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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더밍 Jul 24. 2020

안분지족의 자세

분수에 맞는 소비가 얼마나 나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지!

그러니까 그 날은 부쩍 돈이 쓰고 싶은 날이었다. 설 명절 상여금과 월급이 함께 들어와 어느 때보다 주머니가 빵빵해졌고 복지포인트도 새해를 맞아 갱신되었으니 성난 민원인이 억지를 부려도 내 기분을 좌지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돈 쓸 곳이 많은 도시가 아닌가! 적어도 이곳에서의 나는 밖에 나가 커피 마시러 나가는 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다! 나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나는 좁은 사육장을 벗어난 동물 마냥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저녁 시간에 잠깐 사무실을 빠져나와 카페에서 티라미수를 밥 삼아 푹푹 퍼 먹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이 돈으로 뭘 해볼까. 일단 다른 사람을 위해 쓰고 싶지는 않았다. 작년은 승진과 결혼을 해치우고 올해는 근무지를 옮기는 대박을 터트리며 마음고생이 심했으니 이 돈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엄두도 못 냈을 뭔가가 하고 싶어 졌다. 아, 생각났다. 마사지!


전에 살던 시골에는 마사지샵이 두 곳 있었다. 한 곳은 소위 군수 사모가 다니기로 유명해 중장년층 여공무원 계장급들이 많이 찾아서 나는 다닐 수가 없었다. 다른 한 곳은 젊은 쌍둥이 자매가 운영하는 곳으로 내 또래 손님들이 많았다. 나는 1회 3만원 피부마사지를 주로 받았는데 얼굴과 어깨, 목, 가슴까지 해주는 구성이라 의도치 않게 상반신을 드러내야 했다. 문제는 개인방이 아니어서 누군가 마사지를 받다 눈을 뜨면 내 가슴을 볼 수도 있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워낙 좁은 동네라 마사지를 받다 목소리가 익숙하다 싶으면 직장 동료인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관리사의 물음에 답하다 보면 누군가 나를 알아챌 것만 같았다. 내 민낯을 보이는 것도 달갑지 않은데 하물며 맨 몸이라니!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선결제한 30만원을 다 쓴 이후에는 다시 걸음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하다. 여기에 나를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더욱 신난 나는 맘 카페와 인터넷 검색을 병행하며 한 곳을 찾았고 그날 저녁 9시에 바로 전신 마사지 예약을 했다. 기왕 하는 거 비싼 마사지를 받고 싶었다. 결혼 전 고민 끝에 관리를 받겠다 마음먹었는데 시골에는 웨딩 관리해주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낙담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후다닥 사무실로 돌아가 밀린 업무를 바쁘게 정리하고 마사지샵으로 향했다.


어둑한 간접조명과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게에서 친절한 사장님을 만났다. 조용히 마사지를 받고 싶다는 나의 요청에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너무 편안했다. 처음 받아보는 2시간의 전신 마사지는 긴장을 풀고 편안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 나른한 기분으로 "정말 좋네요"라고 짧게 평한 뒤 상품에 대해 자세히 묻지도 않고 "오늘 코스로 해주세요" 하고 100만원 회원권을 끊고 곧장 나왔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마치 커리어우먼이 된 것 같아 이 맛에 돈을 버는가 보다며 혼자 킥킥댔다.  


문제는 다음 마사지부터 시작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받으면 좋다고 다음 예약을 묻는 사장님의 문자에 내가 선뜻 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간의 통장 잔고에 취해 긁었던 회원권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후회가 스멀스멀 피었다. 일 핑계를 대며 예약을 미뤘다. 마사지 받는 2시간이 10만원의 가치가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내 시급이 얼마였더라. 이 돈이면 내가 옷을 몇 개 사겠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랑 케이크는 또 어떻고! 


몇주를 복잡한 마음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환불을 요청했다. 다행히도 별다른 다툼 없이 바로 환불처리를 해주셨다. 나는 이에 더욱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으며 연신 고개를 숙였고 환불처리를 한 뒤 차에 돌아와 탈진할 것 같은 얼굴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저지른 과소비가 얼마나 나를 괴롭게 했는지를 생각했다. 내 돈이지만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를 괴롭게 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종 필요하지 않은 일에 돈을 쓰고 싶어 안달인 내가 나타난다. 그때마다 이 일을 생각한다. 성급한 결정이 얼마나 나를 괴롭혔는지. 그러면 나는 지갑으로 향하는 손길을 잠시 거두고 이것이 진짜로 필요한 소비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나의 가장 후회했던 쇼핑은 이제 나의 슬기로운 소비생활의 중심축으로 남았다. 이렇게 보면 후회라는 경험이 꼭 후회로만 남지는 않는 것 같다. 아, 오늘도 신기하다. 산다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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