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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삼 Mar 03. 2022

내가 이름을 가질 수 없는 날

한 글자 에세이 - 명(名)

언어는 소유지향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인자이다.
사람의 이름은 그것이 불멸의 본질이라는 그릇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이름은 있지만 이름 없는 가수들의 경쟁 프로그램을 보았다. 일정 순위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무대를 떠나는 'N호 가수'가 된다. 결연한 눈망울과 떨리는 숨의 공백을 온전히 받아내도 나는 그의 이름을 알 수조차 없다. 기본적인 이름조차 알 수 없다는 것, 부캐가 많아진다는 것은 내가 지워지는 일일까 내가 많아지는 일일까. 타인에게 없는 존재가 되거나 무수히 많은 존재가 되는 세상에서 나는 내 이름 하나 갖는 것이 가끔은 지친다.


확인하고 증명하고 승인하고 측정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나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행과 열로 직조된 도서관의 거대한 유리창 안에서, 해의 움직임만큼이나 천천히 달려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손에 시선이 머문다. 네모난 공간을 이용하는 모든 인간이 네모난 스마트폰을 들고 네모난 기계 사이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삑- 승인되었습니다. 삑- 삑- 백신 미접종자입니다.' 기계는 바코드를 들이미는 사람을 어떻게 분류할까. 흑과 백의 점과 0과 1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나는 가끔 내 이름도 써내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만 같다.


인문 잡지 한편 4호 <동물>편에서 안락사를 앞둔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는 일화가 나온다. 사계의 이름을 붙이고 빛깔의 이름을 붙이고 모든 음식과 사물의 이름을 붙이고 붙이다가 차마 하나뿐인 아이에게 동일한 이름으로 부를 수가 없어서 늘어지는 죽음 앞에 결국 숫자를 붙인다. 숫자는 그토록 무한하면서 "3000만큼 사랑해"같은 사랑은 느낄 수가 없다. A01-220303779 번째의 죽음보다 흔하디흔한 초코와 나비의 죽음이 언제야 서글프지 않던가.


빨간 손 도장이 찍힌 배구공보다 '윌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구공이 바다에 떠내려가는 게 더 가슴 아픈 이유는 내가 그 공을 소유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 이름을 가질 수 없는 날, 내가 세상에 소유되지 못하는 날 나는 조금 슬플 것이고 조금 인간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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