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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Mar 16. 2024

망상어와의 인연

  어린 시절 나는 낚시를 무척 좋아했다. 동네 문구점에서 조립 낚시라는 낚시 세트를 사서 대나무에 묶어서 붕어를 제법 낚았다. 월급쟁이가 된 후에는 릴낚싯대를 사서 바다낚시를 다녔는데, 언제부턴가는 낚시를 그만두었다. 시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낚시 한 번 가자면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제대로 고기를 잡아본 적은 없는데, 어느 땐가 포항의 구룡포 쪽으로 낚시를 갔다가 망상어를 걸어 올린 적이 있었다. 망상어가 거기서 거기지만, 제법 큰 놈이었다. 바늘을 빼려고 녀석을 잡았는데 아래쪽으로 새끼가 줄줄 흘러내렸다. 순간 깜짝 놀라서 녀석을 도로 바다에 넣어준 게 아마 마지막 낚시였지 싶다.


  『송와잡설』에 용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만력(萬曆) 병술년(1586) 겨울에 여강(驪江)에서 어부가 얼음을 깨고 잉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 크기가 두어 자나 되었다. 짊어지고 집에 돌아왔더니, 그날 밤에 고기가 주인의 꿈에 나타나, “부디 나를 놓아주고,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주인은 괴이하게 여겨 삶아 먹지 않고, 이웃 사람에게 팔아 버렸다. 이웃 사람의 꿈에도 또한 그러하였으나, 이웃 사람은 놓아주지 않고 마침내 잘라서 삶았다. 그런데 그 국을 한 종지라도 맛을 본 사람은 누워 앓지 않은 이가 없었고, 6~7일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일어났다. 아! 고기의 신이 능히 어부의 꿈에 급한 신세는 알리면서, 얼음 밑의 낚싯바늘은 피하지 못하였고, 또 국 먹은 사람에게 병은 줄 줄은 알면서 식탐 있는 사람에게 삶김은 능히 면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신으로서도 궁(窮)한 바가 있고 지혜로는 미치지 못함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안쓰럽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기의 신'이다. 크기가 두어 자라고 하니 족히 6~70센티미터는 되는 큰 잉어다. 고기의 신이라 하더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법, 먹이를 먹었는데 그것이 낚시의 미끼였다. 누구나 한 번 실수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실수가 치명적이라면 돌이킬 수 없다. 아마 고기의 신도 한번 만에 낚시에 걸린 것은 아니지 싶다. 어부도 몇 차례 헛챔질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콤한 미끼의 유혹에 빠진 고기의 신은 졸지에 평범한 잉어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물에서는 자신이 다른 물고기의 추앙을 받는 신이라 하더라도 뭍에서는 그저 평범한 물고기일 뿐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서 신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부의 입장이 되어보자. 고기의 신이 꿈에 나타나서 제발 살려달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고기를 팔아 버린 어부의 강단이 대단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방생할 테지만 이 어부는 그 물고기를 팔았다. 자세히 보면 어부가 잉어를 쉽게 잡은 것이 아니라 얼음을 깨고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잡았다. 고생하며 잡은 고기였으므로 살려주기는 뭣해서 다른 이에게 책임을 넘겨버렸다. 고기를 산 사람의 꿈에도 고기의 신이 나타났지만, 그는 그런 꿈을 무시하고는 삶아 먹어버렸다. 큰 고기였으니 제법 많은 돈을 주었을 것이고, 자신이 잡은 고기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산 고기였으니 무슨 탈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먹기는 께름칙하기도 해서 주변 사람들을 불러 꿈 얘기를 하면서 고기의 신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는 맛있게 잉어탕을 먹어버렸다. 


  고기의 신이 잉어탕으로 고아진 것은 이제 누구의 책임도 아닌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냥 잉어를 한 마리 잡아서 잉어탕을 먹었고, 그냥 운이 좋지 않아 배앓이하고는 지나쳐 버렸다. 고기의 신보다는 사람들의 식욕이 한 수 위가 된 형국이다.

  그때 놓아준 망상어와 새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능에 낚시를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나 본데, 망상어와의 인연으로 좋아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화면 속 사람들은 아무런 책임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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