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리 내놔', 라는 무시무시한 옛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어느 산골에 오랫동안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사는 처녀가 있었다. 어느 날 지나가던 도사가 처녀에게 하는 말이 “장사 지낸 지 삼 일이 되지 않은 시체의 다리를 푹 고아 먹이면 병이 낫는다.”라고 했다. 그래서 처녀가 밤에 산에 올라가 무덤을 파고 시체의 다리를 잘라 집으로 돌아오는데 시신이 계속 “내 다리 내놔!”라고 하면서 따라왔다. 집에 오자마자 끓는 물에 다리를 집어넣고는 기절했는데, 깨어나서 보니 산삼 뿌리였다. 그 물을 달여 마신 노모가 병이 다 나았고, 다시 그곳에 가보니 뿌리가 반이 잘린 산삼이 있어서 처녀와 노모는 그걸 팔아서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
처녀의 효심이 노모도 구하고 집도 일으켰다는 효행 담이다. 그런데 보름달이 훤한 달밤에 무덤을 파는 모습이나 다리를 자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무시무시하다. 꼭 여우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무덤을 파헤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여튼 노모의 병도 낫고 집안도 벌떡 일으켜 세웠으니, 산삼의 위력이 대단하다.
이야기 중간에 도사가 나온다. 과연 이 도사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또 그런 명약 처방을 내리고 말없이 사라지는 도사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약방에 가거나 약 처방을 받기가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니 자연 주술적 힘에 의지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야기 속으로 불러온 사람이 바로 도사나 산신령이다. 어떤 이본에서는 도사나 산신령이 아니라 스님이 나타나기도 한다.
옛이야기가 전해주는 내용을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사실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어려운 일에 대한 처방이 사실은 존재한다. 병든 노모를 치유하는 방법도 알고 있고,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는 방법은 무용지물이다. 아마도 산삼이라면 어머니의 병이 치유된다는 사실을 처녀는 잘 알았지 싶다. 그러나 산삼이란 명약은 보통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은 아닌 귀물. 도사가 나타나서 산삼이 치유법임을 한 번 더 알려주었고, 처녀는 그 말을 믿음과 동시에 실천하는 용기를 내어서 산삼을 캐러 다녔다.
오밤중에 산속에 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무덤을 열어서 시체의 다리를 잘라 와야 한다면 웬만한 담력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다. 그것도 처녀의 몸으로 그곳을 간다니 더더군다나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처녀는 도사의 말을 확신했고, 산삼을 찾기 위해서 온 산을 헤집고 다녔다. 온종일 산삼을 찾아 무덤 사이를 헤매는 처녀를 보면 틀림없이 구미호나 귀신으로 여길 것이다.
귀신이 ‘내 다리 내놔!’ 하면서 쫓아올 정도로 어떤 일을 도모한다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을 목숨을 내놓을 만큼 사랑할 일이다. 그런 정성이라면 귀신이 쉽게 다리를 내놓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