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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Sep 17. 2024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남모를 고백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사랑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해 왔다. 정말 이 세상엔 나 말고는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아득바득 살아온 인생에서 나를 무너지게 만드는 요인은 아직까지도 아버지뿐이다.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살면서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그를. 집안의 평화와 화목을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조언하는 '아버지가 죽으면 후회할 거야'와 같은 일을 미리 방어하기 위해. 엄마의 눈물을 외면하고, 솟아오르는 화를 참아내고, 부끄러운 말들에 반박하고 싶은 욕망을 억눌러가며 사는 것이 차라리 옳은 일일까.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난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다.




티브이에 나온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은 웨딩드레스를 혼자 보러 다녔다며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나는 외면했다. 울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눈시울이 벌게진 엄마를 보며 나는 서둘러 이야기의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겪어 온 세월을 떠올리면 아버지를 다시 끔찍하게 미워해야만 했으니까. 그건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너무나도 큰 힘이 드는 일이었다.




나의 노력, 심지어는 그 노력으로 만들어낸 어떤 결과에도 절대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 손찌검이 서슴없었던 아버지. 대화는커녕 분노를 누군가에게 표출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아버지. 철저히 자기 연민에 빠져 사는 아버지. 자기 연민에 빠져 타인의 고통은 발바닥에 밟히는 성가신 머리카락쯤으로 여기는 아버지. 나를 부정하면서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이 어쩌면 그의 숨겨진 욕망이었을까, 하고 생각에 잠겼던 때도 있었다. 아버지의 분노를 겪은 날에는 아버지가 나를 죽이러 오는 꿈, 내가 아버지를 죽이러 가는 꿈을 자주 꾸었다.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분노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가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서글픔 때문에, '너네 아빠는 내가 여자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라고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 때문에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얼굴을 마주 보고 말을 섞지 않으니 미움은 가시고 평온함이 찾아왔다. 한 달에 한 번 하룻밤 본가에서 자고 오는 날쯤이야 견딜 수 있었다. 아버지도 그때만큼은 나를 건들지 않았고, 나 또한 어린 시절 부러워했던 화목한 가정의 친구들처럼 경치 좋은 곳에 다 같이 놀러 가거나 맛있는 걸 사드리기도 하며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런데 하룻밤이 최대였을까. 3박 4일의 명절은 너무 길었던 것이다.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관대하지만 가족에게는 지나치게 각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속이 울렁거렸다. 말대꾸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신경 써서 사 온 선물에도 더 좋은 걸 가져오라고 하던 사람,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고 싶어 데려간 식당에서도 잘 먹었다는 말은커녕 집에 빈손으로 오냐고 하던 사람.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에게 33도가 넘는 더위에도 생선을 굽고 찌라고 시키고는 자신은 안방에 들어가 에어컨 밑에서 쿨쿨 잠을 자던 사람. 자신이 나와 밥을 먹을 때에만 거실에 있는 에어컨을 켜고 밥을 다 먹고 안방에 들어가면 다시 에어컨을 끄는 사람. 한 마디 툭툭 던지는 말을 가시라고 여기지 않으면 되는데, 그저 장난이라 넘기고 무시하면 되는데, 나쁜 말은 안 들리는 애처럼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면 되는데. 그릇이 작은 나는 그렇게 관대해질 수 없었다.




남에게 관대하지 못할 거면 나에게는 더욱 각박해야지.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거고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 거야. 엄마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을 거야. 이 생각은 나를 옭아매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거나 떠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버지와 같은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나는 거리를 두거나 도망쳤다. 그들은 분명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었을 텐데, 나의 두려움은 마음이 가는 걸 자꾸만 막아섰다. 아버지는 알까,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며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는 걸.




회사에서 집단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내 이야기를 들은 상담가는 나에게 말했다. '어머니의 인생을 네가 책임져 줄 수 없어. 어머니의 인생은 어머니가 선택한 것이야. 그 선택을 존중하고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 그 이후로 나는 엄마와 나를 철저히 분리하려고 애썼다. 아버지 그늘에 눌려 살면서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한 엄마.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는 엄마. 길 가다가 물 한잔 사 먹는 것에도 바들바들거리는 엄마. 단둘이 놀러 가자는 나의 성화에도 아버지 밥을 차려줘야 한다며 아쉬워하는 엄마. 그 때문에 맛있는 것을 먹을 때에도, 좋은 것을 볼 때에도 자꾸만 엄마 생각이 나서 나는 체한 듯 가슴이 답답했다. 상담 이후로는 엄마의 인생과 내 인생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가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듯이, 나도 엄마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다.




나는 언제쯤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될까. 어디라도 말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아 이렇게 활자로 풀어낸다.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며 욕지거리를 하는 아버지를 피해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다가,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와 글을 썼던 예전의 나처럼. 낼모레 30을 앞두고 있는 내가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보단 훨씬 더 단단해졌는지 이제 울지 않는다. 마음은 무너지는 것이 느껴지지만 무너지더라도 금방 일어날 수 있겠지. 나를 만든 사람이 나를 믿지 않아도 나는 나를 믿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 주위엔 나를 믿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위안을 얻기 위해 또다시 나는 글에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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