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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Oct 06. 2024

가벼운 인생

인생의 포기와 양면성

예쁜 옷을 입는 건 좋아하지만, 여러 가지 선택지 중 고민하는 것이 싫어 쇼핑을 잘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감정이 예민한 편이지만, 하루가 흔들리는 것이 싫어 되도록이면 이성에 더욱 집중하려 한다.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기에 어떤 한 생각에 몰입하지 않으려 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지만, 이 또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므로 선 밖의 사람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한다. 


최근에 친구가 나에게 연락에 빠르게 답장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서운하진 않았지?"라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이제 서운해하는 것도 귀찮아"라고 대답했다.


내가 한 말임에도 스스로가 놀랐다. 서운함을 느꼈을 때의 가장 최근 상황을 생각하니 목구멍에 돌덩이가 콱하고 박힌 듯 답답했다. 웬만해서는 그런 상황을 또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던진 말이었는데, 그걸 "귀찮다"는 말로 표현하다니.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는 선택지 중 하나를 갖기 위해 내가 가질 수 있었던, 또는 갖고 있었던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빈번하게 맞닥뜨렸다.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열 가지를 포기해도 부족한 것이 인생이었다. 그리고 그 하나를 얻었더라도 어떤 것이든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매번 날 실망시키거나 속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포기와 양면성, 이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나는 더 이상 살아가는 일에 불평불만을 하지 않게 되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지 중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나에게 남은 에너지는 많이 없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나에겐 너무나도 중요해졌고 이 시간을 방해하는 복잡한 생각이나 감정은 철저히 배제해 두고 싶었다. 나를 차단한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끼거나, 전 남자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아찔해지거나, 뒤에서 나를 실컷 비난하고 있었던 회사 동료에게 분노하게 되는 것과 같이 나를 순간적으로 지배해 버리고 마는 감정들은 나의 시간을 방해하므로 지속적으로 외면하고 싶었다.


눈을 감아버리니 마음이 편해졌고 인간에게 거는 기대를 버리니 삶이 단순해졌다. 혼자 있을 때는 해야 할 일을 하고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그 시간을 최대하게 행복하게 보내는 것. 그 이상의 것은 하지 않으려 했다. 감정이나 생각에 집중하지 않아 생기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무언가를 덜어낸다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가벼워졌으므로 아직은 괜찮은 것이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최대한 단순하게 살고 싶다. 누군가 내 면전에 대고 욕을 해도, 송곳 같이 날카로운 말로 나를 아프게 만들어도 그런 것들은 하등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여기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에만 집중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진부함에 흔들려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럴 수 없는 순간이 기어이 오고 만다면 나는 분명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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