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화가 나도 주먹을 쓸 수 없는 세상이라 그런걸까.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누군가에게 속으로 욕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안전한 공간인 내 내면에서, 거칠것 없는 분노로 가상의 원수에게 무언가를 쏟아낸다. 무슨 단어를 써서 그를 공격해야 내 속이 시원할까? '나쁜 놈', '악마'와 같이 상대의 도덕성을 평가절하하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예전에 조주빈이 '악마와 같은 내 삶을 끝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었나? 그는 스스로를 악마라 칭하면서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겼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분위기에 악함을 꼬집는 욕이 누군가를 기분나쁘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멍청하다'는 평가는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악하다는 말보다 더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이 끼치는 해로 보나 당위로 보나 후자를 더 기분나빠 해야 할 것인데 그 반대로 느낀다. 오랫동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Chat gpt가 명쾌한 해답을 내려 주었다. 악하다는 것은 행위에 대한 평가인 반면 멍청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본질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안에는 인간은 자유의지로 매 순간 행동을 선택하는 존재이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선해질 수 있다는 숨은 전제가 있다. 반면 지능은 원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니 바보라는 욕을 믿는다면 영구적으로 상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정신병자'라는 단어이다. 이 말은 한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하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나 누구에게나 할 수 있다. 연쇄살인범이나 아동성범죄자같은 파렴치한에게 쓸 때 어색하지 않다.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에게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많이 활용한다. 자신이라면 도저히 찬성할 수 없는 정당을 지지하고 있으니 분명 인지과정에 결함이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작게는 갑질하는 상사나 이기적인 친구, 받기만 하려는 연인, 진상 손님부터 크게는 나랑 사고방식이 다른 세대, 용납할 수 없는 문화적 이견에도 붙일 수 있는 표현이다. 정신병자라는 단어는 내 이해 범위를 넘어서서 나를 불쾌하게 하는 모든 이에게 쓸 수 있는 만병통치약같은 정답이라서 어쩌면 좀 진부한 면이 있다.
정신병자라는 욕은 얼마나 매운가. 이는 지능은 물론이거니와 인격과 정서를 포괄적으로 경멸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실제 정신질환은 그렇지 않지만 이 단어를 비난의 의미로 쓸 때는 상대의 모든 것이 영구적이고 복구불가능하다는 의미도 담는다. 이런 잔인한 함의, 그것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듯 하다. 내 예측과 이해와 용납의 범위를 초월하는 타인은 (정신질환에 대한 통계 편람에 따른) 수백개의 진단을 뭉뚱그린 단어 하나에 아무렇게나 우겨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다음에는 마음껏 공격해도 면죄부가 되는 대상이라고 여겨버리는 것이다.
정신병자라는 욕의 범람은 아주 강력한 사회적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으뜸은 몰이해다. 그리고 그런 태도의 정당화다. 다른 이해관계와 경험과 문화 안에서 살아온 남의 행동을 신경계의 엔트로피 문제로 환원함으로서 그들을 심신미약으로 규정하고 조율과 타협의 기회를 놓친다. 상대하는 대상이 비난받아 싼 타인이더라도, 그래서 욕을 꼭 해 줘야 한다 하더라도 고쳐야 할 특징을 찾는 대신 함부로 뭉뚱그린다면 그 안에서는 어떠한 교훈도 찾을 수 없다.
누군가의 안에 존재하는 정신질환은 그 사람을 욕먹어 싼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문명인이라면 신체적 장애가 비하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병신이라는 말을 터부시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스스로의 정서와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으며 정신질환이 그 사람이 원해서 가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내 입에서 한 번 정신병자라는 욕이 발화할 때마다 무고한 자들을 싸잡아 비하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상담하고 있는 학생 중에는 정서행동상의 문제가 심해서 병원이나 상담센터에 의뢰해야 할 때가 있다. 이 때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연락을 하면 꽤 많은 수의 학부모는 내 자식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냐며 욕을 먹은 것처럼 느끼고 항의한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치료의 때를 놓쳐 마음의 병을 키우는 청소년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이 세상에 공기처럼 퍼져있는 정신병자라는 욕을 거두어 어딘가로 치워버릴 수 있다면, 그래서 마음의 병을 몸의 병처럼 당당하게 다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 번개가 칠 때, 갑자기 강이 범람할 때, 원인모를 종기가 돋을 때 이를 즉 귀신이나 악마의 소행으로 보았다.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선의가 없는 사람들이 정신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용어를 쓰지 않고 인류를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 그것이야 말로 이 시대에 지성을 획득하는 첫걸음일 것이다.