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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Mar 19. 2024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김현감호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낌새가 수상하거나 미심쩍은 기분이 느껴질 때 하는 말이다. 형사들이 용의자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냄새를 잘 못 맡는다. 비염이 좀 심했는데, 방치했더니 그만 후각을 잃어버렸다. 맛있는 커피 향도 갓구운 빵의 구수한 냄새도 느끼지 못한다. 남들은 “별일 아니다,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잖아.”라고 하지만, 후각이 없으면 미각도 서서히 사라지는 법. 언젠가는 맛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삼국유사』 감통 제7편에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신라의 화랑인 김현이 탑돌이를 하다가 어느 여인과 눈이 맞았고 그 여인과 정을 통한다. 그리고 여인이 가는 곳을 따라가 보았더니 웬 노파가 살고 있었다. 잠시 후 호랑이 세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오더니 "집에서 비린내와 누린내가 나니 요기 해야겠다."라고 하자 노파가 꾸짖었다. 그때 하늘에서 "너희들이 남의 생명을 빼앗기를 좋아하니, 한 놈을 죽여 징계하겠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여인은 세 마리의 남자 형제 호랑이를 도망가게 하고, 자신이 내일 저자에 나가서 사람을 해칠 것이니 김현에게 자신을 죽이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다음날 여인은 호랑이로 변해 사람들을 해쳤고, 원성왕(신라 38대)은 호랑이를 잡는 사람에게 2급의 벼슬을 주겠다고 했다. 김현은 호랑이를 쫓아갔고 여인으로 변한 호랑이는 김현의 칼로 자신을 찔렀다. 호랑이는 죽기 전에 발톱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고 나팔 소리를 들으면 나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김현은 등용된 후 서천(西川)가에 호원사(虎願寺)라는 절을 세우고 호랑이의 명복을 빌었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 감통 편에 나온다. 감통(感通)이라는 말은 부처에 대한 신앙심을 다룬 이야기다. 김현이 탑돌이를 했다는 말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는 말이다. 그런 그가 탑돌이를 가서 여인을 만나 정을 통한다는 말은 현재에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해서 되지도 않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드라마를 드라마로 이핼 못 해요, 진짜!”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정을 통한 부분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가 부처님에게 감동을 줄 만큼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자. 그래서 김현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 하자 하늘에서 부처님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김현을 살린다는 이야기다. 또한, 불심이 강한 호랑이가 인간을 도와주는 변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차 말하지만,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진심이 있다. 호랑이 형제들이 집으로 와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집에서 비린내와 누린내가 나니 요기했으면 좋겠다."라는 부분이다. 인간의 냄새, 그것도 부처님을 극진하게 믿는 화랑에게서 '비린내'와 '누린내'가 난다고 호랑이들이 지껄인다. 다른 이도 아니고 살생을 밥 먹듯 하는 호랑이에게서 듣는 말치고는 어째 좀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실제로 인간에게서 '비린내'와 '누린내'가 진동했을 리가 있을까마는, 이 이야기를 지은 이는 인간의 속내에 대해서 그렇게 빗대어 느꼈을 것이다. 비린내는 주로 바다의 생선이나 강의 물고기에게서 나는 비위에 거슬리는 냄새이고, 누린내는 육지 동물에게서 나는 역한 냄새가 아닌가. 호랑이가 맡은 비위에 거슬리고 역한 냄새가 바로 인간을 뜻하니, 인간이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한지 잘 드러내는 말이라 하겠다.


  다행히 얼마 전 비염에 좋다는 코 수술을 해서 얼마간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향기가 먼저 코로 들어오면 좋겠지만, 비린내와 담배 냄새와 같은 것들이 제일 먼저 코를 통해 들어오고 누린내도 들어오니 코 수술을 괜히 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꽃향기, 과일 향이 코끝으로 들어올 때는 역시 돈을 들여서 수술을 잘 받았다는 마음이 앞선다.


  고기의 누린내와 비린내를 잡기 위해 아내는 식초를 사용하기도 하고 어떨 땐 소주를 사용하기도 한다. 인간에게서 나는 비린내와 누린내는 속을 정화 시켜야만 잡을 수 있다. 시를 읽고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의 향이 다소 향긋해지긴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돈 냄새가 나는 곳을 기웃거리니 호랑이에게 제일 먼저 먹히지 않을까 두렵다.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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