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리고 딱따구리와의 만남
지난 주말 우리 집에는 불청객 하나가 찾아왔다. 바로 독감이었다. 아이가 심한 기침과 함께 40도가 넘는 고열에 빠졌던 것. 아내는 종일 아이 곁에서 약을 챙겨주고 체온을 낮추느라고 고생을 했었다. 지난 주말을 간호하면서 보냈던 아내가 내게 물었다. "여보, 이번 주말에 뭐 할까?" 주말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지난주 집에 머물다가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붉은 가을 풍경을 보면서 아내와 함께 힐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나는 "가을색 가득한 자연휴양림이 있는데, 한 번 가볼래?"라고 답했다. 아내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떠난 곳이 가평에 있는 유명산 자연휴양림이다. 내가 유명산을 알게 된 것은 대학시절 바로 이름의 유래 때문이었다. 좀 황당한 히스토리가 있어서 기억이 오래 남는 그곳. 원래 유명산은 주변에서 말을 길렀다고 해서 마유산(馬遊山)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1973년 엠포르 산악회라는 곳에서 국토 자오선 종주 등산을 하던 중에 이 산의 이름을 찾지 못한 것. 주변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산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일행 중 홍일점이었던 젊은 여성 '진유명'의 이름을 따서 '유명산'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종주기가 일간스포츠라는 신문에 기재되면서 대중들에게 그렇게 불러졌다는 것. 사실 마유산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이 산을 가평의 유명산으로 부르고 있다.
서울에서 유명산 자연휴양림까지는 주말이라서 그런지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휴양림 입구에는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곳'이라는 근사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서울에서 멀지 않아서 그럴까? 이미 휴양림 주차장은 가을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자동차로 빈 공간이 많지 않았다. 중간쯤에 주차를 하고 차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공기가 남달랐다. 가을을 담은 상쾌하고 시원한 숲 내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유명산 가을 숲에 온 것이었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니 낙엽이 가득한 가을 숲이 있었다. 하늘로 길게 뻗은 나무가 있는 숲 속 교실과 가족 놀이터였다. 몇몇 가족들이 테이블에서 간단한 도시락을 먹으면서 함박 웃음꽃을 터뜨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나와 아내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한 손을 꼭 잡고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그 옆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몇몇 아이들은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맑은 물과 졸졸 흐르는 물소리, 아이들이 웃음소리가 잘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이미 낙엽들이 개울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가을의 정취가 가득해 보였다.
휴양림 안내 표지를 보니 유명산 자연휴양림은 2개 지구로 나눠져 있는 듯했다. 입구 쪽에는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개방형 시설을 만들어 놓았고 숲 속의 집이나 연립동은 안쪽으로 배치하여 이용객들이 조용하게 숲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놓은 듯했다. 안쪽으로 가는 길은 차량 통제를 해서 예약객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듯했다. 아내와 나는 휴양림의 끝 쪽에 있는 숲 속의 집까지 데이트를 하면서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왕복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였다.
가는 길에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야영장이었다. 이미 몇몇 분들이 전나무 숲 속의 야영데크에서 텐트를 펴고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캠핑용 의자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자연을 음미하는 표정이 참으로 부러웠다. 야영장 뒤편으로는 길게 이어지는 나무 데크가 있었는데 산책길로 최고였다. 오전 9시부터 17시까지 개방한다고 하니 연인이나 가족들과 나들이 떠난다면 꼭 한 번 들려볼 만하다.
야영장을 지나서 다시 길을 걸었다. 여기부터는 일반인 차량 통제되는 곳이다. 휴양림을 예약한 차량만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산책로 주변에는 웅장한 유명산 계곡이 흘렀는데 수량이 상당했다. 중간에는 웅장한 계곡물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계곡 주위로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와 노란색의 낙엽송이 이어졌는데, 그 어울림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화려한 수채화 물감을 산 위에 그대로 뿌려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자연이 만든 가을이라는 수채화였다. 멍하니 그 모습에 취해서 연신 핸드폰의 카메라 렌즈를 여기저기로 옮겼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나 또한 웃음이 나왔다.
조금 더 올라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왼쪽은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숲 속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왼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유명농계라고 근사한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가평 8경 중 제8경으로 지정되어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인데,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자주 거니는 곳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곡길을 포기하고 숲 속의 집을 향해서 이동했다. 이제부터는 경사도가 꽤 있었다. 산책이라고 하지만 등산 느낌이 조금 났다. 사실 이곳에는 숲 속의 집까지 데크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있는데, 현재는 폐쇄된 상태! 시설이 노후되고 위험하여 출입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길을 걸으려고 왔는데 너무나 아쉬웠다. 하는 수 없이 차도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숨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경사도가 만만치 않았기에. 쉬엄쉬엄 올랐다. 오르막길이 끝날 무렵 제1산림문화휴양관이 나타났고, 조금 더 걸으니 제2산림문화휴양관이 나왔다. 2 휴양관은 최근에 새로 지은 듯한 느낌. 고급 펜션과 같은 느낌이었다. 휴양림의 가장 위쪽에서 있어서 뷰도 상당히 좋았다. 유명산 자연휴양림의 예약이 어렵다면 이곳에 공략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다음에 꼭 한 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지나니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그 얘기는 반대로 올 때 다시 오르막길을 만나야 한다는 것. 여러 생각이 교차를 했다. 순간 아내의 표정이 조금은 달라지고 있었다. 산책을 기대했는데 산행이라니.
얼마를 더 걸었을까? 이제 숲 속의 집들이 저 멀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 숲 속에 싸여있는 아담한 숲 속의 집들. 기대 이상으로 예쁜 집들이었다. 오래전 유행했던 통나무 집의 모습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유명산 자연휴양림에는 총 12개 동의 숲 속의 집이 있다고 한다. 3인실인 오두막 A와 오두막 B, 4인실인 뻐꾸기와 산까치, 소쩍새, 종달새, 그리고 6인실은 꾀꼬리, 까치, 다람쥐, 청솔모, 박새, 가장 큰 비둘기는 8인실이다. 이번에는 예약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한 번 도전해 볼 만한 풍경이었다. 특히 휴양림 바로 앞쪽에는 멋진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일반 방문객은 이용할 수 없는 예약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계곡이었다. 한 여름에 아이들과 물놀이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계곡은 없을 듯했다.
휴양림과 계곡을 둘러보고 오는 길에 아내가 뭔가를 찍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딱따구리였다.
유명산 계곡에서 만난 딱따구리. 사실 나와 아내는 숲에서 나무공사를 하는 모습을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딱따구리였다. 실제로 가까이에서 딱따구리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오래전에 만화영화로 딱따구리를 본 적은 있는데, 이제야 제대로 본 실물 딱따구리를 영접한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풍경이었다. (동영상 참조)
나와 아내는 2시간 동안 유명산 자연휴양림의 가을을 즐겼다. 이번 가을에 만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울긋불긋한 산속에서 즐기는 여유도 좋았지만 유명산 딱따구리를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다는 사실. 또 한 번 자연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행복을 선물해 주었다. 행복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