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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더밍 Aug 11. 2020

ㅎ과 나의 공간

타지 생활을 하는 내향적인 성향의 나는 좀처럼 인간관계를 넓히지 않고 있다. 감정적으로 힘이 부치는 날에 전화하며 이야기 나눌 친구들이 여럿 있고 최근에는 타인에게 털어놓기보다 자신에게 시간을 주는 쪽이 한결 효과적임을 알게 되어 인간관계를 넓혀야 하는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선을 넘어 내게 베푸는 호의는 언제나 귀하고 고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순수한 친교를 목적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일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게 ㅎ이 그런 사람이다. 경계가 매우 심한 회사에서 활짝 웃으며 잘 지내보자는 인사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직도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구나. 나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최대한 담백하게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미소를 가장한 사기꾼들도 많으니까. 그러나 ㅎ은 내 우려와는 달리 퍽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정기적으로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서도 웃으며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 말해주었고 매일 한 시간 일찍 퇴근해서 미안하다며 종종 커피를 선물하기도 했다. 호의를 호의로 알고 고마운 일에 보답까지 하는 사람이라니!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 영혼의 탈진이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분명 내게 호의적인 사람인데 나는 ㅎ이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나면 급격하게 피로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건설적인 대화에는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경청, 둘은 공감, 셋은 조언이다. 다들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란 고역인 것들이다.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며 적절한 타이밍을 아는 감각까지 겸해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사실상 이 대화는 무용한 것으로 본다. 티끌만큼의 유용함을 굳이 찾자면 이런 대화는 앞으로 하지 말아야겠구나, 이제 자연스럽게 입을 닫아야 할 순간이구나, 정도.



ㅎ은 세 가지 조건 모두를 깡그리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다정한 마음만 있을 뿐 그 방법이 너무나도 잘못된 사람. 더욱 심각한 것은 본인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오히려 너무나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질리도록 똑같은 패턴이었다. 

  1. 내가 이야기를 한다. 

  2.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왜 그렇게 생각하냐며 그냥 하면 될 일을 너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한다. (지적질)

  3. 세상에는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으며 그 일은 앞으로 닥칠 일들에 비해 아무 일도 아니니 그냥 받아들여라. (조언을 빙자한 강제)



ㅎ과의 대화의 공간에서 공감받고 싶었던 나는 ㅎ의 질책에 자꾸만 말을 잃어버린다. 피곤함만 쌓여 최대한 빨리 도망가고 싶을 뿐이다. 말없이 듣고 있는 나를 보며 ㅎ은 들어주는 내가 좋은지 자꾸만 더 다정해진다. 자꾸만 자신의 방식으로. 나를 파괴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좁히려는 ㅎ과 그 간극 사이가 괴로운 나는 우리의 공간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속 시원하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ㅎ은 감당할 수 있으려나. 호의와 다정함에 약한 나는 ㅎ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자꾸만 나의 방식으로 ㅎ을 고치고 싶어 진다. 서로의 요구 속에서 싸우고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공간은 진화할 수 있을 텐데. 과연 그 진화의 고통을 나는 겪고 싶은 걸까. 도전했다 실패하면 괜히 마주치기 껄끄럽기 십상인데. 



고민이 된다는 건 확신이 없다는 뜻이다. 이래도 저래도 엇비슷할 때 우리는 고민을 한다. 그 말은 결국 내게 ㅎ과의 공간을 진화하려는 확신이 없다는 말일 테다. 그렇다면 지금의 선택은 보류다. 일시 정지. 확신이 생길 때까지의 잠시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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