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삼 Feb 06. 2022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

한 글자 에세이 - 애(愛)

여느 날처럼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을 들렀다가 기록문학 신간 코너에서 <아무튼, 아이돌>을 발견했다. 이제 한 손으로도 넘길 수 있는 아담한 크기와 넓은 여백의 띠지만 봐도 ‘아, 아무튼 시리즈 책이구나.’ 하고 자연스레 집어 들게 된다. ‘오늘은 진짜 딱 한 권만 빌리려고 했는데..’ 이미 손에 든 책이 세 권을 넘어간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근원과 정의를 묻는 인문학 책만 읽기엔 삶이 너무 팍팍하지 않은가. 스스로 다독이고서 독서에도 치팅데이가 필요하다며 뻔뻔히 옆구리에 끼워 넣었다.


'아이돌'이란 무엇인가. 이미지나 형상을 뜻하는 라틴어 '이돌룸(idolum)'에서 유래되었으며 주로 종교적인 우상을 말한다. 환상을 만들어내는 21세기의 신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더 이상 나열하면 치팅데이조차 즐기지 못하는 인문학도가 될 테니 그만하도록 하겠다.


나는 누군가의 팬은 아니지만 아이돌이라는 존재를 사랑한다. 물론 나 또한 학창 시절에 특정 색깔을 고집하며 그 색에서 빼어져 나오는 빛깔이 곧 나의 자랑이고 정체성인 것 마냥 휘두르고 다녔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팬이라고 할 만큼의, ‘덕질’을 하고 있다고 말할 만큼의 사랑은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가수를 불문하건 그들이 가진 순간의 반짝임 같은 것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희화화되고 있는 ‘엔딩 포즈’ 같은 것들은 사실 아이돌이 카메라 밖에서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렌즈에 각자 시켜 미세한 떨림과 호흡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요즘은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리허설을 들어가기 전에 이미 '지정'하고 들어가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 찰나를 발견하는 순간 이른바 ‘덕통사고’에 치여 현생을 ‘덕생’으로 살아가기도 하고 나라는 사람은 노련함이 가득 담긴 몸짓과 울림에 존경심을 표하며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최초로 아이돌이라고 인식한 가수를 뽑자면 ‘이정현’인 것 같다. 이정현은 아이돌로 분류하는 것보다 솔로 가수로 부르는 것이 보편적이다만 그가 마이크를 새끼손가락에 끼운 채 커다란 부채를 들고 무대를 압도하는 모습은 유치원생이었던 나를 알루미늄 포일을 새끼손가락에 끼우고서 부채춤을 추게 만들었으니 이보다 더 아이돌스러울 수가 있을까. 이정현은 지금 봐도 너무나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만들어냈다.(오랜만에 보러 유튜브에 들어갔다가 어느새 10분이 사라지고 있다.) 그가 세상을 바꾸자고 사랑을 바꾸자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성인이 된 나는 새벽 커피를 들이키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는 테크노 여전사가 아니라 테크노 전사이고 이집트 여왕 같은 미모의 소유자가 아니라 이집트의 왕 같은 곧은 기개와 눈부신 장악력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이처럼 나는 자신의 일에 끊임없는 열정을 가지며 숙달된 사람에게 큰 존경을 지닌 사람인지라 그런 반짝이는 모습들을 보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1년 전 5년 전 10년 전의 노래가 흘러나와도 흐트러짐 없는 몸짓과 독기 가득한 눈으로 화면 너머의 나를 응시하는 순간 나는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주변이 섬광처럼 스며든다. 그러고서 결국 깨닫는 것은 사랑이 없는 삶은 너무나 무용하고 정말로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사랑의 치료 약이 없다는 것뿐이다. 



이 어그러진 세에서 언제나 가장 순수한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사랑을 하게 된다. 이유 없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 추억은 불의 손을 잡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