 아기 쥐는 빨간 입을 모으고 얼른 집 뒤로 숨어서 계속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었지.
"혹시 뒷문이 있을지 모르지."
이크, 큰일 났다. 아기 쥐는 얼른 옆으로 돌아가 숨었어.
고양이가 집 뒤로 돌아가보니
헐! 거기는 웬 소나무 한그루가 문을 턱 막고 있네 -
이거 봐라,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걸.
"소나무야 나 집으로 들어가게 좀 비켜 줘." 정중하게 부탁했어.
하지만 소나무는 아무 말도 않고 흠흠 헛기침만 하며 외면하네.
"뭐야, 왜? 너도 나랑은 이야기를 안 하고 싶은 거야?"
실망한 고양이의 기운 빠진 목소리와 슬픈 표정을 본 아기 쥐는 고양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에이, 집이 뭐가 이래?
앞문에는 물고기, 뒷문에는 소나무- 그런데 둘 다 나랑은 아무 말도 안 해.
지붕 위에 달님이 풍선처럼 매달려 있는데 달님도 그렇고
생쥐냄새도 나고 잠시 생각하던 고양이가 고개를 들며
"역시 뭔가 수상한 집이야. "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어.
너무 집중해 듣고 있던 아기 쥐는 고양이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그만
"맞아, 역시 뭔가 수상한 집이야" 하고 맞장구를 치며 말하고 말았어.
어이구! 큰일 났다. 아기 쥐는 뒤도 안 보고 걸음아 날 살려라 지붕 위로 올라가 숨었지.
놀란 달님이 생쥐를 보고 소리를 지를 뻔, 입을 손으로 막았지.
이때까지 지붕 위로 아무도 올라온 적이 없었거든.
'달님 쉿! 나를 숨겨 주세요. 고양이에게 들키면 난 죽어요. 난 잡아 먹힐 거예요.'
달님은 잡아먹힌다는 말에 얼른 얼굴을 새까맣게 해서 세상을 어둡도록 했지.
" 야옹, 방금 무슨 생쥐 소리 같은 게 났는데?"
고개를 돌리는데 어? 달님이 갑자기 어디로 간 거야 너무 어두워졌네. 이게 무슨 일이지?
고양이는 가볍게 지붕 위로 뛰어올라왔어.
"달님 갑자기 왜 이렇게 얼굴이 깜깜해졌어요?"
그 말에 놀란 순진한 달님은 당황 헤서 바로 얼굴색을 하얗게 바꾸었지.
세상이 바로 환해졌네.
그런데 미처 숨지 못한 아기 쥐가 거기 딱 -있었지 뭐야.
"엇 그럼 그렇지. 내 코가 어떤 콘데 너 냄새였구나."
옴짝달싹 못하고 아기쥐가 달달 떨면서 말했어.
"고양이야, 난 엄마를 만나야 해. 엄마가 날 찾아올 텐데 그때까지 제발 나 잡아먹지 말아 줘"
" 너, 너 지금 내게 말한 거 맞지? 그치? " 너무 기뻐서 말을 더듬었어.
"우와,드디어 내게 말을 하는 친구가 생겼어! 야옹야옹!!" 난리야.
몇 년 만에 말을 걸어준 친구가 그게 하필 생쥐라니!
생쥐면 어때. 생쥐랑 친구 못하라는 법이 있나 뭐. 고양이는 신나서 폴짝폴짝 뛰었어.
이게 무슨 일? 이제 죽었다 생각했던 아기 생쥐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아유- 너 완전 아기구나. 너무 귀여운데? 너 나랑 친구 하자."
쥐에게 친절한 고양이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달님도 고개를 갸웃했어.
고양이는 자기는 절대 아기쥐를 먹지 않는다고 오히려 엄마 찾을 때까지 돌봐 줄 거라며 달님에게 맹세를 하고 생쥐를 안심시켰어.
그 모습을 본 달님이 뭔가 생각난 듯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이 있다고 했어.
착한 고양이님은 물고기도 잡아먹지 않을 걸 안다고.
꼭 믿는다며 내려가서 물고기에게 물 한 방울을 먹여 주라는 거야.
그럼 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어려운 부탁도 아니구만, 게다가 궁금했던 집 이야기라니, 얼른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달님이 너무 고마워하네. 뭐가 그렇게 고맙지?
