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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유 Jan 30. 2023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첫 번째 달리기

pictured by Gerd Altmann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피니시라인까지 오래 달려야 하는 장거리 게임 같은. 이 달리기에서 마흔은 어느 구간쯤 될까? 나라에서는 생애전환기란 이름을 붙여주었으니 말 그대로 터닝포인트를 지나는 것일 게다.


어느 날 생일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네 개의 기다란 초가 반쯤 녹아 꽂혀 있는 케이크 뒤로 바람 빠진 풍선맨 같은 내 얼굴이 클로즈업되었기 때문이다. 보고 있자니 덜컥 미혹이 몰려온다.


'옷을 사야지!'

이 눅눅한 무력감을 예쁜 치장을 통해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 같은 것이었다. 불혹이 아닌,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미혹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했다. 쭈뼛거리던 난 가장 만만해 보이는, 트레드밀에 올라섰다. 그리고 천천히 속력을 높여가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호흡은 마스크를 먹어 치울 기세인 데다 온몸은 중력의 법칙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계속 늘어져만 갔다.


순간, 하루에 여섯 시간씩 걸으며 트레드밀이라 불린 이 거대한 바퀴를 돌렸다는, 옛적 영국의 죄수가 떠올랐다. 내 죄명은 무엇일까? 생각 끝에, 난 식탐을 다스리지 못한 죄명을 달아 트레드밀 6개월 형을 선고한 후 제자리에서 뛰고 또 뛰었다.


pictured by Sasin Tipchai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죄수의 먹구름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에 기분 좋은 울림이 채워졌다. 제자리 뛰기가 그간 옥죄고 있던 내 마음을 석방시킨 것이다! 어느덧 난 나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비록 겉으로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했지만, 그 대신, 내 안으로 한걸음 더 깊이 안착했다.


이렇듯, 누구나 한 번쯤은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부정적 감정과 패배감을 떨쳐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땐 먼저 숨을 고르고 한 걸음 한걸음, 제자리걸음부터 시작하면 된다. 아픈 부위는 보듬어주고, 내 모습 그대로 나를 감싸 안으며 뛰다 보면, 가빴던 호흡은 점차 평온해질 것이고, 우린 어느새 터닝포인트 저 너머 피니시라인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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