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드 Jun 05. 2020

카멜레온의 버릇

때로는 길을 잃고 눈만 희번덕대는 카멜레온들이 있다



해가 기울자 갱엿처럼 길게 늘어붙던 시간이 딱 멈춘 것 같았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훅훅 끼치는 열에 온몸이 찐득거렸다. 나는 선풍기를 틀고 입고 있던 면 티셔츠를 말아올려 맨등을 바짝 가져다댔다. 답답하게 조이던 속옷 후크를 풀자 고였던 땀이 시원하게 말라왔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 선풍기 날개에 붙어 있던 먼지들이 같이 날려댔다. 탈탈탈탈 푸들푸들. 올해도 이렇게 에어컨 없이 지나가나보다. 이불 속에서 군밤 몇 개 까고 있자면 겨울은 그렇게도 빨리 굴러가더니만, 이놈의 여름은 가도 가도 끝날 기세를 안 보인다. 나는 대자리 위에 벌렁 드러누워 한낮의 일을 무심히 생각한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구석 자리에 앉아있다 열심히 손을 흔들던 경숙이를.


“야~! 진짜 반갑다. 요즘 뭐해?”


건성으로 맞장구를 치고, 듣지도 않았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나는 경숙이란 이름이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동네 이모 이름도 아니고 경숙이가 뭐야 경숙이가, 촌스럽게. 별다방과 경숙이가 영 안 어울리는 조합인 건 사실이었다.


“대학 졸업하면 뭐 할 거야?”


정말 궁금해서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나가는 안부 인사처럼. 생각나는 대로 막 물어보지 말란 말이야. 만나자마자 “밥 먹었니?” 하면 외국인은 밥 사달라는 줄 알고 정색할 수도 있단 말이다. 한 두 마디 나누자마자 밑바닥까지 긁어내는 느낌이었다. 주걱을 밥통 사이에 쑤셔넣고 누룽지를 닥닥 긁어내는 것처럼. 안쪽까지 벅벅 파이는 느낌이 꽤 쓰라렸다.


경숙이가 자리를 뜨고 나서도 나는 카페에 앉아 있었고, 나온 지 오래돼 식은 베이글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옆 테이블 사람들은 아메라카노에 얼마만큼의 샷을 추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떠들었다. 샷이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다를 게 뭐가 있어. 원래 쓰던 거 계속 씁쓸하다는 건 변함이 없는데.





“저는 출판이나 방송 쪽을 생각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항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그들은 소심하게 삐져나온 내 말꼬리를 대번에 잘라먹고 “그래? 직무는 뭘로 생각하는데?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하며 득달같이 물어왔다. 아니, 몰아왔다. 풀 뜯던 소떼를 집에 갈 시간 됐다고 정신없이 몰아대는 것처럼. 쏘아붙일 수는 없고 욕은 더더욱 할 수 없어서, 나는 그냥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나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랐으니까.


나의 장래희망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되는 대로 바뀌었다. 도서관에 가서 신간소설들을 구경하던 날엔 출판사에 가고 싶다고 했고, 전날 밤 드라마를 한 편 본 날에는 방송국에 입사하고 싶다고 했다. 애매하게 웃으며 “근데 요즘 어렵잖아요. 다들 힘들어서…….”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반대쪽 머리로 생각했다. 도대체가 힘들지 않고 적성에 맞으면서 즐겁고, 고연봉인 직업이 있을까. 다들 죽지 못해 회사를 다녀야 한다고 했다. 이래 사나 저래 사나 결국은 다 재미없을 텐데. 인생은 고(GO!) 한 방이 아니라 쓰디쓴 고(苦)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는데, 나는 열심히 친구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 말고는 여전히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친구랑은 언젠가 만들 영화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어떤 연예인을 섭외하면 끝내주겠다는 둥의 소리를 늘어놓았다.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과는 적성검사와 직무면접을 함께 걱정했다. 인터넷 쇼핑처럼 취업사이트를 들락거리고, 괜찮은 채용 광고가 있다 싶으면 클릭해 봤다. 장바구니에 취업정보를 잔뜩 쌓아두고, 정작 결제는 하지 않는 인터넷 쇼핑이 반복됐다. 허한 마음이 싫어서 매일 밥을 꾹꾹 퍼담아 뱃속만 가득 채웠다.


넌 뭐가 되고 싶니

나도

몰라요.


탈탈탈탈 푸들푸들. 땀이 흘러서 휴지로 닦아내자 척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질기다 질겨, 질긴 여름. 나는 차라리 교환학생 시절 눌러붙어 있던 미국의 시골이 좋았다. 몇 개월 지내다 뉴욕으로 떠나던 나는 사람들에게 뉴욕으로 간다고 말하는 것조차 민망했다. 난 여행자고 곧 떠날 거야. 시골에서 어영부영 뻗대고 있다가 모든 물건은 정리하고, 친구들과 어색한 포옹 한 번씩을 나누었다. 나머지는 바람에 쓸려가도록 내버려두고, 앉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그곳을 떠났다. 왜냐고? 난 뉴욕에 갈 거니까! 마치 듀안처럼.


