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더밍 Oct 14. 2020

씩씩하게 살고 싶어

해가 질 때쯤 간단히 저녁을 먹는다. 배가 부르면 잠깐 리클라이너에 앉아 잠을 자고 졸리지 않으면 책상에 앉아 끄적거리다 저녁 산책을 나간다. 한낮의 시끌벅적했던 소리들이 사라지고 어둠과 함께 조용함이 낮게 깔리는 저녁의 시간을 좋아한다. 날이 추워져 산책 나오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서 더욱 좋다. 고요하고 깜깜한 저녁에 뒷짐 지고 사뿐히 걷다 보면  몸에 생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있다. 하루  정신이 맑아지는 유일한 시간이어서 아무리 피곤해도 포기할  없게 되었다.

오늘도 평소처럼 지대넓얕 팟캐스트를 틀어 이어폰을 꽂고 혼자 킬킬거리며 걷고 있었는데 멀리서 초록색 불빛이 깜빡이는 게 보였다. 눈이 좋지 않은 나는 뭘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더니 작은 치와와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그리고  앞에는 망연자실한 태도로 길바닥에 앉아 있는 노인이 있었다.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흔들리는 몸짓도 보이지 않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꺾인 고개 뒤로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널브러져 있었고  바로 옆에 가죽케이스가 낡은 핸드폰이 입을 벌린  놓여 있었다. 자신을 무서워하면 짖어대는 치와와는 오늘따라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발을 헛디뎠을까. 장애가 있어 걸음이 불편한 걸까. 아니면 속상한 일이 있었던 걸까.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괜찮은지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기라도  .  정도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물어봐도 괜한 참견을  일이 아닐 텐데. 내가 너무 매정했다는 마음이 들어 한 바퀴 돌아 다시  자리에 갔을 때도 같은 모습이면  말을 붙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반대편 길을 걸으며  노인이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좀 전의 길바닥에 앉아 있던 일은 없었던  마냥 아무렇지 않은 씩씩한 뒷모습이었다. 별일 없이 집에 들어가나 보다 싶어 안심하다 문득 와락, 뒤에서 앉아 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기역자로 꺾인 뒷모습이 자꾸만 생각났기 때문이다. 비참한 마음에 미동도 없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퍼뜩 일어나 집으로 가는 . 혼자 울고 혼자 위로하고 혼자 체념하는 뒷모습. 문득 심난했던 어느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는  말고는 달리   있는 일이 없던 내가 생각났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저절로 꼬이는 . 내가 어떻게 바꿀  없는 . 나를 해치려 덤벼드는 . 때론  잘못이 나에게 있더라도 말이다.
오늘  노인은 그런  때문에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길바닥에 앉아 소리 없이 끅끅 울었어도 내가 작은 단지 한 바퀴 돌기도 전에 훌훌 털고 일어나 집으로 가는 씩씩한 뒷모습을 보여줬다. 매일 저녁 단지를 걷는 나의 뒷모습도  노인처럼 씩씩하고 명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다래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