지붕에서 내려온 고양이와 쥐는 물고기에게 얼른 물 한 방울을 먹였어.
캑캑 크크큼, 흠 흠- 나에게 물을 갖다 주는, 칵칵 큭, 캑 --- 친구가 왔--네. 고마워 고마워 진짜.
휴우 -아아 살 것 같아. 달님 고마워요.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빠짝 말라 있던 물고기 입이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더니 이야기를 시작했지.
먼 옛날 깊은 바닷속 용궁에 공주님이 사는 집이 있었어.
공주는 바닷속이 너무 깜깜하다고 달님을 따 달라고 용왕님께 졸랐대.
하지만 하늘에 있는 달님을 어떻게 바닷속으로 따 올 수 있느냐며 용왕도 그건 못한다고 했지.
공주는 위험하다 해도 어두운 바닷속이 싫다고 물 밖으로 자주 나가 달님을 보고 왔어.
용왕님은 그런 공주를 집에다 가두고 대신, 조개껍질로 만든 달님 하나를 공주의 집 지붕 위에 달아 주었었어.
공주님은 저게 무슨 달님이냐고 하늘에 달은 그렇게 안 생겼다고 화를 내고는 아빠 말을 안듣고
그날도 몰래 물 밖으로 나가서 달님을 보고 올 줄 알았는데 안 돌아오는 거야.
달님을 보러 나갔다가 달 빛 아래 배를 타고 가고 있던 왕자님께 홀딱 반해서 따라 가버린걸 알게 되었어.
공주가 떠나고 난 뒤 집은 텅 빈 채 바닷속 깊이 쓸쓸하게 남았어. 달님만 떠 있는 채로.
물고기들은 오가며 주인이 없는 그 집을 달님의 집이라고 불렀지.
어느 날 거센 파도가 치고 폭풍이 몰아치며 집이 흔들리더니 그만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어.
몰아치는 물살에 정신없이 휘몰리며 내동댕이 쳐져 떠돌다가 어느 바닷가에 턱 앉았지 뭐야.
그렇게 이 집은 물 밖으로 나온 거야.
공주님을 지키는 물고기였던 나는 공주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겨서 좋았어.
하지만 하루 이틀 한 달 1년이 지나고 공주님은 오지 않고 나는 벽에 말라 붙어 포가 되어 버렸어.
밤마다 달님이랑 둘이 바다 이야기를 하며 공주님을 기다렸는데
내가 말라버려서 말도 못 하고 달님은 혼자 외롭게 떠 있어야 했어.
뒷문에 소나무는 언제 씨앗이 날아와서 자랐는지 - 공주님이 보낸 건가? 했어.
그런데 난 앞문, 소나무는 뒷문이라 서로 본 적도 없어. 달님이 말해줘서 알았지.
우리를 구해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오늘 너희들이 나타난 거야 얼마나 반가웠겠어. 아무리 용을 써도 말이 안 나왔어.
아, 달님이 왜 그렇게 고마워했는지 이해가 되네.
그럼 집 안에는 텅 비어 있는 거야?
응, 공주님의 침대가 공주님을 기다리고 있지.
이렇게 와줘서 너무 고마워.
고양이와 쥐를 보며 말하는 물고기의 공허한 눈에 눈물이 고인 건가 뭔가가 반짝거렸어.
고양이는 아기쥐가 볼까 몰래 눈을 깜짝여 눈물을 감췄어. 늘 따를 당해서 외톨이였던 고양이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는 다정한 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았던 거야. 아기쥐는 달님의 집이 너무 슬프다고, 잃어버린 엄마를 기다리는 자신이랑 같다고 생각하며 더 울었지.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달님은 기뻐서 눈물이 살짝 고였지만 활짝 웃었어.
그날 이후 달님의 집에 고양이와 아기쥐가 매일 밤 놀러 갔어. 물방울 하나를 가지고 말이야.
그 집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잡기 놀이도 하고 소나무를 긁으며 가지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달님과 수다스럽게 이야기도 하고. 텅 비어 있던 달님의 집에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가득해졌어.
집 문 앞에는 이런 안내판이 생겼어.
"이 집은 착한 달님과 이야기꾼 물고기와 점잖은 소나무와 귀여운 생쥐와 착한 고양이가
공주님과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달님의 집입니다.
길을 잃었거나 갈 곳이 없거나 친구가 필요한 분은 그냥 들어오세요. 무조건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