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혼자 살게 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집을 구하려고 끙끙거렸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제법 혼자 만의 규칙도 생기고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이 공간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아무도 나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 퇴근 후 지친 몸을 씻지 않고 침대에 눕혀도, 요리를 하다가 양념이 온 벽에 튀어도, 커피를 먹다가 바닥에 엎어도, 내 행동에 책임만 지면 될 뿐 (치우고, 또 치우는 일이겠지만) 타인의 시선이나 말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혼자 살면 엄마한테 고마워진다는데, 오히려 나만의 방식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아직까지는 즐겁다.
하지만 이상하게 혼자 살아도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여전히 새벽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 본가에서 살았을 때는 모두가 잠들어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고요한 그 시간을 즐겼지만, 혼자 살면 모든 시간이 온전한 내 시간이기 때문에 유난히 새벽을 좋아하거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새벽이 되기를 기대하고, 그 시간을 아까워한다.
자정이 되면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보통의 평일이라면 졸음에 못 이겨 결국 잠에 들고 말지만 금요일 자정은 그래서는 안된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새벽은 단 두 번뿐. 금요일 시작부터 커피 세 잔을 연달아 마시고 카페인으로 든든히 무장한 채 퇴근한다.
씻고 밥을 먹고 치우고 할 일을 끝내고 나면 11시 전후. 나는 침대에 들어가고 탁자에 놓인 스탠드 줄을 잡아당기고 스피커의 볼륨을 키운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익숙한 나'가 된다. 침대 옆에 어지럽게 쌓아 놓은 책을 읽거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좋아 글을 쓴다던가, 그러다 문득 과거를 회상하며 멍을 때리다가, 갑자기 마음이 일렁이는 바람에 울어버린다던가.
유난히 새벽에는 돌아오지 않는 지난날들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그땐 내가 어땠나, 누구와 친했었지, 누구를 어떤 마음으로 사랑했었나. 후회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가끔은 내가 가지 않았거나 못한 길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때 부모님 말을 듣고 다른 전공과 학교를 선택했다면, 내가 그 친구와 멀어지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3년 전 소개팅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면, 그 사람과 헤어지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또 새벽에는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자꾸 상상하게 된다. 멀어진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해 본다면 그 친구는 나를 반겨줄까, 과거의 하루를 다시 보낼 수 있다면 어떤 하루를 선택할까, 길을 걷다가 그 사람을 마주친다면 이젠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수 있을까, 단 하나의 소설로 비로소 작가가 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보통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일들을 나는 글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분명 나만 상상하고 궁금해하는 일들이 아닐 것이기에.
이렇게 생각의 물결을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기분이 촉촉해진 상태가 되는데, 그땐 모든 감정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럴 땐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평소에 비해 몇 배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약간의 울적한 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의 여행은 말 그대로 '상상'이지 '현실'은 아니다. 현실의 나에게는 하루하루 앞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하는 일터가 있고, 간절히 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과가 있다. 내 곁에는 내가 항상 궁금한 애틋한 엄마가 있고,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다정한 친구들이 있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제일 먼저 내가 생각난다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참 많이 사랑한다. 그럼에도 나에겐 생각의 여행이 필요하다. 잠시 떠나는 여행은 나의 19호실이 아닐까.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만을 위한 19호실. 현실을 더 잘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앞으로도 나는 생각의 19호실로 종종 여행을 떠날 것이 분명하다. 편안하고도 우울한 새벽 시간에 기대어. 그리고 여행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