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달리기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체코의 마라토너, 에밀 자토펙의 말이다. 5킬로미터 마라톤 완주의 기쁨이 사그라질 무렵, 우연히 커플 마라톤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결승선에 함께 들어오는 것이다. 대회 당일 우리는 부부의 화합에 이 마라톤이 기여하는 바에 대해 시부모님께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과감히 두 아이를 맡기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상하다... 너무 오래가는 거 아냐?”
그런데 서울 토박이라며 자신 있게 길잡이 역할을 자처하던 신랑의 얼굴이 일시에 어두운 그림자로 휩싸였다.
“미안, 역방향으로 탄 것 같아.”
출발한 지 30분이 훌쩍 지났을 때의 일이다.
허둥지둥 행사장에 도착했을 땐 '런 투게더'라 적힌 플래카드만이 그곳이 출발 지점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얼렁뚱땅 달리는 본새를 취하며 출발했지만 평소 장이 약한 신랑은 그 와중에 또 화장실이 급하단다. 생리현상을 어찌하랴 싶지만 중요한 순간이면 어김없이 화장실을 찾는 신랑을 흘겨보며 그를 간이 화장실에 남겨둔 채 먼저 달려 나갔다. 커플마라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이렇게 각자의 러닝이 시작되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터닝 포인트를 찍고 돌아올 무렵 갑자기 꽤 쓸만하다 자신했던 무릎이 아파왔고 나는 달리기는커녕 더 이상 걷기도 힘든 절뚝발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뒤에서 허둥지둥 쫓아오던 신랑은 내가 밉지도 않은지 나를 부축하며 보폭을 맞춰 주었다. 나는 그제야 속도를 한 템포 줄이고 천천히, 나의 러닝메이트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런 투게더, 스테이 투게더.
결국 우리는 피니시 라인을 단 일초의 차이도 없이 동시에 밟았는데 더 놀라운 건 순위도 아주 하위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시작은 삐걱댔지만 내 골골한 무릎 덕분에 커플 마라톤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다고나 할까?
인간이 동물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더 강한 건 함께, 더 오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지금껏 혼자 바쁘게 달려왔다면 잠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요란하지 않아도 묵묵히 곁을 지키고 있는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가? 불어오는 바람과 눈부신 햇살을 함께 느끼고, 달릴 때의 괴로움도 한 마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 이들이 있기에 때때로 마주하는 우리네 피할 수 없는 고통이 희망으로 승화되는 건 아닐까.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함께, 그리고 더 오래,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