몇 년 전 프랑스에서 홍대에 놀러왔던 듀안은 한국에 여행온 김에 중국과 일본도 들를 거라고 했었다. 아 그러니. 뭐라 대꾸해줄 말이 없어서 맥주만 홀짝였다. 여행자는,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은 우리랑 마인드부터가 다른 거야, 마인드가. 나름 심각하게 말하던 경숙의 표정이 우스웠다. 잠시 왔다가 떠나는 사람은 그곳에서 부러움과 동경, 약간의 질투, 그리고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는 건, 지금 있는 곳에서 열심히 살지 않아도 좋다는 아주 그럴 듯한 핑곗거리다.


동물다큐에선 카멜레온이 나왔다. 느리고 단조로운 성우 아저씨의 목소리보다 더 굼뜨게 기어가는 카멜레온이 화면 가득 잡혔다. 뚤레뚤레 눈을 굴리는 모습이 한심했다. 넥타이만 달아주면 꼭 우리 아빠같을 정도로. 카멜레온이 잎사귀 끝에 앉은 벌레를 발견했다. 절호의 찬스를 두고 나는 카멜레온보다 더 긴장했다.

움직여, 지금이야, 지금이라고!

눈을 끔벅이던 녀석이 길게 혀를 내뺐는데도 벌레는 포르르 날아갔다. 뭐야, 시시하게.


시골 학교를 떠나 도착한 뉴욕은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백 년 전에 뉴욕 시를 달리던 마차는 시속 70킬로미터였고, 지금 맨해튼 자동차의 평균 시속은 17킬로미터란다. 때로는 눈이 돌아가는 엄청난 발전 아래서, 길을 잃고 눈만 희번덕대는 카멜레온들이 있다. 다시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고, 눈을 감자 암청색 바탕에 조그만 벌레가 날아갔다. 늘 조금 찌릿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었는데, 오늘은 작은 벌레다. 혀를 쭉 빼서 잡아보려 했지만 벌레가 한 박자 더 빨랐다. 시야 밖으로 사라져 가는 벌레를 나는 멍청히 쳐다보았다.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사는 게 싫었는데, 이젠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살아가는 게 사실 제일 어렵단 걸 깨달았다. 세상이 늘 한 걸음 더 빨랐으니까. 어릴 때 꿈은 다 피아니스트고, 화가고, 좀 큰 꿈이다 싶으면 대통령이었는데. 지금은 다 9급 공무원이고, 대기업 회사원이고, 행정직원이다. 도대체 그 많던 예술가들이랑 위대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릴적 꿈들은 비누방울 속에 들어있다가 옥상 위에서 퐁퐁 터졌나보다. 근데도 웃긴 건 피아니스트도, 화가도, 대통령이란 직업도 멀쩡히 남아있고, 누군가는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왜 꿈을 접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뒷벽 게시판에 걸어놓던 꿈을 버리지도 않고 꾸역꾸역 가져 온 웃긴 사람들.  





여름날의 해는 길다. 아직도 환한 바깥을 노려보다 밖으로 나섰다. 나는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좋아했다. 반듯반듯하고 이지적인 광화문도로 뒤꼍에는 막창집, 소주집이랑, 좁다란 골목을 따라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장이랑, 간판도 없이 허름한 김치찌개집이 질서없이 녹아있었다. 잰체하고 멀끔한 앞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가면같은 곳.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변두리도 아니고, 무려 세종대왕님과 이순신 장군이 떡하니 내려다보시는 곳 근처에 감히 비집고 들어서다니. 패기가 썩 맘에 든다.


횡단보도를 꾸물꾸물 건너는 사람들이 아직도 쨍한 햇살에 곧 녹아버릴 것 같았다. 숨이 훅훅 막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게처럼 빌빌대며 걷던 나는, 순간 눈을 둥그렇게 떴다.


카멜레온이다.


세종문화회관을 지나 광화문역으로 향하는 뒷길에, 거대한 카멜레온이 웅크리고 있었다. 말렸다 풀어지는 꼬리부터 몸통까지만 해도 한참은 돼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에게 놈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카멜레온이 앞발을 천천히 들어올리다 허공에 딱 멈추자, 광화문의 시간이 같이 멈춘 것 같았다.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서 나는 한기를 느꼈다. 가만히 쳐다보자 놈의 눈동자가 한 바퀴 데구르르 굴렀다. 커다랗고 뚜리뚜리한 그 눈과 마주치기 직전, 나는 시선을 돌렸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넌, 왜, 여기 있어?


카멜레온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김치찌개집이 있는 골목길 쪽으로 움직였다. 그게 움직이는 건지 어떤 건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녀석은 이동이란 걸 하고 있었다. 나는 숨조차 멈춘 채 꼼짝없이 녀석을 보고 있었다. 머리가 먼저 골목으로 들어가고, 거대한 몸통이 그늘에 가려지고, 골목 사이를 비집고 숨는 꼬리가 보였다. 몸통이 보도블럭과 똑같은 회색으로 서서히 바뀌더니, 종국에는 스르르 스며들어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꼬리가 스적였다. 마지막 남은 녀석의 꼬리가 아주 조금씩,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한 줌 내리쬐던 마지막 햇살이 천천히 남은 해그림자를 지웠다.







* 박민규 님의 <카스테라>를 읽고 영감을 받아 썼던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